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사이트 개설 수사기관 요청 관리 드러나
게임회사들이 별도의 사이트까지 만들어 수사기관에 회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게임회사 넷마블이 수사기관에 보낸 공문을 보면 이런 내용을 잘 알 수 있다.
“의뢰하신 대상자가 넷마블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된 계정이 확인되었습니다.…(중략)…실시간 추적 중인 해당 계정이 넷마블 사이트에 접속할 경우 요청하신 핸드폰으로 실시간 SMS 통보가 이뤄지며, 아래 인터넷을 통해서 확인 가능합니다.”

대표적인 게임회사가 수사기관에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대외비 사이트. 왼쪽이 엔씨소프트이고 오른쪽이 넷마블이다. 특정될 수 있는 일부 정보는 편집했다.
넷마블은 <대항해시대> <군주온라인> <서든어택> 등의 게임을 서비스하는 대표적인 게임회사. 앞에서 언급한 ‘수사기관 협조’ 사이트를 운영하는 곳은 넷마블의 자회사다. <리니지> <아이온> 등을 운영하고 있는 엔씨소프트도 수사기관에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별도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엔씨소프트의 해당페이지에 기재된 안내문구는 다음과 같다. “○○○○에 기재된 모든 정보는 수사기관을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입니다.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휴면계정에도 영장 발부되는 까닭은
게임회사들이 별도의 사이트까지 만들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해당 회사의 게임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사용자는 물론이고, 회사 내에서도 거의 공개되지 않은 사안이다. 한 게임업체 홍보팀 관계자는 “대관(對官) 업무 관련으로는 우리로서도 전혀 들은 바가 없어 뭐라고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이 범죄자를 검거하는 데 이런 기법을 쓰는 것은 그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범인들이 어느 사이트에 접속하는지 분석한 뒤 ‘통신사실자료제공요청 조회’를 보내 협조를 얻어 검거하는 방식이다. 앞의 ‘넷마블’ 공문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업체가 ‘실시간 추적자’로 등록을 해놓은 뒤 범인이 업체의 사이트에 접속하면 자동적으로 의뢰수사기관의 휴대폰에 접속자의 ‘현 위치’가 전송되는 방식이다. IP로 위치가 특정되는 PC방에서 범인 검거가 많은 까닭이다.
문제는 남발된다는 것이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자료에 보면 이 수사기관은 앞에서 언급한 넷마블, 엔씨소프트 이외에도 넥슨, 싸이월드, 버디버디 등에도 관련자료 제출과 실시간 추적 등록을 요구했다. 회신된 공문을 보면 ‘1년 이상 접속하지 않은 사용자’거나 ‘휴면계정’이라는 답도 보인다. 한 업체가 보낸 회신을 보면 ‘휴면계정’이라고 할지라도 ‘실시간 위치추적 등록’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정리하자면 이것이다. 20대와 30대는 대부분 게임을 즐긴다. 대부분 하나 이상 계정을 갖고 있다. 설혹 게임을 즐기지 않더라도 2500만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싸이월드 등을 통해서는 대부분의 인적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확인한 통신자료를 바탕으로 구체적 범죄사실이 있을 때 영장을 받으면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받을 수 있다. 수사기관 입장으로는 대부분의 게임회사를 망라해 촘촘한 그물망을 깔 수 있다. 즉, 저 중 어느 하나라도 접속하면 바로 문자메시지를 통해 수사기관에 해당 계정의 사용자 IP가 통보된다.
우려되는 것은 이런 수사기법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통신사실확인자료’의 경우 관련해서 법원영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지아이디나 휴면계정의 경우 어떻게 영장이 발부되었을까.
정보인권단체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추진해온 조수진 변호사는 “영장이 광범위하게 발부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특정인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피의정황’이 영장의 대부분 내용을 차지하는 반면, 통신사실확인자료 허가와 관련된 내용은 간략히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영장을 발부하더라도 집행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나 장소, 범위에 대한 제한이 있어야 하는데 관련된 법원이나 검찰의 지침이나 국회에서 정하는 법령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식의 영장청구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다시 우려가 되는 것은 이런 수사기법이 다른 방법과 결합되어 악용되는 경우. 정확하게 일치하는 케이스는 아니지만 2004년 평택 대추리 사건 당시, 시위 참가자들의 참여혐의가 나중에 휴대폰 위치정보추적을 통해 특정되었던 사례가 있었다.
수사기관 편의 위주 “악용 우려”
게임업체들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수사기관을 위한 별도의 사이트를 개설한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게임업체뿐 아니라 통신사, 포털도 별도의 사이트를 개설해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역시 사이트를 개설해놓고 있는 다른 게임업체의 대외협력 업무 담당자는 “택배회사의 업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담당자의 설명에 따르면 관련 업무는 주로 모사전송(팩스)을 통해 이뤄지는데, 경찰, 검찰, 국정원 등 수사기관뿐 아니라 전국에서 관련 업무 요청이 들어오기 때문에 일일이 전화나 이메일로 처리할 수 없어서 수사기관들이 업무협조 접수 및 진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는 설명이다.
![[사회]유명 게임회사들, 수사기관 ‘전자미행’ 협조?](https://img.khan.co.kr/newsmaker/954/20111213_954_A59a.jpg)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수사기관 입장에서도 한두 건일 경우 그냥 전화로 처리하지만, 대상 건수가 많을 때는 일일이 처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서로의 편의를 위해서 사이트를 개설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의 게임업체 관계자는 “특별히 업무가 폭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기간, 예를 들어 검거캠페인 기간 등에는 요청이 몰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내용을 검토한 양홍석 변호사는 “사이트 내부를 살펴볼 수 없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지만, 이런 식으로 실시간으로 위치추적이 가능하고 각 게임사가 집약시켜놓은 개인정보의 활용이 가능하다면 악용될 여지가 많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통신사실확인자료는 얼마나 제공되었을까.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매해 상반기와 하반기를 나눠 제공건수를 공개하고 있다. 민주당 김재윤 의원이 방통위에 요청해 받은 2006~2010년 누적자료에 따르면 2006년 15만743건에서 2010년 23만8869건으로 꾸준히 증가추세다. 방통위가 지난 10월 14일 발표한 올해 상반기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현황에 따르면 12만4658건. 지난해 동기(11만7941건) 대비 5.7%가 증가한 수치다. 게임업체들이 실시간위치추적을 등록하는 사용자는 얼마나 될까. 현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상학 방통위 통신정책국 통신정책기획과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통신사실확인자료가 요청되는지 알 수 있는 권한도 없고 방법도 없다”며 “방통위가 각 사업자로부터 제출받는 통계는 관련법에 의해 정해진 항목과 수치만 취급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보인권단체들은 특히 아직 이뤄지지 않은 행위, 즉 실시간 위치추적이 자동으로 수사기관으로 넘어가는 경우를 ‘전자미행’으로 규정하며 통신비밀보호법 등 관련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범죄자 검거목적으로 IP 추적이 이뤄진다고 하지만, 영장을 발부해 범죄자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도록 해주는 것과 관련해서는 어떤 죄목이며, 어느 범위까지 허용해야 하는지는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