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불법공유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다운로드보다 업로드가 더 큰 문제… 저작권교육 확대 등 인식전환 시급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뭔가를 검색하는 여학생. 한 청년은 자동차 문을 따고 있다. 또 다른 청년은 핸드백을 낚아채 가고, 매장에서 DVD를 슬쩍 재킷 안으로 숨기고 있다. 그 여학생은 다운로드를 걸어놓고 가방을 들고 나간다. 그리고 뜨는 메시지. “불법다운로드는 범죄행위입니다.” 집 안에 앉아 클릭만 몇 번 했지만, DVD나 핸드백을 훔친 범죄와 동격이라는 직설적인 경고다. 지난 가을부터 박찬욱 감독 등이 등장한 좀 더 부드러운 호소형 광고로 바뀌었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극장에 가면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던 공익메시지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공익광고는 미국 영화협회(MPAA)의 ‘반해적질 캠페인(Anti Piracy Campaign)’ 영상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어떻게? 바로 최신 할리우드 개봉영화의 캠버전 영화들을 통해서다.

속칭 ‘어둠의 경로’를 통해 유포되는 동영상 영화들은 몇 가지 종류로 나뉜다. 캠(cam)버전은 말 그대로 극장에 캠코더를 들고 가 찍어온 영화다. 그러다 보니 화면의 핀트가 맞지 않거나 잘리기도 하고, 때때로 일어나 걸어가는 관중의 머리가 보이거나 야유 또는 잡담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미국에서 개봉된 직후, 역수입되어 웹하드 업체 등에 올려진 ‘디 워’ 동영상이 바로 이 캠버전이었다. ‘워크프린트(workprint)’판이라는 것도 있다. 영화를 제작하는 도중에 유출된 경우다. 이 경우 러닝타임이 표시되거나 실제 나중에 개봉한 2시간 전후의 장편(feature length)에는 없는 장면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텔레싱크(telesync)’는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캠버전이다. 텅빈 극장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찍은 버전을 말한다. 영화 음향도 캠코더에 붙어 있는 마이크로 녹음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오디오 잭으로 연결하여 깨끗하게 녹음된다. ‘텔레시네(telecine)’는 말 그대로 비디오 제작 장비를 활용해서 만든 경우다.

동영상 영화 몇 가지 경로로 유포
화제를 모은 외국 영화들은 종종 개봉일에 맞춰 ‘캠버전’으로 유포되기도 하지만 불법영상은 대부분 ‘스크리너(screeners) 버전’이나 ‘DVD립(rip)’ 버전이다. 스크리너 버전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평론가들이나 비디오업자 등에게 미리 배포하는 판본을 통해 만든 영상이다. ‘이 영화는 특정 영화사의 소유물이다’라는 식의 메시지가 나오거나 어느 나라에서 배포되었는지 알 수 있도록 암호로 된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가장 선명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DVD 립 버전은 말 그대로 DVD에서 추출한 영상이다. DVD 립 버전은 DVD 발매일 전후에 유포된다.

문제는 화질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이들 불법영상물은 발매된 DVD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
“다운로드를 하면서부터 차츰 비디오가게에 발을 끊게 되더군요. 결국 동네 비디오가게가 폐업했는데, 뭐랄까 양심의 가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어요.” 노상윤씨(34·가명·회사원)는 6000여 장의 영상물을 소유하고 있다. 거의 다 다운로드받은 영상물이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다운받은 영상을 보다가 비디오를 빌려 보면 ‘눈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것. 게다가 특정 장르의 마니아인 노씨는 비디오가게에서 볼 수 없는 장르의 고전물이나 최신작을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었다.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나 외국 영화들은 다양한 버전이 있다. 이들 영화는 어떻게 국내로 유입되는 걸까. 대부분 외국의 P2P나 뉴스그룹이 원천이다. 보통 익명으로 활동하는 릴리스(release, 배포) 그룹이 있다. 이들은 해외의 프리 사이트나 익명으로 가입할 수 있는 이메일을 통해 그룹구성원들끼리 연락을 취한다. 릴그룹과 어떤 버전으로 영상을 만들었는지는 보통 파일명에 표시된다(아래 그림 참조). 영화와 같이 배포되는 정보(nfo 확장자가 붙은 파일) 파일을 통해 릴그룹의 지향, 지금까지 작업해온 영상목록, 새로 릴그룹에 참여할 회원 모집 등의 정보가 제공된다.

국내와는 달리 보통 릴그룹의 활동 무대는 P2P 사이트나 웹하드가 아닌 뉴스그룹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국 영화의 경우, 뉴스그룹 등에 분할되어 올라온 파일들을 조합하여 자막 없는 동영상이 완성되면, 국내의 P2P나 웹하드 업체 등을 통해 등록한다. 한글 번역 자막은 개인이 만드는 경우도 많지만 팀 단위로 움직이기도 한다. 자막 팀의 경우 공정이 세분화하는 추세다. 히어링(듣기)-딕테이션(받아쓰기)→ 한글 번역→ 자막프로그램 입력→ 동영상의 입과 자막을 맞추는 싱크 작업 등의 과정을 통해 자막 파일을 만든다. 영화의 대본이나 DVD 등으로부터 추출한 스크립트가 있는 경우 이 과정은 단축된다. 한국 영화를 제외한 외국 영화의 릴은 2, 3년 전만 하더라도 외국에서 리핑된 것을 사용했다.

우리나라에도 ‘릴그룹’ 본격 등장
하지만 최근 양상은 다르다. 국내 출시된 DVD를 기반으로 한 릴그룹이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여럿 등장했다. 과거 배포그룹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한국에서는 DVD 출시일을 기준으로 2, 3일 내에 대부분 영화가 릴된다고 보면 맞다”며 “특히 인기 있는 영화의 경우 여러 그룹이 달라붙어 경쟁적으로 릴리스한다”고 말했다. 실제 각 릴그룹마다 선호하는 리핑방식이 있다. 미국 드라마 자막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ㅅ자막팀의 경우 Divx계열(mpeg4) 방식이 아닌 SVCD 방식을 고집한다.

국내 릴그룹은 제작하지 않았던 nfo파일 배포도 최근에는 적극화·토착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막 제작도 전문화하고 있다. 일부 자막은 실제 극장에서 상영된 버전이나 DVD 번역보다 더 훌륭하다는 평판도 얻고 있다. 최근 일부 그룹은 아예 처음부터 출시 DVD의 한글자막까지 통째로 립해서 유포하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

업로더들의 이런 활동은 한국영상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저작권보호센터는 지난 12월 27일 ‘저작권침해방지 연차 보고서 2007’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추산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유포된 영상은 무려 113억3483만6000여 편. 이중 영화는 33억803만5000여 편이다. 불법거래 단가를 적용해보면 영상물은 2조6865억여 원(영화 5711억여 원)의 규모다. 이로 인한 합법시장의 침해는 영상물 1조1499억여 원(영화 3391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령대로는 20~30대가 불법다운로드를 주도하고 있으며, 전체 국민이 1인당 평균 27편의 불법영상물을 다운로드하거나 불법 VOD를 통해 봤다는 결론이다.

이 센터의 김욱한 연구원은 “다운로드를 받는 입장에서는 이를테면 ‘내가 1만 원을 내서 유료로 다운받으니 합법’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영상물 다운로드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계약을 맺어 이뤄지는 것은 없기 때문에 거의 전부가 불법”이라며 “이번 연구 결과는 무조건 권리자의 입장에서 ‘인터넷에 100장이 유통되니 각각 100만 원씩 피해를 봐 1억 원’ 식으로 낸 것이 아니라, 불법으로 인한 실질적 피해액이 어느 정도인지 중간자적 입장에서 통계를 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표 참조).

실제 시장에서 결과는 DVD 등 2차시장의 궤멸 등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오고 있다. 2006년 4월에는 유니버셜이, 6월에는 파라마운트가 한국시장에서 철수한다고 선언했다. 폭스홈엔터테인먼트 DVD 부문도 지난해 11월 사업을 접고 한국시장을 떠났다. 당시 폭스사 직원이었던 주혁 SM 픽쳐스 마케팅 과장은 “폭스의 경우 한국에서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해서 2000년부터 들어왔는데, DVD사업의 한국 시장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떨어지고 점점 축소되다 보니 본사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철수를 결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과거 회사의 이미지 제고차원에서라도 손해가 나더라도 소수 마니아층을 위한 출시를 강행했지만 판권을 넘긴 지금은 철저하게 수익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런 작품들은 출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으로 돌아온다는 설명이다. 직배사로서 현재 남아 있는 업체는 브에나비스타, 워너브러더스, 소니 등 3개사. 폭스 등의 철수가 선례가 될 수 있을까. 주 과장은 “선례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특이한 구조로 가다가 문을 닫았으니 남아 있는 회사들도 주목할지도 모른다”며 말을 흐렸다.

김의수 한국영상산업협회 저작권팀장은 최근 1, 2년 사이 DVD나 비디오시장은 거의 고사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불법 릴 그룹을 보는 이들의 시각은 어떨까. 김 팀장은 말한다. “저희들 입장에서는 단속하고 싶죠. 우리나라의 릴그룹을 보면 아예 IDC 센터 서버를 임대해서 유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솔직히 추적하고 싶지만 법 적용도 쉽지 않습니다.” 그는 특히 P2P·웹하드 업체 등 OSP(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 불법영상자료가 많지만 추적을 막기 위해 익명 업로드를 하는 등 불법영상물 방조 혐의가 많다고 했다.

“단속만이 능사 아니다”
지난 1월 3월 문화관광부는 영화·음악 저작물에 대한 기술적 조치를 취했는지 모니터링한 결과 총 31개 OSP에 210만 원에서 2500만 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했다. 아주 영세한 경우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 웹하드·P2P 업체들이 벌금이라는 철퇴를 맞은 것이다.

업체 쪽 시각은 어떨까. 한 웹하드 사업자는 “경감을 받았지만 많죠. 업체가 기술적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하더라도 단속 기준 때문에 과태료를 받는 악순환은 계속 될 수 밖에 없습니다”고 토로했다. 대부분 영세한 규모인 OSP 입장에서는 과태료 부과가 큰 타격이라는 주장이다. 다른 P2P 업체 관계자는 “업체 쪽에서도 수익모델을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고, 침해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과태료를 부과한 관계당국과 업계 입장의 간극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덧붙여 mp3의 경우 필터링솔루션이 나와 있지만 영상은 아직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솔루션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그는 주장했다.

저작권 역사를 살펴보면 현재 굴지의 업체로 자라난 서구의 출판사들도 초기엔 불법출판물을 간행하는 곳이었다는 것. 덧붙여 한국도 공정이용(fair use)와 관련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우리의 법리 구성은 저작인격권·재산권·인접권 등 제한조항 중심으로 저작권자에겐 권리를 많이 주는 한편 제한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식”이라며 “미국의 경우 일반조항으로 공정이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간단히 말해 기술적 발전이나 정보에 대한 접근권 등의 문제에 대해 열어놓고 접근하는데 한국은 융통성이 없다는 것.

다운로드보다 ‘업로더’와 방조하는 업체 문제를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불법영상물네티즌 신고제도인 ‘영파라치 시스템’을 운영하는 씨네티즌의 신용주 대리는 “업로드를 전문으로 하는 릴 그룹들의 경우 DVD 소스를 다 사서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스폰서’가 있지 않으면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좀 더 많은 회원을 유치하기 위해 OSP들이 적극적으로 스폰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신대리는 “사실 영파라치 제도는 애초부터 개인보다 그런 불법을 방치하고 유도하는 OSP 업체를 타깃으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