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디지털 기억]온라인 서비스 판도 변화, 빨라도 너~무 빨라

인터넷 초창기 강자들 모두 쇠락… 한두 해 만에 이용자 급감 다반사

2012년 경향신문은 독자 투고를 전화, 팩스, 이메일로 받는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경향리크스’라는 이름의 제보란도 따로 있다. 1990년대에는 홈페이지 대신 PC통신이 있었다. 하이텔 이용자들은 초기화면에서 12번 여론광장(go letter)을, 천리안 이용자들은 초기화면에서 16번 독자투고(go opinion)를 선택하면 개별 기사나 신문 지면에 대한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다.

1월 31일 나우누리 서비스가 종료됐다. 1990년대 중반 PC통신은 당대의 최신 트렌드였다. 사진은 남녀가 PC통신을 통해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이야기를 그린 1997년 영화 <접속>의 한 장면. | 경향신문

1995년에는 PC통신 가입자가 150만명을 돌파했다는 게 뉴스가 되기도 했다. 1995년 3월 19일자 매일경제를 보면, “PC통신 가입자 수는 1993년 3만명에서 지난해 78만명, 올해 15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며 이용자층도 종래 20~30대 대학생 및 직장인 중심에서 초·중·고생, 40대 장년층 및 여성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으로 확산되고” 있었고 “정보활용 수단으로서뿐만 아니란 광고·홍보·여론형성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종합미디어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PC통신은 당시의 최신 트렌드였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그 모든 영화(榮華)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기술경쟁이 심하고 기술의 교체 주기가 빠른 IT산업에서 유행은 빠르게 바뀐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많은 온라인 서비스들이 명멸했다. 한때 시장을 주도하며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서비스가 불과 한두 해 사이에 후발주자로 뒤처지는 경우도 많았다.

국내 최초의 인터넷은 1982년 5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구미 한국전자기술연구소가 SDN이라는 이름의 전산망을 구축하면서 등장했다. 1986년에는 최초의 PC통신 서비스 천리안이 등장했다. 천리안은 1988년 유료가입자를 받으면서 게시판, 채팅, 자료실 등 PC통신 시대의 핵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하이텔(1992년), 나우누리(1994년), 유니텔(1996년) 등 후속 PC통신 서비스들이 등장하면서 PC통신은 1990년대 내내 전성기를 누렸다.

3대 PC통신 중 명맥 유지는 천리안뿐
1990년대 3대 PC통신 중 이름만이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천리안뿐이다. 나우누리는 1월 31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하이텔은 이미 5년 전인 2007년 2월 28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용자가 감소하고 사업성이 악화해 사업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 그 이유다.

PC통신은 19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으로 다음·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급격하게 위축됐다. 3대 PC통신도 포털로 전환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하이텔은 2004년 한미르와 통합해 포털사이트 ‘파란’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1GB 용량의 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5대 스포츠 신문의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으나 네이버와 다음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2004년 7월 서비스를 시작한 파란은 8년 만인 2012년 7월 31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서비스 종료 직전 파란의 시장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파란을 운영했던 KTH는 주력 부문을 스마트 모바일 사업으로 변경했다.

나우누리는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이용자들을 모았으나 PC통신-웹 서비스-모바일로 넘어가는 흐름을 견뎌내지 못했다. 나우누리를 운영했던 나우콤은 2008년 1월 네트워크 보안 솔루션 업체 윈스테크넷에 합병돼 네트워크 보안 서비스, 웹 스토리지, 게임, 개인방송 채널 ‘아프리카’ 등의 사업을 해왔다. 유니텔은 2001년 삼성으로 매각돼 포털 사이트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포털로의 존재감이 미미하다.

아이러브스쿨도 현재 유명무실한 상태
천리안은 2003년 검색엔진 서비스 심마니와 통합해 포털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이후 최고 10GB 대용량 파일 저장 서비스 ‘디스크팟’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유니텔과 마찬가지로 포털로의 위상은 네이버나 다음에 비할 바가 아니다.

1996년 1월 9일 삼성컴퓨터 통신이 PC통신 유니텔을 선보이고 있다. | 경향신문

1997년 한국에 상륙한 야후는 인터넷 서비스 시장에서 지배적 강자의 위치가 얼마나 빨리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야후는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시장을 평정했다. 웹메일 서비스가 웹기반 서비스의 거의 전부였던 당시 야후는 디렉토리 검색 서비스를 시작했다. 야후는 서비스 시작 1년여 만인 1998년 10월 300만 페이지뷰를 돌파했고, 1999년 9월에는 국내 최초로 하루 2000만 페이지뷰를 넘어섰다. 야후의 이 같은 성공에는 당시 국내 웹사이트가 5000여개에 불과해 시장 자체가 협소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야후가 등장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까치네, 미스다찾니, 심마니 같은 국내 검색 서비스는 야후에 밀려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이처럼 급성장했던 야후도 불과 몇 년 후부터 추락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네이버, 다음, 엠파스 등 토종 검색 서비스에 밀려 고전하던 야후는 지난해 12월 31일 국내 서비스를 종료했다.

1998년 두루넷이 전화선을 사용하는 모뎀이 아닌 전용 케이블을 사용하는 모뎀으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웹이 활성화했다. PC통신 시절의 텍스트 중심 인터넷은 웹 활성화와 함께 그래픽 중심 인터넷으로 전환됐다. 이 무렵 탄생한 포털 다음은 PC통신 동호회를 확장한 ‘카페’ 서비스를 통해 성장했다.

다음 카페의 성공은 커뮤니티 서비스의 활성화로 이어졌는데, 2000년대 초반 초등학교 동창생 찾아주기 사이트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아이러브스쿨이나 커뮤니티 전문 서비스 프리챌이 대표적이다. 1999년 만들어진 아이러브스쿨은 1년 만에 회원을 500만명이나 모았으나 2000년 8월 야후의 500억원 인수 제의를 거절하고 한 중소기업에 지분을 넘겼다. 그러나 지분을 넘겨받은 중소기업은 다시 다른 회사에 지분을 넘기고 해외로 도피하고 지분매각과 관련한 소송이 벌어지는 등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현재도 홈페이지는 유지되고 있으나 유명무실한 상태다. 한때 가입자가 1000만명에 이르기도 했던 프리챌은 2002년 유료화 선언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유료화 선언 이후 이용자들이 다음 카페와 싸이월드로 이동하면서 100만개에 가깝던 커뮤니티가 7개월 만에 40만개로 줄어들었다. 프리챌은 결국 지난 2월 18일 문을 닫았다. 이로써 야후(2012년 12월 31일), 나우누리(1월 31일), 프리챌 등 PC통신과 1세대 온라인 서비스를 대표하던 서비스들이 불과 두 달 사이에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