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종편 선정성은 탄생 때부터 예고되었다?

‘5·18 방송’ 계기 막말·불공정 논란 또다시 가열… “보수 거대언론이 모기업인 이상 본질 안 변해”

종합편성채널(종편)의 ‘막말 방송’이 또다시 논란을 부르고 있다. TV조선과 채널A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언론 관련 시민단체와 진보적 언론학자들은 종편의 왜곡 방송이 갑자기 튀어나온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조중동과 매일경제신문이 각각 세운 4개 종편사는 1년 만에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이들이 적은 제작비를 들이면서도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막말 방송’이라는 것이다.

2011년 1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종편 개국쇼에 각계 인사들이 모였다. 최시중 방통위원장 등 MB정부 인사들과 조선·중앙·동아·매경 신문사·방송사 대표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대선 방송심의 제재 19건 중 13건이 종편
5·18을 앞둔 5월 13일과 15일, TV조선과 채널A에 탈북자들이 출연했다. 자신을 북한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소개한 임천용씨는 TV조선에서 1980년 5월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 1개 대대 병력이 침투했고, 당시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도 북한군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을 5·18 당시 광주에 있던 북한군이라 소개한 김명국씨는 채널A에 출연해 5·18을 ‘광주폭동’이라 칭하며, 당시 광주에 침투했다가 돌아간 북한군이 군단사령관으로 승진하는 일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막말’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것은 극우인사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다. 지난 1월, 지 대표는 직접 채널A에 출연해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공작’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외에도 지 대표는 여러 차례 칼럼을 통해 5·18을 대표하는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노래이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사회적 비난여론에 놀란 종편은 5·18이 지난 이후에야 사과를 했다. 채널A의 대주주인 동아일보가 신문지면을 통해 채널A의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하는 촌극도 펼쳐졌다. TV조선은 자사 뉴스에서 6개 꼭지에 걸쳐 5·18 북한군 개입설을 조목조목 반박한 뒤 “5·18 관련단체 인사들을 초청해 임씨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지를 확인하려 했지만, 출연에 응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한쪽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전하는 방송이 됐다”며 사과했다. 송선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종편이 사과방송을 했지만 애초에 사과할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과방송 역시 자사 방송사를 옹호하는 듯한 내용이어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며 “사과는 사과고 법적 책임은 따로 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4개 종편 매출 500억 수준, 모두 큰 적자
중앙일보가 대주주인 JTBC도 ‘막말’에 예외는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하루 앞둔 5월 22일, JTBC에 출연한 한 시사평론가는 노 전 대통령이 ‘종북’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다음날 민주당은 손석희 JTBC 신임 사장을 거론하며 “방송사가 해당 프로그램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섰다.

종편의 막말·불공정 방송이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지난해 대선 기간이다. 18대 대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대선 기간 중 여러 방송사들에 19건의 법정제재를 가했다. 이 중 13건을 종편이 독차지했다. 대선 기간 중 종편이 배출한 ‘막말 스타’가 바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윤 전 대변인은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안철수는 한마디로 젖비린내 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윤 전 대변인은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선후보에 대해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여자 유시민” 등의 말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이후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인 경고조치를 받았다.

대선 기간 중 가장 많은 법정제재를 받은 ‘박종진의 쾌도난마’의 막말 방송은 대선 이후에도 이어졌다. 지난 1월 3일 ‘쾌도난마’에 출연한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은 윤창중 전 대변인이 ‘부적격 인사’ 논란에 빠진 것을 두고 “(윤 대변인은)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을 잘하는데 좌익·친북세력들은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을 못해”라고 말했다. 또한 박 전 총장은 안철수 현상에 대해 “개똥대가리 같은 짓”이라고 발언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쾌도난마’에 또다시 권고조치를 내렸다. 2월 12일 TV조선 ‘시사토크 판’에 출연한 이봉규 시사평론가는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이라고 그래야죠. 자살을 서거라고 그럽니까?”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결국 경고조치를 받았다.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종편의 선정성이 드러난 사례도 있다. 1월 19일 JTBC의 ‘상류사회’에서 출연자들끼리 즉흥 대결을 펼치던 중 한 출연자가 김병만씨의 뺨을 때리는 부분이 있었다. 이때 김씨의 고막이 파열되는 사고가 났다. JTBC는 김씨가 뺨을 맞는 장면을 느린 장면으로 다시 보여주면서 ‘웃음도 고막도 터졌다. 개그에 대한 열정. 역시 김병만’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방송통신심의위는 “출연자가 뺨을 맞아 고막이 파열되는 내용 등을 청소년 시청 보호시간대에 방송했다”며 이 프로그램에 주의조치를 내렸다.

한편, 종편의 선정적인 방송 태도가 이들의 경영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2012년 한 해 동안 4개 종편사는 모두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해당 기간 중 채널A는 619억원, TV조선은 55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드라마의 비중이 높았던 JTBC는 132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MBN은 26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종편이 적자를 극복하려면 광고수익을 지상파 방송사만큼 올려야 한다. 2012년 한 해 동안 각 종편의 매출액은 500억원 수준으로, MBC와 SBS 광고수익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동안 MBC와 SBS는 광고수익만으로 5500억원 이상의 수입을 거뒀다.

종편의 경영 상황은 종편의 부실 편성으로 이어졌다. <주간경향>은 5월 18일부터 24일까지 일주일간 TV조선, JTBC, 채널A의 편성 현황을 살펴봤다. TV조선과 채널A의 경우 보도·시사방송의 비중이 각각 49.6%, 46.3%에 달했다. 반면 드라마·영화의 편성 비중은 1%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JTBC는 교양분야의 편성 비중이 50%를 넘었다. 채널A와 TV조선의 경우 대선 기간 중 제작비가 적게 드는 보도·시사분야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공공미디어연구소가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선 직전 일주일 동안 채널A는 전체의 약 72%, TV조선은 약 58%의 시간 동안 보도·시사 방송을 내보냈다.

종편의 재방송 비율도 높았다. <주간경향>이 조사한 일주일 동안 채널A는 전체 방송 시간의 46.1%, TV조선은 42.9%를 재방송에 투여했다. JTBC의 경우 67.5%가 기존에 나온 프로그램을 재방송한 것이었다.

종편편성 시사 쏠림현상 도입취지 안맞아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보도분량이 많은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종편의 보도내용 중에 국민 정서와 반하는 부분들이 있고, 이런 보도가 양적으로 많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처장은 “내년 3월 종편이 재승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종편의 보도내용뿐만 아니라 이들이 과연 ‘종합편성’에 어울리는 형식을 따랐는지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방송법은 종합편성채널의 편성 비율을 엄격하게 강제하고 있진 않다. 다만 방송법 시행령 50조에서 “오락에 관한 방송프로그램을 당해 채널의 매월 전체 방송시간의 100분의 50 이하로 편성할 것”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기획국장은 종편의 ‘편성 쏠림현상’이 종편의 도입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애초 종편이 도입될 때 여러 외주제작사들이 종편을 통해 다양한 방송을 낼 수 있게 하자는 취지가 있었다”며 “하지만 종편이 보도·시사프로그램에만 집중하는 현재는 종편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글로벌 미디어그룹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생각이 무색하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국장은 “종편이 다른 케이블 방송과 마찬가지로 재방송 비율이 이렇게 높은 상황에서 종편 의무편성, 직접 광고영업 허용과 같은 특혜를 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종편에 긍정적인 대표적 언론학자로 꼽히는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편성 쏠림현상’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윤 교수는 “종편이 출범한 지 1년 반이 지났는데 아직은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을 쌓는 단계”라며 “종편이 처음에는 드라마처럼 돈이 많이 드는 곳에 투자했다가 시청률이 나오지 않자 강점이 있고 제작비도 저렴한 분야에 집중하는 건 일종의 진화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초에 4개 종편은 많았다. 각 종편이 각자 전문화를 하는 것이 생존 차원에서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편에 자주 등장하는 인사들에게 종편의 ‘막말 방송’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종편은 기본적으로 중앙 언론사에 기반을 두고 있어 공정성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본다. 다만 한두 개 프로그램에서 신중하지 못한 지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년간 종편에 출연하면서 지켜봤는데 PD나 작가 등 제작진들이 공정성에 상당히 신경쓰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대선 기간 중에는 아이템이 약간은 불공정한 성격이 있었다는 느낌이 든 적도 있었지만 공정성 문제는 프로그램, 진행자마다 다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종편에서 5·18 방송으로 문제가 됐을 때 내가 토론프로그램에서 직접 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윤석민 교수는 “종편이 방송의 다양성을 늘린 부분은 있다”면서도 “종편 보도의 사실성과 객관성에 대한 염려가 있고, 이 부분은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라고 말했다. 종편의 향후 생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윤 교수는 “일부의 의견처럼 종편에 재허가를 하지 말라는 주장엔 반대한다. 하지만 경영이 정 어려워서 한두 개 채널이 (종편을) 그만두는 건 시장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언론학자는 종편의 선정적 방송을 모기업인 보수언론과 연결짓는 해석을 내놨다. 이 학자는 “종편이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선정적인 방송을 내보낸다는 건 표피적인 해석이다. 종편의 모기업이 보수 거대언론인 이상 종편의 본질은 변할 수 없다”며 “애초 종편은 정치적인 결정으로 탄생했고, 지금과 같은 부실 편성과 선정적 방송도 학자들 사이에서 다 예상하던 바였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