[경제]모바일 인터넷 시대 MS의 변신, 성공할 수 있을까

서피스 태블릿 PC, 윈도 8.1… 마침내 드러난 MS의 변화 행보

생각보다 묵직했다. 프로그램 실행은 빨랐다. 키보드 키감은 나쁘지 않았다. 태블릿에서 워드프로세서의 실행. 무리는 없었다. 따로 설명서는 없었지만, 악명 높았던 좌우 스크롤 위주의 메트로UI에 익숙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베젤 하단의 ‘윈도 로고’를 누르면 알록달록한 블록으로 채워진 시작화면으로 복귀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태블릿PC ‘서피스’ 리뷰 공지가 난 것은 지난 5월 하순. 기자가 리뷰용 기기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지 3주 만인 지난 6월 하순 택배로 ‘서피스프로’를 받았다. 유선LAN 단자는 보이지 않았다. Wifi 환경에 항상 접해 있다는 전제 아래 디자인된 것이다.

MS가 윈도폰과 함께 독자적인 태블릿PC 서피스를 내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아이패드가 발매된 지 3년. 이미 시장은 성숙단계에 접어들었다. ‘서피스’를 소개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보도자료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첫 태블릿 PC”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5월 출시한 서피스프로 노트북. | 미아크로소프트 제공

“태블릿 PC는 퍼스널 컴퓨터를 지금까지 경험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종이의 단순함과 컴퓨터의 강력함이 결합되면 사람들이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할 것이고,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책상에서 떨어져 있을 때도 기업들에 PC가 가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의 말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말이다. 2001년 그가 손에 들고 나타난 ‘태블릿 PC’는 큰 틀에서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MS가 내놓았던 최초의 태블릿 PC
터치스크린 기반에 펜을 사용해 필기를 하거나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닫는 것이 가능했다. 태블릿 PC를 내놓을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의료용 차트 등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용도를 밝혔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폰 이전에 윈도 모바일폰이 있었다. 기자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윈도 모바일폰은 일부 충성팬을 제외하곤 사장되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아이폰 이후다. 아이패드에 이르러 태블릿의 쓰임새는 새롭게 발견됐다. 그리고 2013년. MS의 창업주인 빌 게이츠는 지난 5월 초 CNBC와의 인터뷰에서 “서피스는 아이패드의 미래”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기술전문 인터넷 매체 ‘루프’는 이렇게 코멘트를 달았다. “그는 미친 사람이다.(Bill Gates is a crazy man.)”

MS가 강조하는 포인트를 보면 2001년 빌 게이츠가 말한 ‘태블릿 PC 쓰임새’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MS 측이 서피스의 강점으로 꼽는 것은 생산성(productivity)이다. 단적으로, 기존에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이 사용되는 방식을 보면 생산성 도구가 사용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PC와 스마트폰, 태블릿을 넘나들며 사용할 수 있는 에버노트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은 막강하다. 하지만 태블릿을 문서를 생산하거나 엑셀 같은 계산식 등 업무용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돌이켜보면,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내놓을 때 이 ‘새로운 기기’가 어떤 식으로 사용될지에 대한 완벽한 계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패드가 종이잡지를 대신할 것이라든지, 아마존 킨들과 같은 전자책 시장을 파고들 것이라는 등의 예상은 있었다.

김진형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는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몇 개씩 물려놓고 쓰는 PC 작업환경을 태블릿이 아무리 진화하더라도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태블릿이 생산성의 영역에서 유선랜-PC 환경을 대체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이패드가 대중화한 이후 업무영역에서 새로 발견된 쓰임새는 식당 주문판의 대체, 그리고 보험영업에서 복잡한 설계내용을 ‘우아하게’ 설명하는 보조수단 정도였다. 김 교수는 “이메일에 간단하게 회신하는 용도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답신하는 것 이외에 정교한 문서작업용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MS가 내놓은 서피스는 이러한 태블릿의 사용 행태를 바꾸는 데 성공할까.

“MS의 리더십 문제도 있다”
IT 관련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장재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서피스가 처음 나올 때만 하더라도 상당한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았는데 나온 결과물을 보면 사실상 실패 쪽으로 기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MS의 서피스가 태블릿과 노트북 시장의 일부를 대체하는 효과를 보이겠지만 이미 성숙된 시장에 접어든 마당에 MS가 뒤늦게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장 연구원은 “태블릿의 경우 앞으로 중국 시장의 성장잠재력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을 만드는 기술적 진입장벽이 낮고, 이미 저가경쟁이 붙어 있는 상태”라며 “MS 쪽은 아이패드의 경쟁자로 윈도8을 운영체제로 삼지 않은 서피스RT를 내세우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태블릿으로 현재의 작업환경을 대신할 유인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관적 전망은 IT평론가 안병도씨도 마찬가지다. 안씨는 “MS가 서피스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하드웨어적 혁신”이라며 “막상 뚜껑을 연 서피스는 구글 안드로이드의 레퍼런스 폰처럼 ‘윈도8에 최적화한 표준 하드웨어’ 정도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서피스가 성공하기 어려운 데는 MS의 리더십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MS에 확고한 미래전략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현재 MS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재무담당자였던 스티브 발머다. 그는 제품에 대한 비전보다는 어떤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손실을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물론 MS 쪽은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 사업을 주력으로 삼았던 회사지만 최근 들어서는 소프트웨어와 함께 디바이스, 서비스 영역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면서 “빅데이터나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어 전통적으로 주력하던 분야가 아닌 쪽에 뛰어들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마이크로소프트의 포지셔닝 변화가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들로서는 사활을 걸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씨도 부인하지 않는다. “MS는 기존 서버시장 등에서 지속적인 수입원을 갖고 있고, 우수한 인력과 기술력 역시 부인할 수 없다. 회사가 방향만 제대로 잡는다면 발휘될 잠재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IT문화원 김중배씨는 “생산성과 아울러 온라인 PC시장이 모두 윈도 기반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온라인 게임이나 HD급 동영상 구현 등은 지금까지는 고사양의 PC에서만 가능했다. 그런데 서피스는 아이패드나 다른 태블릿이 구현하지 못하는 PC용 온라인 게임이 돌아갈 수 있다. 유료화 모델을 가장 먼저 성공시킨 것도 온라인 게임 부분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서피스가 바꿀 판도 변화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시작버튼’ 윈도8.1에서 다시 선보인 까닭
6월 26일(현지시간), MS는 개발자 콘퍼런스 ‘빌드’에서 윈도 8.1 프리뷰 버전을 발표했다. 8.1 버전에서는 윈도8에서 삭제해 논란이 되었던 ‘시작버튼’을 다시 살렸다. 윈도95 버전부터 존재해온 시작버튼을 윈도8에서 없앤 것은 그동안 윈도 사용자들 사이에서 찬반 논란이 뜨거웠던 사안이다. 없앴던 시작버튼을 되살린 것은 어떻게 보면 윈도8의 ‘시행착오’를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점이 오히려 MS의 저력일 수도 있다.” 김중배씨의 말이다. “넷스케이프 인터넷 브라우저가 대표하던 때를 보라. 누구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어가 대세가 될 것으론 상상도 못했다. ‘윈도에 끼워 팔기’ 논란에 모방 비난여론도 있었지만 결국 시장의 의견을 업그레이드 버전에서 수용해 시장을 장악했다.

오피스의 워드, 엑셀, 액세스가 업무용 툴을 석권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8.1 버전업그레이드가 숫자로는 0.1에 불과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0.1은 의미가 다르다. 애플의 GUI(그래픽유저 인터페이스)를 흉내낸 것에 불과했던 윈도3.0에서 윈도3.1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태블릿 PC 서피스와 윈도8.1, 오피스365 등 MS의 전략이 모바일웹 시대에 MS가 던진 승부수인 것은 틀림없다. 다시 질문을 해보자. 과연 모바일 인터넷 시대에 MS의 변신은 성공할 수 있을까.

김진형 교수는 덧붙였다. “예측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과거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것인데 지금까지 IT 역사를 보면 거대공룡과 같은 조직을 갖춘 회사에서 혁신이 이뤄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내부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더라도 기존에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방향 전환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예측은 맞을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