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막판, 기자는 한 목사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이 목사는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그 이유로 “종북좌파들이 서울광장에서 김정일 만세!를 하도록 내버려둘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진보네트워크에 개설된 한 블로그. ‘2011 뉴타운 간첩파티!’라는 이름의 행사 포스터에 이런 문구가 써 있었다. “간첩들아 모여서 국가보안법 분쇄하자!”,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
사회당 당원 김슷캇씨가 제작한 패러디 포스터 <뉴타운간첩파티> /진보넷
일부 누리꾼은 “국정원에 신고했다”며 “감옥갈 준비나 해라”고 댓글을 남겼다. 도대체 이 포스터의 정체는 뭘까. 정말로 한국 사회에 암약하는 간첩들의 커밍아웃? 가만. 포스터 문구를 보면 이상한 대목이 있다. “핑클도 아는 국가보안법.” 가수 이효리가 속했던 그 핑클? 이것도 조금 이상하다. “아이고 이놈이 간첩 잡네”, “간첩 살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어른들은 얌전한 게 좋다 하지만/새침데기 얄미워”. 혹시 접선 암호?
그런데 올린 사람의 이름이 낯익다. 김슷캇.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되어 외국 언론에까지 알려졌던, 전 세계 최초로 정당 산하에 오타쿠 위원회를 만든 인사다. 본명 김성일씨. 사회당 당원이다. 사회당은 ‘반북좌파’ 입장으로 유명하다. 그러다보니 부제가 눈에 띈다. 박정근 에디션. 박씨는 <주간경향>이 최근 보도한 황당한 국가보안법 사건 피해자다. 즉 자신의 트위터에 농담 삼아 올린 친북 메시지 때문에 ‘찬양·고무’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양반이다. 아직도 수사 중이라고 하지만, 본지 취재 결론으로는 1970년대 술 마신 김에 “북한도 살 만하지 않을까?…”식으로 말했다 고초를 겪은 여러 사건들, 일명 ‘막걸리 보안법 사건’의 부활이다.
그러니까 같은 정당 당원이 당한 피해를 패러디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씨에게 물었다. 이유는 싱거웠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은 거란다. 핑클은 왜 거론했나. 군대 때 본 <핑클도 아는 국군의 주적>이란 정훈만화가 기억났단다. 일종의 오마주다. ‘어른들은 얌전한 게 좋다 하지만’은 무슨 암호? “어린이 극화 ‘꾸러기’ 주제가 가사다.” 행사명은 지난해 홍대 앞 두리반 철거 논란 때 인디밴드 중심의 공연을 다룬 독립영화 <뉴타운컬쳐파티>를 패러디한 것이다.
포스터가 주목을 끈 다른 이유는 시각적 효과다. 가슴에 ‘I ♥Love 김정일’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휴대폰 대신 무전기 같은 걸 들고 누군가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런 그림들은 다 직접 그린 것인가. “국정원에서 이전에 ‘절대시계를 찾아라’라고 일종의 퀴즈게임을 사이트에 게재한 적이 있다. 보기 중 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맞히면 국정원 시계를 추첨해서 주는 이벤트였는데, 그 이벤트 페이지에서 가져온 그림이다.”
패러디라고 하지만 “조금 지나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한 진보성향 게시판에서는 “서울시장 선거를 물타기하려는 한나라당 알바의 짓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어쨌든 궁금하다. 포스터의 ‘소스’도 국정원이고, 일부 누리꾼은 국정원에 고발도 했다고 하는데. 국정원의 반응은? 뒤늦게 답변이 왔다. 문의한 지 3일 만이다. 국정원은 “111신고전화를 통해 다수의 신고가 들어온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포스터의 소스도 국정원 꺼, 맞다. 그러나 국정원은 “금번 패러디물은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삽입하여 악의적으로 편집·유통시킨 것”이라며 “현재 관련기관에서 법 위반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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