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99%가 원하는 진짜 뉴스를 지향한다”

MB시대 수난 겪은 해직 기자들 온라인 뉴스로 뭉쳐

설 연휴를 앞둔 1월 19일 오후 4시쯤. 강렬한 방송용 조명이 노종면 기자를 향해 쏟아졌다. 그는 정면을 응시한 채 또박또박 앵커 멘트를 시작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해직 언론인들과 함께 만드는 방송뉴스 뉴스타파를 시작합니다.”

전형적인 방송 스튜디오의 풍경과 흡사하지만 설비는 궁색하다. 모니터용 스크린 역할은 애플의 노트북 컴퓨터가 대신한다. 방송 원고를 비춰주는 프롬프터는 애플 맥북에어가 대체한다. 촬영장소도 스튜디오가 아니라 서울시내 한 사무실의 귀퉁이 공간이다.

지난 1월 19일 뉴스타파 제작진이 제작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 위에서 두 번째는 권석재 기자, 그 아래는 노종면 기자, 오른쪽은 위에서 차례대로 박대용 기자, 이근행 PD, 박중석 기자. | 정원식 기자

잠깐의 리허설을 마친 후 촬영과 조명을 맡은 권석재 기자가 조명과 카메라를 치웠다. 앵커와 촬영기자가 모두 YTN 해직자들이다. 두 사람은 같은 방송사의 현덕수, 정유신, 우장균, 조승호 기자 등과 함께 2008년 10월에 해고됐다. 이들은 그보다 한 달 전 사측으로부터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됐는데, 10월 인사위원회에서 해고가 결정된 것이다. 이때 이 6명을 포함한 YTN 기자 33명이 무더기로 중징계를 받았다. ‘업무방해’의 실상은 이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 언론특보를 지낸 구본홍 당시 YTN 사장의 사장 임명을 반대하는 투쟁에 앞장섰다는 것이었다.

리허설을 지켜보던 이근행 MBC PD는 “기존 뉴스에 비해 인력이나 설비 등 물적 토대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 또한 해직자다. 이 PD는 2010년 4월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으로 방송 정상화와 김재철 MBC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그해 6월 강제해직됐다.

권력의 언론탄압이 뉴스타파의 배후
이근행, 노종면, 권석재. 세 해직 기자가 ‘뉴스타파’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뉴스타파는 인터넷을 통해 방송하는 온라인 뉴스다. “낡은 뉴스를 타파하고 99%가 원하는 진짜 뉴스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으로 기존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직자들을 중심으로 언론의 비판기능을 되살리는 촉매를 만들어보자는 언론노조 차원의 고민이 뉴스타파를 낳았다. 권력의 언론탄압이 뉴스타파의 배후인 셈이다. 세 해직자 이외에 최상재 SBS PD, 변상욱 CBS 기자, 박대용 춘천MBC 기자(언론노조 파견), 박중석 KBS 기자(언론노조 파견), 블로거 미디어몽구가 제작과 취재에 참여한다. KBS 탐사보도팀을 이끌었던 김용진 KBS 기자는 탐사보도 자문을 맡았다. 이 중 세 해직 언론인과 최상재 PD, 김용진 기자 등은 현 정권 출범 이후 진행된 방송장악과 언론탄압의 역사를 집약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이후 해직 언론인들은 투쟁-해고-소송-투쟁으로 이어지는 심란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이근행 PD는 노조 파업을 주도한 일로 해직된 이후 지난해 11월 25일 서울고등법원 판결에서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해고를 담담하게 받아들인 편”이라고 했다. MBC 집행부 교체로 노조 일을 내려놓은 후 오랜만에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있던 그가 뉴스타파에 참여한 것은 “해직자들이 지금 이 시대에 갖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다. 방송이 정권의 홍보매체가 된 지금 언론탄압의 피해자인 해직자들만이라도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자기검열 때문에 취재 못하는 일 없어야”
해직 후 투쟁을 이어간 노종면 기자는 2009년 3월에는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YTN 해직자 6명의 복직 문제는 미궁에 빠졌다. 복직 가능성이 설핏 비친 적은 있다. 해직자들은 해고무효확인소송 1심에서는 전원 해고무효 판결을 얻어냈다. 그러나 2심에서 뒤집혔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4월 해고무효확인소송 2심에서 정유신·권석재·우장균 기자의 해고는 무효지만, 노종면·현덕수·조승호 기자 3명의 해고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앞서 2심 재판부가 전원 복직을 전제로 한 조정안을 노사 양쪽에 제시했지만 사측은 이를 거부한 상태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결국 YTN 노조는 3명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에 대해, 사측은 3명의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각각 상고했다.

노종면 기자는 뉴스타파의 일차적인 목적이 특종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특종보다는 자기검열 때문에 취재를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다른 언론인들과 공유하고 싶은 게 먼저다. 현 정권 하에서 언론인들의 자기검열이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언론노조 전 위원장으로 2009년 미디어법 반대 언론노조 총파업과 MBC 파업을 이끈 최상재 PD는 같은 날 판결에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난해 8월 언론노조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복귀했지만, 지난해 12월 회사는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경우 대기발령을 낼 수 있다’는 사규를 근거로 최 PD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를 취했다. 대기발령은 1월 20일 철회됐다. 하루 전날인 19일 뉴스타파 제작회의 도중 이 소식을 접한 이근행 PD는 “이젠 (뉴스타파에) 정말 해직자들만 남게 되는 거야? YTN 해직자 중에서 인력을 보강할까?”라고 농을 던지며 기뻐했다.

정권의 방송장악은 해직을 포함한 징계나 소송의 형태로만 전개된 것은 아니다. 언론의 비판기능을 무력화하는 또다른 방법은 비판보도의 중심에 서 있던 언론인을 비취재부서나 지역으로 전보발령내는 것이다. 김용진 기자가 그런 경우다. KBS 탐사보도팀에서 2007년 대선후보 검증과 이명박 정권 초기 내각 인사 실태를 점검하는 보도를 했던 그는 2008년 9월 17일 느닷없는 인사로 지역으로 좌천됐다. 한 달 동안 무려 세 차례나 다른 곳으로 전보발령이 났다. 탐사보도팀의 동료기자들도 모두 취재와 무관한 부서로 전출되면서 탐사보도팀은 해체됐다. 김 기자는 2010년에는 KBS의 과도한 G20 홍보를 비판하는 글을 <미디어오늘>에 기고했다가 정직 4개월을 통고받았다.

언론노조 집계(2011년 5월 기준)를 보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총 61명의 언론인이 기소됐고, 183명이 해고를 포함한 징계를 받았으며, 63명이 징계에 회부됐다. 김용진 기자는 “해직자들과 징계를 받은 이들은 언론의 공공성을 확보하려다 그렇게 된 것이므로 모두 원상복구되어야 한다. 또한 법적인 해고무효나 무죄판결로 끝낼 일이 아니라 배후의 힘이 무엇이었는지 반드시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