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월간 <말> 시장논리에 ‘펜’ 꺾이다

올 3월호 발행 이후 중단… 고질적 경영 악화로 사실상 와해

왼쪽_ 5공화국 정권의 언론검열 실태를 보도한 ‘보도지침’ 특집호는 20세기 10대 특종으로 기록된다. 당시 보도지침을 입수해 <말>에 건네준 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는 “당시 <말>을 배포한 다음에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한 명씩 돌아가면서 경찰에 잡혀 갔다”고 회고했다. 오른쪽_ 한때 진보언론의 종가를 자처한 월간 <말>은 2009년 3월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7개월째다. 한때 진보언론의 ‘종가’를 자처하던 월간 <말>은 2009년 3월호 발행 이후 중단됐다. 2009년 3월호에는 폐간이나 정간을 알리는 그 어떤 말도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말>은 지난해 10월 두 명의 수습기자를 뽑았다. 두 사람 모두 몇 개월째 출근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표를 내지는 않았다. 박형준씨(27)는 “<말>이 공중분해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따로 사표를 낼 이유도 없었다”면서 “짧은 기간에 커다란 환멸을 느꼈다”고 말했다.

2006년 6월부터 <말> 발행인을 겸한 윤원석 <민중의 소리> 대표이사는 지난 3월 에 <말> 발행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말>의 발행이 중단된 시점과 일치한다. 그러나 대표이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매체 발행이 중단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말>이 갑작스럽게 증발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시계를 4년 전인 2005년으로 되돌려야 한다.

2005년에 <말>은 심한 몸살을 앓았다. 그 내용은 2005년 10월호에 ‘말지 사태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실렸다. 당시 편집진은 “최근 수개월간 계속되어온 <말>의 파행적 운영”을 독자들에게 고백하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려 한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이렇다.

2005년부터 경영 한계로 파행 운영
위기의 시작은 고질적인 경영 악화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악화하던 경영수지는 이 무렵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 2004년 12월 당시 이명순 대표이사는 사임 의사를 밝혔다.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비상근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던 전현준씨였다. 이듬해 1월1일 전현준씨가 ‘힘 있는 진보’를 강조하며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새로운 활력이 도는 듯했으나 잠깐이었다. 회사가 내놓은 조직개편안을 두고 대표이사와 편집장, 기자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다. 회사의 안은 별도 법인이던 디지털 <말>을 인수해 기자들을 전원 그쪽으로 발령내고 월간 <말>은 외부기고자 위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장과 편집부장은 조직개편 없이 회사의 생존을 도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기자들은 조직개편의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일방적인 추진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3월 중순까지 평기자 7명 가운데 4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발행일이 일주일 이상 늦춰졌고, 전체 지면의 3분의 2가 외부기고로 채워졌다. 남은 기자들은 비대위를 꾸려 직원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하려 했으나 경영상 부담을 고려해 결국 전 대표이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그해 6월 모두 사직했다. 기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도 8월호와 9월호가 발행됐지만 모든 지면이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 기자와 외부기고자 원고로 채워진 기형적인 형태였다. 상황은 8월9일 주주총회에서 전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 전원을 교체하고 9월 말에 5명의 전직 기자들이 복귀하면서 일단락됐다.

<민중의 소리>가 공식적으로 <말>의 발행을 책임진 것은 2006년 6월부터다. 월간 <말>은 2006년 6월12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어 윤원석 <민중의 소리> 대표이사를 월간 <말>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전략적 협력관계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말>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지면 제작에 관여하던 <민중의 소리>가 본격적으로 제작을 맡게 된 것이다. 2006년 6월호까지만 하더라도 편집부장을 제외한 취재기자가 2명에 불과하던 <말>이 7월호부터는 취재기자만 17명으로 불어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말>은 제호만 유지했을 뿐 사실상 기존의 <말>과는 인적으로 단절됐다. 그 전해 9월에 주변으로부터 ‘미친짓’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편집국으로 복귀한 기자들마저 이 무렵 모두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민중의 소리> 개입하면서 기자들 떠나
<민중의 소리>가 <말>의 지면 제작에 관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2005년 당시 비대위에 속해 있던 이정환 <미디어오늘> 기자의 설명이다. “<민중의 소리>는 지속적으로 <말>지 인수 의사를 보였다. <말>의 정통성을 활용해 오프라인으로 진출할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당시 기자들은 <말>을 지속 가능한 매체로 만들려고 했다. 과감한 제2창간을 통해 평생독자를 모은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생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의 소리>가 개입하면서 기자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당시 기자들은 임금 수준이 훨씬 열악한 <민중의 소리>가 <말>을 인수하는 건 난센스라고 생각했다.”

<민중의 소리> 측 설명은 조금 다르다. <민중의 소리> 출신으로 <말>의 마지막 편집장을 지낸 도서출판 알다의 채희병 대표이사는 “인수한 것이 아니라 위탁경영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말> 기자는 “대주주인 제일산업 장 모 회장이 <민중의 소리>에 제작을 위탁했던 것이다. 위탁 제작 비용을 <민중의 소리>에 줘야 하는데 주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문제 때문에 <민중의 소리>가 손을 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인 원인은 언론매체가 기업이자 언론이라는 모순적 존재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 기업으로서 생존을 유지할 수 없고, 그렇다고 수익만 추구하면 언론으로서 존재 의의를 상실한다”고 덧붙였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말> 대표이사를 지낸 이명순 전 민언련 이사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경영 위기를 겪었다. 한때 30명 가까웠던 직원들도 2000년대 이후 10명 정도로 줄어드는 등 어려움이 컸다. 2억원 정도의 은행 부채를 해결하지 못해 월급도 제대로 주기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면서 “2004년 무렵 제일산업 장 회장이 2억여 원을 투자하면서 지분을 약 60% 가까이 인수했을 당시 <말>은 이미 도산 직전이었다”고 증언했다.

<말>은 1985년 6월15일 해직언론인들이 중심이 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련 전신)의 기관지로 창간됐다. 창간사를 쓴 것은 당시 양심적 언론인들을 대표하던 송건호 선생이었다. 창간사는 “오늘의 언론기관은 이미 지난날과는 달리 권력과 이권을 주고받는 깊은 유착관계에 있다”면서 “민중을 위한 진실보도, 사회정의를 위한 진실보도를 위해 우리는 줄기찬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24년이 지난 지금 사회정의와 진실에 헌신하겠다는 <말>의 소명은 권력이 아니라 시장의 힘에 의해 무너졌다.

<글·사진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