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스티벌 참가자 상당수 토종캐릭터 표현… 붉은악마·독도수호신 등 시의성 있는 대상 선택

위_한국의 게임 캐릭터 ‘라그나로크’
왼쪽_‘해신’ 을 표현한 코스튬플레이어들.
‘코스튬플레이’가 토종화하고 있다. 코스튬플레이란 ‘복장’을 뜻하는 ‘코스튬(costume)’과 ‘놀이’를 뜻하는 ‘플레이(play)’의 합성어. 즉 영화, 만화, 게임 등에 등장하는 인물의 복장을 갖춰 입고 노는 놀이문화를 말한다.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코스프레’라는 일본식 약어로 많이 알려졌다. 본래 영국에서 죽은 영웅들을 추모하며 그들의 모습으로 분장하는 예식에서 유래했으나 미국으로 건너와 ‘슈퍼맨’ 등 만화캐릭터들을 흉내내는 축제로 변형됐다. 이 문화가 일본으로 넘어가 붐을 형성한 것은 그 이후다.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패션거리 하라주쿠에는 매 주말 ‘세일러문’ 같은 만화 주인공이나 일본 연예인의 모습으로 변신한 코스플레이가 무리를 지어 활보하고 있다.
일본 것 그대로 모방하는 단계 넘어
국내 청소년들에게 코스튬플레이가 보급된 것은 1995년 무렵. 하지만 초창기엔 일본문화의 영향으로 주로 일본만화나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 꾸몄다. 이로 인해 신세대들이 아무런 의식 없이 일본문화를 답습하고 있다며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기성세대도 적잖았다.
그러나 최근 코스튬플레이의 토종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이나 한국 드라마 및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방하는 코스튬플레이어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 코스튬플레이 전문가인 조영아 청강문화산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도입 초기에는 코스튬플레이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데다 관련 상품들이 대부분 일본에서 들어와 청소년들이 일본의 문화를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에 그쳤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코스튬플레이에 대한 신세대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동호회가 급증하고 충분한 정보습득과 관련산업의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우리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 고증 위해 고전자료 뒤지기도
실제로 지난 5월 21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열린 ‘제6회 청강 코스튬플레이 페스티벌’에 참가한 코스튬플레이어들의 상당수는 토종 캐릭터를 표현했다. 신돈, 이순신 장군, 붉은 악마, 해신, 암행어사 등이 출현했다. 또 ‘라그나로크’ 등 한국의 게임 캐릭터나 ‘웰컴 투 동막골’ ‘왕의 남자’와 같은 한국영화 등장인물들도 인기 아이템으로 활용됐다. 페스티벌에 ‘붉은 악마’ 복장으로 참가한 청강문화산업대 1학년 이수진양은 “2006년 한국팀의 선전을 바라며 이번 아이템을 결정했다”고 말했고, ‘독도수호신’으로 변신한 동남고등학교 1학년 심문성군은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일본이 우리 땅을 넘보지 못하도록 독도의 수호신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독도수호신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대장금’ 캐릭터로 분한 코스튬플레이 커뮤니티 ‘후코스(www.whocos. com)’팀은 “드라마 ‘대장금’이 일본과 홍콩 등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강인한 의지로 역경을 딛고 성공을 이루어낸 것이 감동적이었고 우리도 대장금처럼 향후 어떤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준비했다”고 밝혔다. 배용준, 보아 등 한류스타를 모방한 코스튬플레이어들도 눈에 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코스튬플레이에 참여하는 팀의 90% 이상이 일본의 만화주인공이나 연예인을 모방한 것과 대조되는 현상이다.
30대 이상 회원도 수두룩
코스튬플레이가 토종화하는 데는 무엇보다 코스튬플레이에 대한 세간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 보자는 플레이어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크게 작용했다. 이들은 한국의 시대적 영웅이나 우리의 전통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을 표현하기 위해 의상과 소품 등을 직접 제작한다. 시간과 비용도 만만찮게 든다.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기쁨에 용돈을 절약하며 의상 제작비를 마련한다.
지난 4월 초 참여 멤버를 확정했다는 후코스팀의 경우도 일단 ‘대장금’으로 아이템을 확정한 후 드라마 속 각 인물을 분석했다. 역사적 사실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고전 자료를 찾고 TV 모니터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 다음 실질적으로 치장을 위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동대문 시장 등을 돌며 원단을 산 뒤 재단과 가봉을 거치고 장신구로 치장해서 마무리했다.

코스튬플레이를 즐기는 청강문화산업대학 학생들.
국내에 코스튬플레이 관련 동호회는 1만여 개에 이르고 그 회원수는 44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스튬플레이 페스티벌도 해마다 1000회 정도 열리고 있다. 교내에 코스튬플레이 동아리가 있는 학교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의상을 제작하는 실력이 늘면서 코스튬플레이 마니아 중 무대나 드라마 의상제작 등으로 전공을 살려 진출하는 이도 많다. 코스튬플레이가 더 이상 일부 마니아만의 문화가 아니라 대중문화화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코스튬플레이를 10~20대만 즐기는 문화로 이해해서도 곤란하다. 코스튬플레이 동호회인 ‘물파스닷컴(www.MOOLPAS. com)’의 경우만 해도 회원의 13%가 30~40대로 구성돼 있고 50대 이상도 5%나 된다. 이 중에는 대학교수나 대기업 회사원 등도 포함돼 있다.
코스튬플레이의 매력은 외형만이라도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또 현존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닮고자 하는 다른 정체성을 결합해 가상으로나마 꿈을 실현해볼 수 있다는 것도 흡인요인이다. 한국에서 연령을 초월해 코스튬플레이어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양적 증가는 질적 향상을 불러일으키고, 우리 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표현도 가능케 한다.
조영아 청강문화산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만약 우리 청소년들이 일본의 코스프레를 그대로 모방만 했다면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없어 극소수 마니아들만 즐기는 놀이로 전락했을 것”이라며 “다행히 한국의 코스튬플레이어들의 의식 발달과 한국의 색을 살리려는 노력이 오늘날의 발전된 코스튬플레이를 있게 했다”고 강조했다.
물파스닷컴 운영자 김성주씨
“철없는 젊은이들의 놀이로 보지마세요”
![[문화]코스튬플레이 ‘왜색’ 사라졌네](https://img.khan.co.kr/newsmaker/676/cul1-4.jpg)
“일본과 우리나라의 코스튬플레이가 비슷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은 만화나 게임 캐릭터를 그대로 흉내내는 것에 비중을 둡니다. 때문에 사소한 비주얼 하나하나에도 많은 공을 들이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코스튬플레이는 캐릭터를 무조건 똑같이 만드는 것보다는 캐릭터를 엄밀하게 분석한 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과 그에 따른 연기에 더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코스튬플레이 동호회 ‘물파스닷컴(www. MOOLPAS.com)’의 운영자 김성주씨(38)의 말이다. 물파스닷컴은 2005년 1월 만들어져 현재 회원이 2만여 명이다.
김씨는 “기성세대가 국내 청소년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코스튬플레이를 즐기는 청소년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확고한 신념과 기준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는 것.
“국내 코스튬플레이어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적게는 수주일에서 많게는 수개월까지 투자합니다. 직접 동대문시장을 돌아다니며 천과 액세서리를 구해 의상과 소품을 직접 제작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죠. 이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지 모델처럼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현장에서의 완벽한 연기를 위해 연습도 거듭합니다. 이런 땀방울이 코스튬플레이가 국내 도입 10여 년 만에 눈부신 발전을 불러온 겁니다.”
그는 “여전히 일부에서는 코스튬플레이를 왜색문화에 빠진 철없는 젊은이들의 놀이로 보는 시각이 있다”며 “하지만 현재 국내 코스튬플레이의 수준은 그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일본색이 짙은 캐릭터가 적잖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 만화산업의 경쟁력 때문이에요. 국내 만화산업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된다면 이러한 현상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겁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