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총체적 난국 코스콤 ‘세간의 눈총’

‘낙하산 사장’환영 구설 이어 전 노조간부들 비리 불거져 사면초가 신세

이명박 정부의 증권가 낙하산 인사 중 정연태 코스콤 사장이 10여 일 만에 낙마했다. 증권가에선 감사의 사각지대에 있던 코스콤의 내부 체질을 개선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인 ‘낙하산 인사’로 지목된 정연태 코스콤 신임사장이 취임 10일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검증 부재,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 속에서 강행했던 이명박 정부 공공기관 인사의 난맥을 다시 한 번 드러낸 것으로, ‘강부자 내각’ ‘고소영 청와대’에 이어 세 번째로 공공기관 인사 실패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조롱도 나오고 있다.

이번의 정연태 사태는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논란과 함께 ‘코스콤’이라는 회사에 대한 조명으로 이어졌다. 증권선물거래소의 자회사 격인 코스콤(옛 한국증권전산)은 1977년 창립해 이듬해 증권선물거래소 전산업무를 인수하면서 국내 증권시장의 한 축을 담당했다. 주업무는 증권·선물시장 매매 시스템의 개발 및 운용. 사장과 감사, 2명의 전무이사 아래 5본부 22팀 1개소(기술연구소)에서 2007년 말 현재 481명이 근무하고 있다.

노조 ‘낙하산’ 반대입장서 급선회
거래소의 전산망이 멈추는 사고 외엔 이렇다하게 매스컴에 오르내릴 일이 없던 코스콤이 최근에는 사면초가 신세에 처해 있다. 낙하산 환영 기관이라는 오명에다 때마침 전직 노조 간부의 비리 혐의까지 터져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 게다가 비정규직 문제를 오랫동안 방치하고, 사내외의 감사가 부재하다는 비판도 있어 총체적인 ‘손질’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해 대선 당시 한양대 겸임교수 자격으로 이명박 후보의 자문교수진으로 활동한데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정보기술(IT) 태스크포스팀 상임위원으로 일했다. 또 이 후보의 외곽 지원단체로, 강만수 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끈 ‘상록포럼’의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당초 정연태 사장의 취임에 대한 코스콤 노조의 입장은 ‘낙하산 인사 반대’였다. 임시주주총회는 노조의 시위를 피해 열려야 했고, 사장은 출근 첫날부터 노조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혀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함량 미달 낙하산 인사로 증권시장이 후퇴한다” “책임경영을 실천하라”는 것이 코스콤 노조의 주장이었다.

코스콤은 형식상 증권선물거래소가 대주주인 민간기업이고 사장 역시 추천위원회에서 공개 채용하지만 증권거래 시스템을 운영하는 기업이어서 ‘공공기관’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그동안 정부 관료 출신이 사장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코스콤 사장 인선도 형식은 자율 공모였지만 정부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증권가에 파다했다.

하지만 코스콤 노조 입장은 5일 만에 선회했다. 노조는 6월 26일 “정규직 노조가 새로 부임한 정연태 사장을 적극 환영하며 회사 발전의 튼튼한 기틀을 확보해줄 것을 기대하며 신임사장 부임을 계기로 긴밀한 유대감을 가지고 상호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어느 기업이나 사장 취임 시 일어나는 통과의례”라는 윤용빈 코스콤 IT선진화TF팀장의 말과 달리 증권가에선 노조의 이 같은 급선회에 대해 “그동안 낙하산 인사에 길든 노조가 결국 손을 든 모양새”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2일 이사회를 통해 선임된 코스콤의 신임 임원들. 왼쪽부터 정재동 상임감사, 이규성 전무이사, 정의연 전무이사.

하지만 코스콤의 대주주인 증권거래소 노조가 정 사장이 대표로 있던 한국멀티넷의 자진 폐업으로 관련 부채를 떠안으면서 작년 4월 개인파산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들어 “사장 부적격자”라고 공격하고 나서자 상황은 달라졌다. 정 사장은 2007년 4월 20일 법원에 파산 및 면책 신청을 하고 같은 해 9월 파산 선고를 받은 상태다. 현행법상 파산 뒤 복권되지 않은 경우 회사 임원이 될 수 없다. 이에 대해 코스콤 관계자는 “한두 달 안이면 면책 관련 결과가 나온다”며 “이 과정에서 면책되면, 일단 자유인과 자격은 동일한데 성급하게 자격 시비가 불거진 듯하다”라고 말했다. 노사가 한목소리로 파산 상태의 낙하산 인사를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정연태 사장은 여론에 밀려 지난 1일 취임 10일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노사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문제는 코스콤의 사장추천위원회의 역할이다. 사전에 정 사장의 자격미달을 알지 못했는지, 알았지만 정권의 입김에 굴복한 것인지를 두고 말이 많다. 정 사장 선임 당시 코스콤사장추천위원회는 김정우 거래소 이사, 정재동 코스콤 (전)전무, 박인석 비상임이사, 김형태 증권연구원장 등 5인으로 구성돼 있었다. 코스콤 이사회와 중복되는 인물이 다수로, 그동안 코스콤에 ‘찍히는’ 낙하산 인사에 대한 검증이 부실했다는 게 증권가의 평가다.

이번 코스콤 사태에 대해 증권가 일부에선 “감사의 사각지대에 있던 물이 썩는 상황”이라는 극단적인 비판도 존재한다. 상임감사가 2006년 없어지면서 내부통제 장치를 잃었다는 지적이다. 과거 감사도 증권선물거래소에서 내려와 실효성에 의문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없어진 게 문제라는 것이다. 코스콤의 지분은 증권선물거래소가 76.6%를 가지고 있으며 대우증권 등 15개 증권사가 15.4%, 증권예탁결제원과 증권금융이 각각 4.3%, 3.7%를 보유하고 있다. 코스콤이사회는 사장과 두 전무를 포함해 6인으로 꾸려지는데, 시민사회인사 몫인 비상임이사는 박인석 증권선물거래소 부이사장보가 겸임하고 있다. 한마디로 외부 인사가 끼어들 틈이 없는 셈이다.

상임감사 없어 내부통제 기능도 실종
게다가 외부로부터 별도의 감시도 받지 않는다. 증권선물거래소나 증권예탁결제원과 달리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된 코스콤은 감사원, 금감원, 국회 등으로부터 자유롭다. 별도 검사를 받지 않는 것이다.

코스콤 전 노조위원장이 줄줄이 구속되는 것도 문제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1일 코스콤 전 노조위원장 김모씨를 배임수재·횡령·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3일 이 회사의 또 다른 노조위원장 출신인 정모씨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노조 간부였던 2003~2004년 당시 노조위원장이던 김씨와 공모해 노트북 납품업체 자판기 운영업체 이벤트업체 등에서 납품 편의 제공 등의 대가로 9000만 원을 챙긴 혐의(배임수재)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김·정씨와 공모한 혐의로 또 다른 노조 간부 손모씨도 체포해 조사 중이다.

현재 검찰은 전 노조위원장 김씨가 코스콤 퇴사 후 2006년 1월 전산장비업체인 ㅊ사 관계자에게 장비 납품 알선 대가를 빌미로 받은 활동비 4억3000만 원의 사용처를 집중 추적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현 임직원에 대한 조사도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임직원들의 회전문식 인사도 코스콤이 정체된 이유 중 하나라는 지적이 있다. 지난 1일 정연태 신임사장이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코스콤은 이튿날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정재동 코스콤 전 전무이사를 상임감사로, 이규성 KRX 전 선물시장본부장보와 정의연 KRX 전 금융정보본부장을 전무이사로 선임했다. 정재동 상임감사는 코스콤 신사업개발본부장, 시스템사업본부장, 상무이사, 전무이사 등을 지내며 코스콤의 실세로 불려왔다. 이규성 신임 전무이사와는 고종사촌 매제 관계라는 게 증권거래소 노조의 주장이다. 때문에 증권거래소 노조는 이번 인사에도 정재동 감사의 입김이 발휘된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새로 선임된 이사들은 빠른 시일 안에 이사회를 열어 정 사장의 후임사장 선임을 위한 임시주총 시기를 결정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증권가에선 “불투명한 구조, 외부 견제 부재라는 코스콤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최소한 외부 출신의 사외이사와 상임감사가 투입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