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38)‘알 수 없음’에서 앎으로 나아가는 긴 여정

| ‘삶은 기적이다’ 웬델 베리·박경미 옮김·녹색평론사·2006 |

살아 있음은 기적이다. 사람·자연·우주에 대한 통찰이 깊어질수록 나날이 살아서 숨쉰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푸른 보석같이 빛나는, 정교하기 짝이 없는 지구라는 배는 온갖 생명체를 안고 우주라는 영원의 바다를 항해한다. 낮과 밤의 교차, 계절의 순환, 꽃의 피고 짐, 달의 차고 기움 등과 같이 아는 것과 우리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우주 창조, 신, 죽음과 같이 모르는 것들을 함께 안고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알 수 없음’에서 앎으로 나아가는 긴 여정이다. 앎의 세계보다 훨씬 더 큰 ‘알 수 없음’의 세계가 우리를 감싸고 있다. 이 ‘알 수 없음’의 세계는 너무나 광대해서 앎으로의 긴 여정은 다함이 없다. 당연하게도 우주와 생명의 근본을 사유의 씨앗으로 삼은 철학자들은 ‘알 수 없음’에서 제 철학을 출발시킨다. 동양의 철학자 노자는 “도는 만물의 오묘함이다”(‘도덕경’ 제62장)라고 말한다. 깨달음의 경지는 만물의 오묘함과 동격이다. 앎의 깊이는 곧 모름의 깊이에 상응한다. 말을 바꾸면, 무엇인가 안다는 것은 모른 만큼 아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알 수 없음’, 혹은 ‘우주의 낯섦’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반면에 과학-산업-기술은 유전자에서 문화까지 더 많은 것을 밝혀내고, 밝혀낸 지식의 바탕 위에서 늘 인류에 ‘발전’을 약속하고 ‘개발’을 공약하며 ‘진보’라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한다. 그러나 앎의 영역이 커지고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며, 무지몽매한 이성에 계몽의 빛을 더 환하게 비출수록 더 많은 숲과 생물들이 사라지고, 물과 토양은 오염되고, 오래된 공동체는 깨지고,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성과 생태계의 파괴라는 위기에 직면한다. 열대우림은 남벌되고, 지구의 한정된 자원들은 고갈에 이르고 있으며, 동·식물종은 더 광범위하게 멸종 위기를 맞는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독성 물질과 방사성 물질이 생물권에 방출되어 유전자 손상, 불임, 암의 발생 위험이 커지며 인류를 위협한다.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광대한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 둘러싸여 살지만 더 큰 불안과 불행한 느낌 속에 빠져 산다. 왜 그럴까 ?

웬델 베리의 ‘삶은 기적이다’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과 대안을 담고 있다. “생명은 우리가 향유하는 것이지만, 우리 너머에 있다. 어떻게 해서, 왜 우리가 생명을 누리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생명에,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생명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만들 수는 없다. 생명은 통제될 수 없다. 생명에 대한 통제는 환원주의와 함께 엄청난 파괴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베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려는 과학의 근본을 파헤치고 따지며, 그것을 매개로 하는 문명의 야만성과 착취적 성격을 가차없이 비판한다. 이 책은 압축하자면 현대과학의 물질주의와 환원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기계론적 사고의 병폐에 대해, 현대과학의 뒤에서 그것을 추동하는 힘으로 작동하는 산업주의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가져올 수 있는 재앙에 대한 경고이자 비판서다.
이 책은 진화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 책은 2005년 4월에 최재천·장대익이 번역하여 사이언스북스가 출간했다)에 대한 드물게 길고 진지한 비판적 서평이다. 윌슨은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물고 큰 틀에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서로 넘나들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생화학, 세포학, 유전학, 생리학, 생태학 등 수평적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생물학을 통합생물학으로 통합해서 생명의 다양성을 포괄적으로 이해하자는 시도다. 이런 혁신적 사고에 이론적인 기초를 빌려준 사람이 윌슨이다. 윌슨은 생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더 나아가 종교까지 지식의 범주에 넣어 이 모든 지식의 대통합을 제안한다. 윌슨에 따르자면 “통섭은 봉합선이 없는 인과관계의 망이다”라는 생각의 바탕 위에서는 생물학, 철학, 윤리학, 경제학, 사회학, 심지어 예술, 종교에 이르기까지 통섭에 이를 수 있다. ‘통섭’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베리의 비판적 시각에 따르면 윌슨의 주장은 근본적인 편견과 가설들에 기초한 것으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적 오만으로 이끈다.

‘통섭(consilience)’의 진정한 뜻은 ‘함께 도약하여 일치를 이룸’이다. 진화론적 과학자들은 세계와 삶의 신비들을 잘게 쪼개고 분류해서 미세한 단위나 기계적 수치로 환원시키고 축소시킨다. 반면에 시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 속에서 ‘알 수 없음’의 신비를 인식을 고양시키는 매개로 삼는다.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반면에 윌슨은 생명과 세계를 기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의 영역으로 환원시킨다. 웬델 베리는 그 점을 이렇게 경고한다. “삶을 기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또 알 수 있는 것으로 다루는 것은 결국 삶을 축소시키고 환원시키는 일이다.” 베리의 비판은 윌슨의 ‘통섭’이 본디 하나인 생명을 환원주의라는 칼로 분리하고 쪼갠 뒤에 이미 죽은 것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윌슨에 따르면 인류는 합법칙적 물질세계에 살고 있으며, 이 세계를 움직이는 모든 법칙들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별들의 탄생과 같은 자연과학에서 사회제도의 운용을 다루는 사회학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은 물리적 법칙으로 환원될 수 있고, 따라서 이해되지 않거나 입증될 수 없는 것은 없다. 과학적으로 논증할 수 없는 신비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 혹은 무지에 지나지 않으며, ‘알 수 없음’은 무가치한 것이다. 허나 환원주의적 과학은 결코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물리적 세계가 어디에서 왔는지 대답하지 못한다. 과학 맹신주의는 환원주의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베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와 그 안에 있는 피조물들을, 그리고 피조물의 모든 부분을 기계로 보는 데 있다. 이것은 피조물과 공업생산품 사이에, 탄생과 제조 사이에, 생각과 전산화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진화론적으로 진보를 추동하고 인류를 유토피아로 인도한다는 믿음을 쌓아온 과학은, 그러나 오용과 남용의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투하, 나치의 우생학 실험 등은 과학이 인류 공동체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의 도구로 오용된 예다.

독서일기

윌슨은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무한한 인간 진보의 잠재력’을 굳게 믿지만, 이 문명의 톱니바퀴가 아무 고장 없이 항상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다. 이 톱니바퀴는 뒤로 갈 수도 있다. 따라서 진보가 뺄셈이 없는 진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에서 우리가 보았듯 과학자들은 많은 부분을 교묘하게 감추고 속인다. 과학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태도다. 웬델 베리는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현대과학이 조작한 환상들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과학-산업-기술이 우리의 삶의 준거점이 될 수 없다면 “기계와 기계적 관념이 피조물의 삶의 조건과 상황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음’ 혹은 ‘우주의 낯섦’ 속에서 나날이 체험하는 삶의 신비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