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30년 대학로 지킨 연우무대 사람들

1977년 창단 ‘칠수와 만수’ ‘한씨연대기’ 등 주옥같은 작품 ·스타 발굴

연우무대 초창기 핵심멤버인 정한룡·이상우·김광림과 이후 합류한 임진택· 김민기(왼쪽부터 시계방향

극단 연우무대가 올해로 30돌을 맞았다. 연우(演友)는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는 뜻으로, 1977년 당시 광고대행사 오리콤 직원이었던 정한룡(64학번)·이상우(70학번)·김광림(71학번)이 주축이 돼 만들었다. 모두 서울대 문리대 연극회 출신이다. 현재 연우무대 예술감독인 정한룡씨는 “우리 셋은 부모님이 모두 함경도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졸업 후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연우무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연우무대 초창기 회의를 오리콤 회의실에서 했다”고 회고했다. 여기에 치과의사 오종우, 이영훈 경주박물관장, 인하대 조우현 교수 등이 합류했다. 역시 서울대 연극반 출신들이다.

서울대 문리대 연극회 출신 주축

이들이 표방한 것은 ‘창작극 전문극단’. 번역극이 난무하던 시절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연우무대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정한룡·이상우는 얼마 후 직장을 그만뒀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김석만과 마당극 연출가 임진택, 서울대 미대 출신으로 저항가수의 상징이었던 김민기 등이 1980년대에 가세했다.

30년의 시간 동안 연우무대는 문제작을 대거 쏟아냈다. 창단공연 ‘아침에는 늘 혼자예요’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저승’ ‘장산곶매’ ‘돼지꿈’ ‘장사의 꿈’ ‘나의 살던 고향은’ ‘한씨연대기’ ‘칠수와 만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등 연우무대가 발표한 작품은 대개 시대의 아픔을 고민하는 작품이었다. 극작가인 장성희 서울예대 교수는 “시대의 직접적 요구와 부딪치는 지식인으로서의 자기모순의 감지 및 성찰 행위 등은 연우의 정체성의 한 축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시놉시스 단계부터 공연이 되기까지 참가자 모두 총력을 기울이는 형태로 진행하는 ‘공동창작방식’도 연우무대가 일군 결실이다. 장성희 교수는 “연우의 성공작 중 많은 부분을 배우와 스태프 등 참여자 모두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장면을 만들고, 작가가 쓴 텍스트를 해체 후 재조립하고, 캐릭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우무대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건너오며 수많은 역량 있는 배우를 배출하는 데도 성공했다. 문성근, 안석환, 송강호, 김명곤, 강신일, 이두일, 김승욱, 이대연, 김뢰하, 류태호, 김윤석 등이 연우무대에서 배우인생을 시작했다.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문성근은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연극을 하겠다며 연우무대에 들어갔다. 1980년대 중반의 일이다. 그는 입단하자마자 작가 황석영이 자신의 소설을 직접 각색한 작품 ‘한씨연대기’(1985)의 주역을 맡았다. 1984년 공연한 ‘나의 살던 고향은’의 대사가 문제가 돼 6개월간 공연정지처분을 받은 직후여서 적잖은 단원이 뿔뿔이 흩어진 시기였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배우는 5명이 전부였다. 후속작인 ‘한씨연대기’에 등장하는 인물을 5명이 모두 소화해야 했다. 연극계에 뛰어들자마자 주역을 거머쥔 문성근은 또 다른 문제작 ‘칠수와 만수’(1986)에서 칠수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이때 만수 역을 맡은 인물은 강신일이다. 강신일은 1986년 입단해 ‘칠수와 만수’ 외에 ‘김치국씨 환장하다’ ‘덕혜옹주’ 등 30여 편에 출연했다. 김민기와 ‘학전소극장’을 만들어 잠시 월급쟁이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의 ‘끼’를 주체하지 못해 연우무대로 돌아와 다시 연기를 했고 1998년 ‘김치국씨 환장하다’로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1999년 ‘이재수의 난’을 시작으로 영화배우로도 활동 중이다. 출연작은 ‘공공의 적’ ‘실미도’ ‘한반도’ 등이다. 이들 작품에서 강신일은 조연이지만 선 굵은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문성근, 안석환, 송강호, 김명곤, 김윤석, 류태오, 김뢰하, 강신일

문성근·송강호·김명곤 등 배출

서울대 사범대 출신인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연극판에 들어왔다. 1980년 연우무대에 들어온 그는 ‘왕자’(1980) ‘장사의 꿈’(1982) 등에 출연했고, 이장호 감독의 1980년작 ‘바람불어 좋은날’에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500만 명이 본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란제리에 집착하는 변태적인 용의자로 출연한 류태호. 그는 영화의 모태인 김광림의 연극 ‘날 보러 와요’에서 3명의 용의자와 범인까지 1인4역을 하며 소름돋는 연기력을 보였다. 이듬해 연극배우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휩쓸 정도였다. 1986년 연우무대에 들어와 이상우가 극단 ‘차이무’를 만들 때 잠시 나갔다가 1996년 다시 연우무대로 돌아와 출연한 작품이 ‘날 보러 와요’다. 초연 이후 10년 간 500회 공연했고, 이 작품의 제작과정을 석사논문 주제로 삼아 경민대 뮤지컬과 교수가 됐다.

톱스타 송강호는 연우무대에서 활동 당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국물 있사옵니다’ ‘여성반란’ ‘비언소’ 등에 주로 조역으로 출연했다. 송강호가 대중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영화 ‘넘버3’부터다. 이 작품에서 그의 말더듬이 연기는 관객의 웃음을 끊임없이 자아냈다. 이 연기는 안석환이 먼저 연극에서 보여줬던 것으로, 연출자 이상우가 ‘비언소’에 출연한 송강호에게 주문했고, ‘넘버3’를 연출한 송능한 감독이 이를 그대로 영화에 활용한 것이다.
송강호와 영화 ‘넘버3’에 출연한 안석환은 연우무대에서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의 주역을 맡아 코믹한 연기로 주목받았다.

연우무대 출신이 영화계에서 스타로 발돋음할 수 있었던 이유도 창작극을 무대에 올린 연우무대의 특성 덕분이다. 번역극이 중심이 되던 연극무대에서 배우들의 말투는 일상의 말투와 달리 과장된 느낌이 많았으나 창작극에서는 그럴 수 없었던 것. 정한룡 예술감독은 “특유의 연극적 말투 탓에 당시만 해도 연극배우를 데려다 쓰는 데 부담을 느꼈다”며 “하지만 번역극이 아닌 창작극에서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듯 대사를 해야 관객이 수긍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우무대 출신 배우들의 영화 출연이 순조로웠다”고 말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