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대학총학생회 ‘운동권’부활했다?

‘촛불’ 영향으로 예년보다 약진했지만 ‘비권’과의 경계 구분 점차 무의미

경희대 총학 선거 운동원들이 유세를 하고 있다. <경희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제공>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진행된 2009 대학총학생회 선거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 정국으로 대학생의 사회 참여 목소리가 높았고 그 결과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촛불 정국 당시 비권(반운동권, 뉴라이트 등 기존 운동권 총학과 거리를 두고 있는 총학생회를 편의상 비권이라고 부른다) 총학생회가 총학 다수를 차지했다. 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경희대 등 과거 운동권 총학이 상식처럼 되어 있던 대학에서도 비권 총학이 활동했다. 총학 차원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하지 않자, 학내 게시판에는 “왜 시청앞 광장에 우리 학교 깃발이 보이지 않느냐”는 질타의 목소리가 거셌다.

하지만 당시 비권 총학생회는 깃발을 들고 시청 광장으로 나오는 것을 주저했다. 자연스럽게 촛불 집회에 참여하려는 학생은 총학 깃발이 아닌 단과대 혹은 과 깃발을 하나 둘씩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투쟁 일변도의 학생회에 대한 실망으로 비권 총학이 힘을 얻었지만, 촛불 정국은 비권 총학에 대한 재평가를 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대학 대부분 투표율은 50%대 머물러
그래서인지 이번 총학 선거에서 국민대를 시작으로 고려대·경희대 등 비권 총학이 활동했던 대학에서 운동권 학생회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운동권 총학의 부활’이라고 예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캠퍼스의 분위기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운동권 총학이 부활한 대학의 투표율도 대다수 대학처럼 투표율이 50% 내외밖에 되지 않았다. 고려대는 투표율이 51%, 동국대 53%, 국민대 60%(실제 4학년을 제외하면 54% 정도로 떨어진다), 숙명여대 53%, 경희대 54%로 대다수 대학의 투표율은 50% 내외였다. 촛불 정국으로 대학생의 사회 참여 목소리가 높아지는 분위기였지만, 총학 선거에 대한 관심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총학 후보를 내지 못하거나, 유세 또는 투표 과정에서 파행이 일어나 선거가 연기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올해 운동권 학생회의 활동이 활발했던 동덕여대는 올해 총학 후보가 없어서 선거가 내년으로 연기됐다. 안승현 총학생회장은 “대다수 대학의 학생들은 학생회에 관심이 별로 없다”면서 “올해 단과대 선거도 연장해 3일 동안 평균적으로 54% 정도가 나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민대는 올해 선거로 4년 만에 운동권 총학생회가 부활했다. 김동환 총학생회장 당선자는 “비권 총학이 그동안 견제받지 않은 것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누적된 것 같다”면서 “우리들을 촛불 후보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진 느낌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이화여대는 올해 운동권 학생회가 활동했지만, 올해 선거에서 학생들은 비권 학생회를 선택했다. 올해 총학생회장인 강정주씨는 촛불 정국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지 않다. 강씨는 “촛불 정국으로 학생들이 참여의 필요성도 느꼈고, 변화도 생긴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촛불정국 하나로 모든 학교 학생이 바뀌지는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학생들이 총학에 대한 요구나 의식이 바뀐 것 같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올해 선거에서 운동권 총학생회가 부활한 경희대 엄대철 총학생회장 당선자는 “촛불 정국으로 학생들이 운동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평가하면서 “다만 우리가 이번에 이길 수 있던 것은 비권보다 학생회 활동이 전문가적이고 일을 더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투쟁보다 학생과 함께 하는 게 최선”

하지만 엄 당선자는 촛불 정국을 통해 학생들의 순수함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인정했다. 총학 차원에서 촛불 집회에 참석하지 않자, 엄 당선자는 뜻이 맞는 학생들과 깃발을 만들어서 시청 광장에 나갔다. 그때 시청 광장에서 깃발을 보고 경희대 학생이 많이 모여들었고,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변화의 희망을 느낀 것. 엄 당선자는 “당시 총학 깃발 아래 모이지 못했지만, 시청 광장에서 만난 학생이 많았다”면서 “그 모습을 보고 대학생들의 순수함을 어떻게 표출시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고 전했다.

다음의 ‘학생운동’ 카페에 올라와 있는 ‘2009 대학 총학생회 선거 결과’를 살펴보면 운동권 총학이 당선한 학교는 12월 11일 현재 34곳이다. 비권 총학은 22곳, 파행이나 연기된 곳은 11곳에 이른다. 한때 PD 계열로 불리던 좌파 총학이 당선한 곳은 한 곳도 없다. 그리고 운동권과 비권의 경계에 서 있는 기타 총학생회는 30개 대학에서 당선한 것으로 밝혀졌다. 운동권 총학의 부활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약진한 결과표다.

또한 기타 계열의 총학이 30개의 대학에서 당선한 것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학생 사이에서 비권이냐 운동권이냐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단적인 증거다. 또한 총학 선거에 나온 구호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자주’ ‘해방’ ‘민족’ ‘민주’ 등 후보들의 색깔을 단번에 알 수 있는 선명한 구호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공감대’ ‘실천’ ‘체인지’ ‘날개’ ‘We Can’ 등 후보의 성격을 알기 힘든 구호들이 쏟아져나왔다.

김동환 총학생회장 당선자는 “이젠 비권과 운동권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고, 보수적인 언론 세력이 그렇게 구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희대 엄대철 당선자 역시 “이번 선거에서 비권과 운동권의 벽을 허문 것이 주효했다”고 답변했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한 총학생회장은 이구동성으로 “운동의 관점이 아닌 학우들과 함께 하는 학생회가 최선”이라고 평가했다. 총학생회가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반성인 셈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