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대학 다녀야 하는 이유 못 찾겠다”

서울대 자퇴생과 중앙대 퇴학생, ‘대학’을 말하다

지난 14일 서울대 학생회관 벽에 ‘서울대를 자퇴한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이 학교 사회학과 유윤종씨(23)는 “대학 서열체제와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과 병역거부” 때문에 학교를 자퇴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고려대 김예슬씨(25)에 이은 두 번째 대학 거부 선언이다.

그 사이에 대학에서는 현재 대학 체제의 유효성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 여러 차례 울렸다. 지난해에는 김예슬씨의 대학 거부 선언이 나온 지 한 달 후 중앙대학교의 기업식 구조조정을 비판하며 타워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노영수씨(29)가 퇴학을 당했다. 올해 초에는 징벌적 등록금제를 채택한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이 잇달아 자살했다. 지난 여름에는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가 벌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총장실 점거로까지 이어진 서울대 법인화 반대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노영수씨(왼쪽)와 유윤종씨가 10월 19일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대학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 19일, 대학을 그만둔 유윤종씨와 대학에서 쫓겨났던 노영수씨가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노씨는 퇴학무효처분 소송에서 이겨 이번 학기에 복학했다. 두 사람은 대학을 그만두지 않을 이유보다 대학을 다녀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자퇴 선언에 대한 학내 반응은 어땠나요.

유윤종(이하 ‘유’) 청소년 운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은 그냥 ‘그랬어?’라는 반응이었어요. 서울대학교 게시판엔 부정적인 댓글이 좀 있었죠. ‘그런 걸로 자퇴하면 후회할 게 뻔하다’란 반응이 많았습니다. 가장 불쾌했던 건, ‘고작 그 정도 이유로 서울대를 그만둔다면 서울대 학생으로서 지적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었죠. 개인적으로 신경 쓰였던 것 중 하나는 ‘김예슬씨 선언문보다 글을 잘 못 썼다’는 반응이었죠.(웃음)

대자보를 보면 김예슬씨 선언문보다 훨씬 더 구어체에 가깝습니다. “민망하네요” 같은 표현도 등장하고요. 그렇게 쓴 이유가 있나요.

유 어깨에 힘주고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경직된 말투로 쓰는 건 명문대생에게만 허용되는 허세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언은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운동의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물인데, 제가 한 건 개인적인 선언이거든요. 좀 더 보편적이고 공식적인 언어는 지금 제가 다른 청소년들이나 20대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는 대학입시 거부 선언이나 대학 거부 선언에 더 어울릴 것 같아요. 자퇴 이유를 밝힌 대자보에서는 제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된다고 봤어요.

대학의 문제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대학을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퇴는 극단적인 선택입니다. 김예슬씨의 대학 거부 선언이 꼭 필요했다고 보나요.

노영수(이하 노) 자퇴라는 수단을 선택한 것은 대학이 더 이상 회복불가능한 어떤 지점에 서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더는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없다는 개인적인 결단과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서 선택한 것이 자퇴가 아니었을까요. 대학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첫 계기였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유 제 경우에는 대학을 그만두는 데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라 대학을 다니는 데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어요. 한 학기에 몇백만원이나 되는 등록금을 내고 다녀야 하는데, 대학을 다닐 이유가 필요하잖아요. 저는 다만 더 이상 대학을 다닐 이유를 찾지 못했을 뿐이죠. 굳이 그걸 대자보라는 형식으로 드러낸 건 지금 상황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은 일단 가고봐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그런 말들 속에서 대학의 문제가 유예되거나 잊혀지면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노영수 “고액 등록금은 자신을 돌아볼 여유 없게 만들어”

지금 대학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노 등록금과 졸업 후 취직문제죠. 1960년대 미국 대학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난 다음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고액의 등록금을 책정하면서 학생들의 사회적 발언이 위축되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등록금이 주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일차적인 문제이고요. 학생들이 더 이상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없게 만든다는 게 더 큰 문제죠. 요즘 대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이나 농활도 못하고 아르바이트에 매여 있거든요. 취업문제는 여기 연동돼 있는 거죠. 출구나 대안이 안 보이니까 안타깝죠.

유 서울대는 사실 상대적으로 좀 여유로운 편이죠. 학벌자본도 있고 등록금도 상대적으로 낮으니까요. 그런데 그 여유가 다른 대학을 희생해서 얻은 여유라는 게 문제죠. 지방대 다니는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그런 문제를 절감할 수 있어요. 그런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중앙대는 두산그룹이 학교를 인수한 후 100대 명문대학에 진입하겠다고 했죠.

노 대학 평가 순위 같은 걸 보여주면서 이만큼 좋아졌다고 말하는데 괄목할 성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서열체제에서 오는 학생들의 불안한 심리를 재단이 이용하고 있다는 거죠. 학교 서열이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면 취직이 더 쉽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심리 또는 서열 하락에 대한 공포감을 이용하는 거죠.

기업화를 지향하는 대학의 문제가 사립대학에서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중앙대의 경우라면, 서울대 법인화는 서울대도 앞으로는 그런 사립대학의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요.

유 서울대 법인화가 완료되면, 서울대도 마치 기업의 여러 부서들처럼 단과대별로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겠죠. 대학을 그런 식으로 운영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성과라는 게 과연 무엇일지 걱정스럽습니다. 다른 대학의 구조조정 사례를 보면 실제로는 전혀 다른 학과들인데 겉으로 보이는 범주만 비슷하다는 이유로 통폐합을 해버리고, 대형강의를 늘리는 일들이 생기거든요.

대학이 기업화를 추구할 때 먼저 희생당하는 게 학내 민주주의죠.

노 퇴학당하기 전에 학교에 대한 비판글을 썼다가 학교 게시판의 아이디가 삭제됐어요. 지금 홍보실에서 게시판을 관리하는 인력이 두산에서 파견나온 사람들입니다. 게시판의 글을 올리거나 내리는 건 표현의 자유가 걸린 문제죠. 그런데 기업에 있던 사람이 대학에 와서 학생들의 담론의 장을 기업의 입맛과 잣대에 맞춰서 검열을 한다는 게 문제죠. 저는 복학을 했는데도 아이디가 복구가 안 됐어요. 학교 측에 물어보니 그냥 기다리라고만 해요. 벌써 두 달 기다렸습니다.

유 기업화 경향이 학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는 과연 대학이 민주적으로 운영됐는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죠. 그때는 과연 등록금 결정 등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었나. 과거 대학이 지금보다 자율적이었다 하더라도 그건 간섭을 안 했다는 거지, 학생들에게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한을 인정했던 건 아니잖아요. 민주주의라기보다 인권 차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유윤종 “서울대 법인화 성과 과연 무엇일지 걱정스러워”

대학 서열문제는 어느 정도나 심각하다고 보세요.

유 학벌이 상품이 됐죠. 등록금이 지금처럼 높을 이유가 없는데도 높은 것은 등록금을 아무리 올려도 대학을 찾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라고 봐요. 학벌 체제에서 얻을 수 있는 학벌자본이 대학에 있기 때문이죠. 성적이 좋은 친구들도 점수로만 평가받는다는 점에서는 학벌사회의 피해자입니다.

노 학교 서열을 학교 홍보실에서조차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죠. 학교 홍보실에서 게시판에 공지글을 올렸죠. 중앙대 자유게시판에는 이젠 ‘경중외시’(경희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서울시립대)가 아니라 ‘서성한중’(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의 시대가 열렸다면서 학교 발전을 자축하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올린 사람이 학교 홍보실 직원입니다. 학벌 체제가 대학사회에 얼마나 심각하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구성원이 다양해졌지만 초기 월가 점령 시위의 주축은 2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생들이 대학 체제 자체를 문제삼는 시위를 벌일 수 있다고 보시나요.

유 99%라는 구호는 중산층의 붕괴를 말하는 거죠. 먹고살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도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봐요. 한국은 더 심하죠. 불안이나 공포도 더 심하고. 대학 체제 자체를 겨냥한 시위를 하는 건 반값 등록금 시위보다는 더 어렵지 않을까요. 마땅한 주체도 없는 상태고요. 물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올 수도 있겠죠. 2008년 촛불집회처럼요. 하지만 큰 기대는 없어요.

노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1%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문제제기와 분석과 비판이 대학에서 나와야 하는데 지금 대학에서는 그런 전망이 안 보여서 답답합니다.

영수씨는 복학해보니 어때요.

노 두산그룹의 대학 점령이 완성됐다는 판단이 듭니다. 한때 공동체를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내고 저항했던 당사자로서는 착잡하죠. 지금 정부가 취업률을 잣대로 대학을 구조조정하겠다고 하잖아요. 이게 어디까지 갈지 걱정스럽죠. 최근에 구조조정 관련 간담회가 있었는데 폐지 대상으로 거론되는 학과 학생들에게 졸업해서 낙오자가 되고 싶지 않으면 받아들이라는 식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하지만 취업 준비기관으로 전락하면서 낙오하고 있는 건 오히려 대학 아닌가요.

윤종씨는 자퇴하면서 앞으로는 대학 거부 선언과 대학입시 거부 선언을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유 입시 거부 선언은 고등학생들과 함께, 대학 거부 선언은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그만둔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든 대학생들이 다 대학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럴 수도 없죠. 다만 입시경쟁, 학벌사회, 대학교육의 의미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김예슬씨 근황은
지난해 3월 대학을 거부한 김예슬씨는 그해 4월 대학을 거부한 이유를 보다 소상히 밝힌 <김예슬 선언>을 출간했다. 책에서 김씨는 “진달래가 필 때쯤이면, 눈 내린 날 행한 나의 대학 거부 선언은 시든 꽃처럼 잊힐 것이다”라고 썼다. 진달래가 두 번 피고 두 번의 가을이 왔지만 그의 선언은 잊혀지지 않았다. 선언 이후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주간경향>은 김씨의 근황을 직접 듣기 위해 그의 연락처로 전화를 했지만 김씨는 답을 보내지 않았다. 지난 10월 20일 김씨가 대학 재학 중일 때부터 활동해온 ‘나눔문화’의 한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김예슬씨는 나눔문화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며 “대학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책을 통해 다 말했기 때문에 더 할 말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주간경향>은 지난해 10월 19일 김예슬씨와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김씨는 대학 거부 선언이 남긴 파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본연의 일에 충실하려고 한다”며 “박노해 작가의 사진전을 돕고 있다”고만 말했다.

<글·사회 l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사진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