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알파걸’ 이상적 배우자와 결혼의 현실

정민정양(가명·17)은 특목고에 다닌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줄곧 전교 3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 어려서부터 아빠가 서울대 법대를 가야 한다고 주입해서 키웠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 방학 때는 모의국회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등 매사에 적극적이다. 잘 생긴 남학생을 보면 사귀고 싶어한다. 하지만 민정이는 뜻밖에도 결혼 같은 것은 자기 인생에 없다고 생각한단다. 오로지 성공해서 멋지게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라고 한다.

정양은 “외모도 꾸미고, 잘생긴 남자도 좋지만 나와 결혼은 안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한다. 똑똑한 남자를 내조하며 산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단다. 자기가 남학생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 더욱이 능력 없는 남자는 정말 사귀기도 싫다고 한다. 정양은 “엄마는 ‘멋지게 성공해서 커리어우먼으로 혼자 살아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한다. “아빠가 회사에 다니다 해고되고 또 개인파산자 처지여서 생활이 늘 쪼들려요. 엄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고요. 그래서인지 엄마는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정양은 “엄마가 형편이 어려워도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들어준다”고 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엄마의 유일한 낙이 바로 딸인 셈이다. 민정이 또한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민정이가 꿈꾸는 화려하고 멋진 미래에는 남편이라든지 아이라든지 그런 건 없다. 세계를 누비며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생만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일러스트·만화그리는 목각인형

현재 고2 딸을 미국에 유학시키고 있는 손영희씨(49)는 딸이 자기 꿈을 향해 하루에 서너 시간 자면서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손씨는 “딸에게 가끔 ‘여자 똑똑해봤자다. 남편 잘 만나서 잘 사는 게 최고더라’라는 말을 해준다”고 했다. 혹 딸이 결혼도 하지 않을까봐 노파심에서 미리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사회적인 한계 때문이다. 손씨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결과, 결혼 후 출산 등 여러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여성이 결혼해서 사는 게 싱글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딸이 전한 이야기로는 미국 대학원에 서른다섯을 넘긴 여성들이 많다면서 자신도 그렇게 될까봐 은근히 걱정된다는 말을 했어요. 저도 덜컥 겁이 났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해라. 박사도 되고 판검사가 되어라”라고 독려하는 엄마들을 보면 말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한다. “주변에서 보면 공부하다 나이 먹어서 결혼도 못하고 싱글로 사는 여자들이 너무 많아요. 특히 현재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한 엄마들은 딸이 똑똑할 경우 ‘구질구질하게 결혼해서 가정에 매어 사느니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멋지게 살아라’라고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보곤 해요. 글쎄 이게 과연 엄마가 할 이야기일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우리 사회에 정민정양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른바 ‘알파걸’ 성향의 여학생들이 10대부터 새로운 리더군을 형성하고 있다. 알파걸은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엘리트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미국 하버드대 댄 킨들런 교수가 처음 정의한 말로 미국 여학생들의 20% 가량이 공부, 운동, 친구관계, 미래에 대한 비전,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학생들을 능가하는 엘리트 소녀로 성장하고 있다는 결과를 얻었고, 이들을 알파걸로 명명했다. 킨들런은 알파걸들에 대해 이전 세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완전히 새로운 사회계층의 출현”이라고 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알파걸들이 청소년층뿐만 아니라 20~30대에서도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육식녀’라고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미혼 여성 10명 중 3명이 육식녀라고 답했다고 한다. 육식녀들은 ‘여자가 남자를 이끌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나에 대한 높아진 자신감’ 등을 배경으로 꼽았다. 이런 알파걸이나 육식녀는 ‘이상주의’에 대개 ‘평등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외고를 준비하는 한 여학생은 “전 제가 남자를 먹여 살릴 생각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 돈 벌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알파걸은 결혼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입장을 정하지 않으면 자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남자들의 경우는 공부를 많이 하고 성공할수록 배우자의 선택폭이 넓어지지만 여자들의 경우 도리어 그 반대가 되기 십상이다. 박사과정을 이수하다보면 어느새 나이를 훌쩍 먹기 때문이다.

명문 사립대를 나와 세계적으로 이름난 영국 대학에 유학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심영은씨(가명·44)는 전형적인 알파걸에 해당한다. 둘째 딸인 심씨는 언제나 자신감이 충만한 아이였고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심씨의 아버지는 영국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딸이 대견스러워 지금도 늘 “심 박사”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명문대 진학에 영국 명문대 박사, 그리고 억대 연봉의 외국계 회사 임원인 심씨의 이력은 요즘의 모든 엄마들이 딸을 품에 안고서 꿈꾸는 알파걸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심씨가 결혼을 하고 싶어했지만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 지금까지 미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심씨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다름 아닌 결혼이라고 한다. 나이가 마흔을 훌쩍 넘기면서 요즘은 소개 자리도 뜸해졌다고 한다. 재테크를 열심히 해 안정적인 재산도 확보되어 있지만 정작 인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열심히 일하다보니 나이는 점점 들어갔고, 이제는 결혼에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고 한다. 세계적인 명문대 박사에 억대 연봉인 심씨는 남자들에게 부담스런 존재였고, 화려한 학력이 오히려 결혼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남자 대 여자의 수입은 2대 1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말도 들었어요.” 심씨는 “사회적으로 알파걸로 당당하게 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행복하지 않다”고 고백했다. 심씨는 아직도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씨처럼 당당한 알파걸로 키우는 게 요즘 딸 가진 엄마들의 로망이다. 그러나 심씨의 경우처럼 결혼을 원하는 알파걸이라면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에 이르는 게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게 ‘결혼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 사전에 결혼은 없다’고 생각하는 정민정양처럼 결혼에 대한 입장이 확고하다면 문제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생각은 늘 변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결혼 문제는 더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심씨의 사례를 보면 마냥 부모들이 딸에게 ‘알파걸이 되어 결혼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하며 네 멋대로 살아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심씨처럼 알파걸로 열심히 살았지만 나중에 ‘이건 아닌데…’라고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부모가 딸에게 하고 있는 말은 어쩌면 그 아이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

<반론문>
서울시내 어느 중학교 교장입니다. 지난번에 쓴 글(제1041호의 ‘선생님보다 학원 강사가 더 좋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합니다. 학교교육 현장에서 말도 안 되게 잘못하는 교사와 열심히 일하는 학원 강사를 비교한 것은 극단적 대비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능력으로 가르치지 않고 녹화된 자료를 틀어 주는 선생님은 정말 잘못된 분입니다. 경쟁적 환경에서 열심히 가르치는 학원선생님은 참 바람직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현장에도 정말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고, 학원에서도 사탕발림으로 가르치는 분이 있다고 봅니다. 신중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학교나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