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2009년 6월, 대한민국 길거리 서바이벌 가이드

누리꾼이 캡처한 MBC PD수첩의 한 장면. |MBC

PD수첩이 다시 인터넷을 강타했다. 6월 2일 방영된 ‘봉쇄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 편을 본 누리꾼은 “그동안 말로만 들었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공분했다. 여론은 삽시간에 전파됐다. PD수첩의 다시보기는 다운됐다. 누리꾼은 유튜브 등에 이날 PD수첩 방영분을 쪼개 올렸다. 또 다른 누리꾼은 PD수첩의 주요 내용을 사진 캡처해 줄거리를 소개했다. 청와대와 경찰청 홈페이지에는 수천 건의 비난 메시지가 올라왔다.

사실 일본인 관광객 연행·구타나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 참가자들에게 촛불을 못 들게 한 것은 아고라 등을 ‘눈팅’해 본 사람이라면 대개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노동절 집회 때 유명세를 탄 ‘사무라이 조’는 이 코너에서도 한 달 전에 소개한 바 있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더 ‘판타스틱한’ 인권 침해 사례도 여럿 있다. 하지만 “연행된 아빠를 풀어주세요”라고 절규하는 소녀의 요청을 끝내 외면하는 경찰의 모습이나 무등 태운 아이가 든 촛불이 왜 불법인지 묻는 아버지의 질문에, 말을 얼버무리는 경찰의 모습을 담은 ‘실상’에 누리꾼은 분노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정신지체장애 2급인 지승환씨 사례다. 경찰은 그가 장애인인 줄 알면서도 구속은 적법했다고 강변했다.

탄식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누리꾼은 그 속에서 유머 포인트를 발견한다. 블로거 ‘카르아’는 “명동에 데이트하러 나갔다가 연행된 이계용씨를 연행한 경찰관은 기나긴 솔로생활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무적의 솔로부대원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단서는 이계용씨의 여자친구가 전한 경찰의 말이다. “그때도 경찰이 한 말이 그거였어요. 왜 데이트를 명동에서 하냐고.” 경찰은 다른 어록도 남겼다. “만났으면 바로 집에 가시지 왜 거기 있었느냐.”

DVD프라임의 ‘아름아빠’라는 누리꾼이 총정리한 ‘서바이벌 가이드’도 회자됐다. 일부를 인용한다. “1. 데이트는 명동에서 하지 말자. 그외 데이트 전 집회 예정 장소를 확인하고 그 자리는 피하자. 연행할 때 데이트하러 왔단 말 얄짤없다. 2. 연인을 만나면 만나는 즉시 집에 가자. 나중에 위험한 곳에서 다녔다고 경찰한테 쪽당한다. 3. 친구와 길을 가다 친구가 연행되면, 절대 아는 체 하지 말자. 왜 연행해가냐고 항의도 하지 말자. 그 즉시 친구와 같은 버스 탄다. 4. 가능하면 길거리에서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 말자.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기자회견은 불법집회란 사실을 명심하라. 5. 길거리를 가족 단위로 다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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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족 단위 나들이인데, 경찰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특히 어린아이를 두고 있다면 꼭 그래야 한다. 아빠가 연행되고, 그 아이가 버스 밖에서 울고불고 해도 얄짤없다. 6. 지하철역에서 경찰에게 갇히면 경찰이 물러날 때까지 그대로 있자. 나가게 해달라고 하면 곤봉에 맞을 수도 있으니 주의할 것.(하략) ” 글을 본 한 누리꾼은 대중가요 가사로 소감을 대신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언중유골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