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용산의 눈물’은 아직도 진행형

서울시 재개발현장 곳곳서 상가세입자들 힘겨운 투쟁

용산 참사가 벌어진 용산 4구역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63번지 일대의 땅이다. 참사 현장인 남일당은 2010년 12월 1일에 철거됐다. 남일당이 허물어진 뒤 공터는 지금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참사 현장은 사라졌지만 재개발의 억센 발톱은 곳곳에서 세입자들을 움켜쥐고 있다.

멀리 갈 것 없다. 남일당 터 앞에서 용산역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또 다른 재개발 지역을 곧바로 만날 수 있다. ‘용산역전면 3구역’ 재개발 지역이다.

지난 1월 3일, 2009년 용산 참사가 벌어졌던 용산 4구역 맞은편 대로변에 재개발을 반대하는 용산 3구역 상가 세입자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정원식 기자

용산 3구역은 2006년 12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2008년 11월에 관리처분인가가 나와 현재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이 구역에 있던 100여개 점포 중 90여개 점포는 이미 비어 있다. 이곳에서 1992년부터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인순씨(58)는 떠나지 않았다. 김씨는 14년 동안 은행을 다니고 받은 퇴직금에 지인들로부터 빌린 돈을 보태 15평 남짓한 가게를 시작했다. 권리금과 시설투자비 등을 합쳐 도합 1억여원을 썼다. 그러나 영업손실보상비로 책정된 돈은 1950만원에 불과하다. 최초 감정평가를 받은 후 서울지방토지수용위원회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잇달아 이의를 제기해 감정평가를 다시 받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지난 1월 3일 오후 김씨의 가게에 모인 귀일만두 이정근씨, 미광사 허상선씨, 하나유통 최희윤씨 등 상가 세입자 3명은 “첫 감정평가액이 2000만원 전후였는데 3년 동안 두어 차례 더 감정평가를 받고 오른 금액이 500만원 정도”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들에게 적용된 영업손실보상비는 3개월치 기준이다. 용산참사 후인 2009년 5월 영업손실보상비를 종전의 3개월치에서 4개월치로 상향조정하도록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 조항이 변경됐지만, 법안 통과 이전에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용산 3구역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설령 법률을 소급적용해 보상산정기준을 1개월 더 늘린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이주대책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김씨는 “보상을 받고 나간 사람들 중 다시 장사를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돈으로는 장사 못 한다. 국가가 상인들을 다 건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남은 상인들은 철거대책위를 만들어 버티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영업손실보상금
조합이 관리처분인가를 받으면 철거가 빠르게 시작된다. 참사가 일어난 용산 4구역은 2008년 5월 30일에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다. 철거는 그로부터 두 달도 안 된 그해 7월 16일부터 시작됐다. 용산 3구역 대책위 소속 상인들은 관리처분인가 이후 3년 넘게 버티고 있다. 바로 앞 4구역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지는 참극이 벌어지면서 조합과 시공사가 그나마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상인들은 생각한다. 가게 문은 열고 있지만 사실상 장사를 접은 지 오래다. 철거로 잔해만 남은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손님들을 밀어내고 있는 탓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지역의 사정이 대체로 이러하다.

이미 철거가 끝났지만 힘껏 버티겠다고 작심한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아예 노숙을 하기도 한다. 이승철씨(57)는 지난해 10월 4일부터 서울시 종로구청 앞 인도에서 자고 있다. 기온이 영하 8도로 내려간 1월 4일 밤에도 그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침구는 매트리스 대용으로 깔아놓은 스티로폼과 이불, 그리고 비닐 한 장이 전부다. 이씨는 2006년 12월부터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 공평빌딩 인근에서 노래주점을 운영했다. 그의 가게는 인근 지역이 2007년 10월에 공평구역 제1지구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재개발 대상에 포함됐다. 이씨는 40평짜리 가게에 권리금 1억8000만원을 포함해 2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2006년 9월부터 이웃에서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운영하던 이상미씨(42)도 10평짜리 가게에 2억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이상미씨의 가게는 인근 상인들 중 가장 빠른 2010년 2월에 철거됐다. 철거는 순식간에 끝났다. “가게 문은 보통 오전 7시쯤 아르바이트생이 열었다. 철거당하던 날 아침에 아르바이트생이 울면서 전화를 했다. 다 뜯어갔다고 하더라. ‘다 끝나고 전화하면 어떡하느냐’고 했더니 40~50명이 몰려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전화할 시간도 없었다고 하더라.”

“싸워서 부당함이나 알리고 죽자”
두 사람 모두 영업손실보상을 위한 감정평가조차 받지 못했지만 영업손실보상금을 받기 위한 소송을 할 생각은 없다. 다른 재개발 지역 상가 세입자들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에게 절박한 것은 영업손실보상금이 아니라 비슷한 조건에서 장사를 할 수 있는 ‘수평이동’ 대책이기 때문이다.

북아현동에서는 또 다른 상가 세입자가 노숙을 하고 있다. 이재우씨(가명·49)는 북아현 1-3 재정비촉진구역 상가 세입자다. 그가 2006년부터 운영하던 곱창집은 비교적 최근에 철거됐다. 지난해 11월 9일 아침이었다. “포장이사는 꿈도 못 꾸고, 일반이사도 아니고, (가게 집기들을) 그냥 내팽개쳤다.” 이씨는 아내와 함께 아수라장이 된 가게 바닥에 앉아 버텼다. 그렇게 48시간을 버티고 난 11월 11일 오전 11시쯤 그가 잠시 법원에 간 사이에 포클레인이 가게를 무너뜨렸다. 떨어져내리는 콘크리트 더미에 아내가 다쳤다. 무너진 가게 앞에 파라솔 두 개와 비닐로 텐트를 치고 노숙을 시작한 게 그날부터다. 그는 “이사비 정도밖에 안 되는 2400만원의 보상금으로 서울 어느 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겠나. 싸워서 부당함을 알리고나 죽자”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다.

2009년 5월 도정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용산 참사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마련된 개정안이지만 48조 개정으로 세입자에 대한 보상이 조합이 아닌 건물이나 주택 소유주의 부담이 됐다. 이 때문에 소유주가 사업시행인가 전에 세입자와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세입자를 강제로 내쫓는 사례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서울시 양천구 신정 제4 주택재개발정비사업지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서울시 재개발 관련 정보 공시시스템인 ‘클린업 시스템’을 보면, 이 지역은 현재 사업시행인가 단계까지 사업이 진행됐다.

이 지역 상가 및 주거 세입자 대책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금순씨(55)는 지난해 10월 12일에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그 뒤부터는 네 식구가 집 앞에 천막을 쳐놓고 생활하고 있다. 이곳 시장에서 건어물과 야채를 팔던 위현옥씨(70)는 “2010년 1월에 건물주가 지난해(2009년) 법이 바뀌어서 주인이 보상을 해주게 됐으니 어서 나가라고 해서 가게를 비워줬다”며 “지금 나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시커먼 옷을 입은 용역들이 다 끌어낸다면서 쫓아냈다”고 말했다.

재개발 지역 세입자들에게 합리적인 보상과 이주대책은 중요하다. 그것들이 없으면 다른 곳에서 삶의 터전을 이어갈 수 없다. 그러나 싸우는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용산 3구역 상가 세입자 김인순씨의 말이다. “강제철거가 되더라도 싸우겠다. 이젠 이런 생각이 든다. 사회가 이렇게까지 합리적이지 않다면 설령 내가 보상을 제대로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건 병든 사회다. 사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