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지원대상 선정 민간단체, 등록서류 들여다보니…

진보단체는 탈락, 보수단체는 지원 편의 ‘특혜’

지난 9월22일 참여연대 등 전국 23개 시민·사회 단체 대표들이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국가정보원의 NGO 활동 간섭과 시민단체 탄압을 주장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용인 기자>

“박원순 변호사뿐 아니다. 전국의 모든 시민 단체에 대해 범정부적 차원에서 활동력을 위축시키고 고립시키기 위한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시민 단체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의 말이다.

한국YMCA전국연맹, 참여연대 등 전국 23개 시민·사회 단체들은 지난 9월22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국가정보원의 비정부기구(NGO) 활동 간섭·탄압 관련 시민·사회 단체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김금옥 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이 말을 받았다. “그동안 광우병대책위 참가 단체였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확인서 제출을 강요받은 여성단체가 많았다. 많은 회원단체가 거부하고 있으며, 행정소송을 하고 있는 단체도 있다.” <Weekly 경향>은 지난 6월 국정원의 민간사찰을 폭로한 박원순 희사제작소 상임이사(변호사)의 인터뷰에 이어 시민 단체의 정보기관 사찰 정황과 함께 지난 5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09년 비영리민간단체 공익사업 선정단체’의 편파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 후 3개월. 어떻게 됐을까.

계속사업 불구 탈락 단체 행정소송
3년 계속사업임에도 공익사업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 한국여성노동자회(대표 정문자, 이하 여성노동자회)의 ‘새로 쓰는 여성노동자 인권이야기’ 사업과 관련해 여성노동자회는 ‘보조금 지급중지결정의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결심은 10월16일로 예정돼 있다. 이 단체의 배진경 사무처장은 “9월25일 속행된 재판에서 상대방(행안부) 측 변호인이 그동안 사업의 평가점수와 관련해 높은 편이라고 시인했다”면서 “누가 보더라도 우리 사업이 탈락한 납득할 만한 사유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반면에 행안부가 지난 5월 지원단체로 선정한 159개 단체 중에는 그동안 한 번도 지원받지 않은 보수단체들의 사업이 여럿 선정됐다. (<Weekly 경향> 832호 커버스토리 ‘보수단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 기사 참조)

그동안 급조된 이들 단체의 등록과 사업계획, 이들을 선정한 행안부 공익사업선정위원이 과연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행안부는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김유정 민주당 의원은 2009년 비영리민간단체 공익사업 선정과 관련해 ▲159개 비영리민간단체 일반현황 ▲4·5기 공익사업선정위원 추천 비영리민간단체·선정현황 ▲공익사업선정위원 선정을 위한 내부 심사기준 등의 자료 제출을 행안부에 요구했다. 행안부는 “선정 위원 현황 등은 탈락한 민간단체 반발 등 이해관계자와 불필요한 물의 야기 및 향후 공익사업 선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비공개 사항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그러나 <Weekly 경향>이 접촉한 4기 선정위원들은 행안부의 반응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박상필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선정·평가위원은 비공개나 기밀사항이 아니고 감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 역시 “선정에서 탈락한 단체들이 정보공개 청구를 할 것을 대비해 점수표까지 만들어 놨는데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밝혔다. 행안부의 답변을 보면 2009년 지원 대상을 선정한 5기 선정위원은 단체활동가 4명, 교수 4명, 변호사(또는 회계사) 3명, 공무원 1명의 후보위원과 국회의장이 추천한 3명을 포함해 모두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입수한 예비역대령연합회, 자유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 등 국방부 산하 민간단체의 등록요청 서류.

한편 보수단체 선정 관련 일부에서 제기되는 ‘편파 부실행정 의혹’의 실체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Weekly 경향>은 국방부 산하 단체로 2009년 사업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단체의 등록 관련 서류를 입수했다. ‘국가 안보전략연구 및 교육사업을 진행하겠다’며 3000만원 지원이 확정된 육해공군해병대(예)대령연합회(대표 신영철, 이하 대령연합회)가 제출한 자료 리스트에는 관련법상 지원 근거가 되는 사무소 설치 증빙서류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대령연합회 사무실 한 곳만 기재돼 있었다. 이 뿐 아니라 제출한 정관도 단체명과 다른 정관(을지통일안보연구소)이 섞여 있다. 총회회의록도 자료 리스트에는 빠져 있었다. 자유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대표 박세직, 대표가 사망했으나 아직 새 대표를 선임하지는 않음)의 경우 더 허술했다. 등록에 반드시 제출해야 할 총회회의록 및 당해·전연도의 사업계획·수지예산서, 전년도 결산서 등이 제출되지 않았다. 사무소 설치를 증빙할 서류는 ‘사무실 입주확인서’라는 한글파일뿐이고, 그나마 서울사무소는 소유자 사인이라도 들어 있지만 지방사무소는 아예 사인이나 날인도 되어 있지 않았다. 오광진 시민사회연대회의 정책팀장은 “비유적으로 말하면 운전을 하기 전에 발급받아야 하는 운전면허에 학과시험을 봤다는 증명이 없는 셈”이라면서 “이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날림으로 등록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당국의 설명은 어떨까. 행안부 민간협력과 조현명 팀장은 “행안부는 등록 여부만 확인하지 실제 등록 여건을 갖췄는가를 들여다볼 권한도 없고 여력도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로 공을 돌리는 것이다. 국방부의 답은? 실무를 담당한 국방부 국방교육정책관실 문화정책과의 홍일표 중령은 “실제 등록 과정에서 갖추지 못한 서류는 모두 갖췄다”면서 “지원법의 취지가 말 그대로 지원이기 때문에 미비한 서류가 있으면 최대한 도와줬다”고 말했다. 2월27일 이전에 미비한 서류를 모두 보완했다는 것이다.

사인도 안된 입주확인서가 증빙서류?
그러나 단체 관계자의 주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자유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의 서류를 접수한 유제섭씨는 “허가신청을 냈을 때 다 보완했는데 어제(기자와 국방부가 통화한 직후) 전화가 와서 조금 더 서류를 보완하라고 했다”면서 “지부 임대계약서는 월요일(9월28일)에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Weekly 경향>의 취재가 시작되자 서둘러 미비한 서류를 보완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의 홍 중령은 “내가 애초에 ‘사무실 입주확인서’로 갈음하라고 알려준 당사자”라면서 “실제 전화 등으로 해당 지부가 있는지 여부는 다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 시행령상 반드시 임대차계약서 등을 근거자료로 제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쪽(<Weekly 경향>)이 자꾸 문제 삼으니 보완 차원에서 요청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오광진 팀장은 “공무원이 부족한 서류를 채워 넣으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다는 것 자체가 전례가 없는 엄청난 특혜”라면서 “결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행안부가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니냐”고 반박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n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