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여기서 쫓겨나면 99%는 망합니다”

4대 강 하천부지 수용 예정지 충남 부여 세도면 농민들 울분 토로

금강을 사이에 두고 충남 논산시 강경읍과 부여군 세도면이 접하고 있다. 사진 속 비닐하우스 경작지는 모두 이번 4대 강 정비사업의 국가 수용 대상 하천 부지 농지다.

"생계를 보장해주고 그뒤 공사하라는 겁니다. 자전거 도로가 생기고 습지가 생긴다 그런 말은 많은데, 아무리 국가 땅이지만 한 번도 협의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불과 5개월이나 6개월이에요. 작년에 빚 얻어 수천만 원 들여 하우스를 지은 사람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될 줄 알았으면 지었겠습니까.”

백신기 금강하천부지부여군생계대책위원회 위원장(61)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부가 일사천리로 강행하던 4대 강 살리기 사업이 복병을 만났다. 바로 4대 강 하천 부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반발이다. 4대 강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농민들은 자발적으로 지역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생존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금강의 경우 관련 '피해'를 입을 지역민은 2300여 가구, 가족을 포함한 생계인원은 6500여 명으로 대책위는 추산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세대를 포괄하고 있는 곳이 부여군 세도면 일대다. 백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여기서 나는 토마토의 연간매출액이 450억여 원입니다. 가구 수는 450여 가구고, 생계인원은 1600여 명이에요. 게다가 세도면 사람들만 와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근 전북 익산시, 논산시, 보령시, 서천군 등 3개시 5개군에서 와서 일하는 인원이 연간 60여만 명이에요. 이 사람들의 생계는 앞으로 누가 책임지겠다는 말입니까.”

“설마설마하다 날벼락 맞은 꼴”
사태는 지자체가 관할하던 하천부지 점용 허가를 갱신해주지 않으면서 불거졌다. 점용 허가는 5년에 한 번씩 갱신받아왔다. 사용료는 3300㎡(1000평)당 4만~5만 원 수준이었다. 마을 주민 대부분 허가 종료일은 2009년 12월 31일이다. 연장허가가 난다면 2014년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군 당국자는 더 이상 연장할 수 없다고 최근 통보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안 게 지난해 말이었어요. 그래도 설마설마 했습니다. 진짜 그러려나. 하지만 아무런 통보도 없었고, 언론에서 4대 강 개발한다는 보도가 나오면 ‘여기에 금강도 들어가려나’ 생각하는 수준이었지, 딱히 우리가 농사짓는 곳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없었어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자신들이 농사짓는 땅이 수용된다는 것을 안 것은 올해 3월. 겉으로 보기엔 국가 소유의 땅을 농민들이 점유하고 있으므로 나가라고 하면 될 것 같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농민의 상당수는 원장지-즉 제방이 쌓이기 전 그 땅-를 소유하던 사람들이다. 정부가 1980년대 초반 금강 하구를 막으면서, 헐값에 강제수용된 것이다. 주민 백승호씨는 말한다. “그때 제방을 기준으로 하천쪽 땅 보상액은 3.3㎡당 1만2000원이었는데, 그 반대쪽 땅은 3.3㎡당 3만 원이었어요. 정부가 내놓으라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내놓은 것이죠. 하구를 막기 전까지는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면서 깔동게니 뱀장어, 복어 등이 잡혔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어요. 100% 생태 파괴가 된 거죠. 금강을 막지 않았으면 생태 파괴도 없었습니다. 정책을 잘못해놓고, 옛날식으로 물길을 만들겠으니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는게 말이 됩니까.”

주민들 보상 요구 당국자 ‘묵묵부답’
하천부지 경작 농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보상'과 관련한 갖가지 소문도 횡행한다. 한 주민은 "국책사업이라는데 반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먹고살아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 주민 정서다"고 전했다. 땅을 수용하는 데 보상과 관련된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공용지취득및손실보상에관한법률'이라는 법이 있다.

그러나 법에 따르면 상당수 농민은 보상에서 제외되거나 턱없는 보상액을 받는다. 백 위원장은 말한다. “현재 법에 따르면 매출 근거는 공신력 있는 데서 매출해야 하고, 또 세금계산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농민이 영수증을 뗄 수가 없어요. 일단 농사를 지어놓으면 출하는 ‘밭떼기’ 형태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경우 남는 자료는 계약서 하나뿐입니다. 게다가 구두로 하는 사람도 있고, 개인상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관련 자료가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또 법인에 가입하지 않은 농민들이 만든 ‘작목반’이 생산하는 것을 공동구입·출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도 법인거래가 아니므로 법이 요구하는 자료 요건을 만족할 수 없다.

위 _ 경작하던 하천 부지가 점용 허가가 연장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시름에 잠긴 농민들이 대책위 사무소에 모여 있다. 왼쪽_백신기 하천부지경작부여군생계대책위원장이 대책위 소속 주민들의 생계 실태를 담은 문건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_ 주민들의 전화를 받는 백신기 위원장.

세도면의 경우 1년에 두 번 농사를 짓는다. 보통 토마토를 6월께 출하하고, 지력 보존을 위해 벼농사를 짓는다. “지금 토마토나 수박·메론이 살아 있으니 실사해서 금년 것을 기준으로 당신들(관청)이 요구하는대로 세금 영수증을 만들어 인정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어도 ‘검토하겠다’고만 했지, 가타부타 답변을 안 합니다. 답답할 노릇이죠.”

정부 입장에서는 보상 과정에서 형평성 문제, 이를테면 무임승차자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규제책을 만들어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백 위원장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을 훔쳤다. 잠시 후 “국민의 의무인 납세의무를 제대로 안 했다고 타박하면 할 말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예를 들어 '재주'를 부린 것은 아닙니다. 농사꾼이 그저 먹고살기 위해 땅만 팠을 뿐인데….”

그 전까지 이 지역은 귀농의 모범사례였다. 마을의 한 농민은 차라리 그걸 취재해 보도해달라고 부탁했다. 20대부터 70대까지 하천부지 경작으로 희망을 일구던 사람들이었다. 이곳 출신 주민인 서아무개씨(가명·56)는 서울에서 사업하다 빚을 지고 20년 전 귀농했다. 그는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로 토마토농사를 짓고 있다. 매출은 연간 6억 원 정도. 절반 정도는 순수익이다. 토마토 농사가 본궤도에 오른 것은 3, 4년 전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이곳이 제일 좋은 땅이라고 생각해요. 실제 생산량이 다른 지역보다 20~30%는 더 나옵니다. 귀농해서 하천에만 열정과 꿈을 바쳐 살았습니다. 여기서 나가면 99%는 망합니다.” 말을 하던 서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현재 세도면대책위에는 하천부지 농사를 하는 거의 모든 세대가 들어와 있다. 대책위 사무실에서 돌릴 연판장에 서명하러 들른 농부들이 백 위원장과 기자 주위에 모여 이야기를 듣다 불쑥 끼어든다. “사실 농협에 빚 안 진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까. 보상받아도 다 ‘똔똔’이에요. 한 1, 2년은 그래도 타먹은 돈 있으니까 살 수 있겠죠. 그뒤로는 어떻게 살라는 지…” 주민들에 따르면 보상 이야기가 나오면서 벌써 인근의 땅값은 배로 뛰었다. 보상받아도 농사지을 땅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여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별로 없다”
부여군 ‘4대강살리기기획단’ 관계자는 “우리 군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몇 가지 없어 군도 모호한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사업계획은 국토해양부 4대강기획단에서 하고, 보상과 관련해서만 군에 위임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대부분 올 12월 30일까지 점용 허가 기간인데, 실질적으로 4대강사업계획 공고는 7월이나 9월에 날 예정”이라며 “아마 방침이 영농은 못하게 하겠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부여 같은 경우는 워낙 하천부지가 광활해서 물건조사도 필요하고 기존 점용 허가를 받은 사람만 영농보상비를 지급하고 비닐하우스 철거비도 지원할 계획” 이라고 덧붙였다.

하천부지 경작 농민들의 최우선 요구는 지금 그대로 경작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이다. 현실적인 요구는 ‘제대로 된’ 보상을 해달라는 것. 하지만 군에서는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이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농민들은 사업계획 시행 주체인 국토해양부 면담을 요구하며 5월 7일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과천으로 올라갔다. 세도면을 위시한 장안, 부여읍, 석성면 등 4개 읍면 농민들이 참여했다. 성과는 없었다. 만약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사업이 강행된다면? 백 위원장은 “충분한 보상이 없다면… 드러누워 공사를 저지하든 어쩌든 뭐든지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딱 떨어지는 묘안은 없다. 대책위가 내놓은 안이라면, 현재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제방을 옮겨 조금이라도 땅을 보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상과 관련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실현 가능할지는 현재로서 오리무중이다. 취재를 지켜보던 농민들은 깊은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다.

전국 4대 강 하천부지 농민들 ‘부글부글’

김해시와 대통하천부지경작농민생존권대책위원회가 ‘낙동강 살리기’ 적극 동참 협약식을 하고 있다. <경남 김해시 제공>

다른 지역 사정은 어떨까. 5월 13일, 역시 같은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던 경남 김해시와 대동면 ‘대동하천부지경작농민생존권대책위원회’는 ‘김해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 성공기원’ 낙동강 살리기 주민동참 협약식을 했다. 자리에 참석한 장만석 부산지방 국토관리청장은 “전국 최초로 이러한 협약식이 이뤄진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협약식을 한 윤봉고 위원장은 “체결은 보상에 대한 타결이 아니라 공사 처리 기간과 일정을 농민과 국토관리청이 합의한 것”이라며 “아직 보상감정이나 물건 조사도 하지 않았지만 과거 환경운동 경험이 있는 김종관 시장의 결단을 믿고 협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농사꾼이라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동면 지역이 100% 그린벨트로 묶여 수십 년 동안 재산권 행사를 못했기 때문에 탈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 개발에 대한 기대에 빠른 대응을 해서 잘되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금 강조하지만 우리가 협약한 것은 일정에 대한 것”이라며 “개간비 문제 등 다른 지역대책위의 ‘현안’과 관련해 우리도 기꺼이 동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책위가 결성된 곳에 사연이 없는 곳은 없었다. 낙동강 둔치대저지구 생계대책위 노문상 회장은 “우리도 선조 때부터 농사를 지어왔다는 점에서 부여군과 똑같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노 회장은 “우리도 터전을 내주고 가는 마당에 사실은 실업자가 된 꼴”이라며 “땅값은 터무니없이 올랐고 앞으로 뭐를 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264만㎡(80만 평) 250농가가 있고 비슷하게 양산 쪽에도 220여 농가가 있다”며 “다같이 연대해 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은 이미 하우스 농지 조사가 끝났고, 사업고시가 내려져 5월 18일부터 감정평가에 들어갔다.

경기 광주시 남종면의 김용덕씨는 팔당댐 바로 위에서 농사를 지어왔다. 김씨가 부여대책위 백 위원장에게 연락하면서 이들의 ‘사정’도 밖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팔당댐이 막히고 1985년 상수원보호법이 제정돼 자기 재산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하천부지에 농사를 짓게 된 것”이라며 현재 주로 채소농사를 하는 140여 가구가 생존권 싸움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아직 마스터플랜은 안 나왔지만 수생식물로 강을 정화하겠다는 안이 나온 것으로 안다”라며 “우리 입장에서는 물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옳지만 여기 사람들이 왜 피해를 입었는지 생계대책부터 세우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포커스

김해시와 대동면대책위의 협약 체결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최수영 부산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사실 환경단체와 농민들의 이해가 엄밀히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농약·비료를 사용하는 비닐하우스 영농이 하천부지 오염원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분들 입장에서는 생계이고 생존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환경단체들은 원론적으로 보면 하천부지에다 위락시설 설치는 일관되게 반대해왔다”라며 “그린벨트 해제 등은 아무래도 개인 이해에 기반한 합의이지 공익적 합의는 아니며,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정비사업에 탄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김해시와 그런 코드가 맞아 떨어진 것 같다”고 평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