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장준하 사인 규명, 박대통령이 결단해야”

정밀감식 국민보고대회 연 백찬홍 진상조사공동위원회 공동대표

“제가 사회를 봤지만 사실 장준하 선생 유해 정밀감식 결과 국민보고대회가 열리던 그날(3월 26일) 아침까지도 어떤 결론이 날지 알 수 없어 초조했다. 감식을 진행했던 이정빈 교수 스스로 입을 다물어서 혹시 결론이 다르게 나는 것 아니냐, 행사를 연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던 것도 사실이고….”

백찬홍 장준하 사인 진상조사공동위원회 공동대표가 그간의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백찬홍 장준하 사인 진상조사공동위원회 공동대표가 전한 ‘장준하 타살 발표’ 뒷이야기다. “당일 공개한 것인데,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도 추정만 한 것이다. 살까지 있는 온전한 상태의 시신이라면 또 모를까, 38년 전의 유골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만큼의 결론을 낸 것이다.”

1975년 8월 17일 오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이 완전히 드러나기에는 아직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유일한 목격자라고 주장한 인사는 그의 죽음을 “실족사”라고 주위에 설명한 뒤 잠적했다. 당시 검찰은 황급히 기자회견을 열어 “장준하의 사인(死因)은 실족사가 맞다”고 발표했다. 의문을 가지고 추적한 기자들은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다. “한국의 야당 지도자가 괴사(怪死)를 당했다”고 기사를 쓴 외신기자는 추방됐다. 유족들에 대한 정보기관의 협박은 계속됐다.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턱뼈가 부서진 장남 호권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외국으로 출국해 한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타살 결론, 발표 당일까지 몰랐다
군사독재정권이 끝난 뒤인 1993년, 다시 2002년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가 죽음의 진실을 추적했지만 결론은 “진상규명 불능”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큰 비가 내리고 장준하 선생이 묻혀 있던 묘소의 석축이 무너져내린 뒤 경기도 파주시가 제공한 ‘장준하 공원’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골이 드러났다. 38년 전 문상객으로 가장해 몰래 검안한 의사들이 남긴 “머리에 2㎝ 정도의 구멍이 나 있어 성냥개비가 쑥 들어갔다”는 증언의 실체가 밝혀진 것이다. 두개골은 둥근 모양으로 깨져 있었고, 여기에 가해진 ‘외부압력’이 결정적인 사인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3월 26일, 국민보고대회 자리에서 “장준하 선생은 외부 가격으로 사망한 후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의 발표를 듣던 장남 호권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장준하 타살 결론은 주요 언론의 머릿기사를 장식했다.

하지만 곧바로 ‘반박’이 나왔다. 이미 ‘타살’로 방향을 정해놓고 짜맞춰진 결론이 아니냐는 것이다.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는 이 교수를 인터뷰하면서 “한 법의학자의 개인적 소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23일부터 감정위원회를 구성해 장준하 의문사와 관련한 자료를 검토해온 대한법의학회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정해, 혹은 잘못된 판단에 근거해 사실을 오도할 수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현재의 자료들만으로는 추락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없지만 두개골 골절 손상은 추락에 의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라는 보고서를 지난해 12월 3일 작성해 1월 말 공지·회람했다. 결론에는 “가격에 의한 결과일 가능성도 적극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여져 있다.

대한법의학회는 보고대회 다음날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에서 “공동조사위원회 측에 다양한 검사를 하기 위해서 시간의 제약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등의 의견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참여하지 않았다”며 “일부 언론에서 서울대 법의학연구소가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확인 결과 역시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보도와 같이 감식은 이정빈 교수 개인이 진행한 것이라는 것이다. 백 공동대표는 “논란이 불거질까봐 피한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들의 입장에서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어떤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솔직히 이 교수를 집단으로 ‘이지메’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쪽 학계에서는 원로이고, 대검찰청에 가면 초상화가 걸려 있을 만큼 한국 법의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해온 분인데….”

법의학자로서는 이 교수만 참여한 것이 맞지만, 유골 감식 과정에는 고고학자를 비롯, 현직에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다만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이 교수가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표해서 발표하는 형식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경계했던 것이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다. 유골 감식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전에 의문사위원회 등에서 조사를 할 때도 유골 감식을 못했던 것은 유족들 입장에서 볼 때는 몇십 년 전 돌아가신 분의 무덤을 여는 것이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홍수로 무너지고 이장을 하면서 수습한 유골에서 선생의 사망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 골절이 뚜렷이 보였기 때문에 감식을 한 것이다. 우리가 이 교수 등에게 주문했던 것도 ‘대선 전에 할 필요는 없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장준하 선생은 당시 박정희 정권에 맞선 야당 정치인이었다는 것을 떠나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한 민족적 스승인데, 자칫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게 되면 그분의 업적이나 명예에 누를 끼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우리 입장에 이 교수도 적극 동의를 해서 선뜻 맡았던 것이다.” 대선 직후 발표도 가능했지만, 가능한 한 완벽한 검증을 거쳐 3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발표한 것도 정치적 해석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3월 30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故) 장준하 선생 겨레장 발인제를 마친 운구행렬이 서울광장을 떠나 노제가 열리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으로 향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여전히 ‘공개불가’ 상태인 자료들
그렇다면 앞으로 할 일은? 유족과 공동조사위원회의 요구는 특별법을 만들어 정식으로 재조사를 하자는 것.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은 많다. 1993년과 2002년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때 사망 전후로 당시 정보기관이 장준하 주변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이 사안으로 당시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을 독대하는 등 개입 ‘정황’은 나왔다. 하지만 당시 정보기관들은 그 정황을 뒷받침할 존안파일 등의 자료 제출은 거부했다.

실족 현장을 유일하게 목격했다는 김모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그 후 언론 인터뷰와 기고 등을 통해서 “계훈제, 문익환 목사 등에게 당시 정황을 소상히 설명했고, 그분들은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적극 밝히지 않았다”며 “사망과 관련한 의문의 진실을 밝히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백 공동대표는 “정말 김씨가 결백하다면 사건 이후 유족들을 찾아와 그날 벌어진 사건의 정황과 내용을 소상히 설명해주는 것이 맞는데, 사건 이후 지난 38년 동안 김씨는 단 한 번도 유족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과거의 조사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2년 의문사진상조사위가 입수한 당시 중앙정보부의 1쪽짜리 당일보고 문건에는 그날 오후 장준하 선생의 집에 전화를 걸어 사망 사실을 알린 이로 김씨를 지목하고 있다. 지난해 장준하 선생 유골 공개 후 일부 언론이 지방에 거주하는 김씨를 찾아가 의견을 부탁했지만 그는 완강하게 인터뷰를 거절했다.

백 공동대표는 “이미 대법원에서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판결이 나왔고, 지난 1월 장준하에게 씌워진 반유신운동 혐의는 무죄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장 선생의 사인이 밝혀진다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담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봐도 아버지 때의 일이고, 국민대통합을 이야기했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용기 있게 결단을 내리는 것이 국민들로부터 더 큰 지지와 환영을 받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