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선 앞둔 포털 사이트의 몸 사리기

뉴스 댓글 금지·댓글 실명제 실시… 네티즌 정치적 토론장 외면

지난 대선에 비해 인터넷의 영향력이 급속히 줄어든 것은 포털 사이트의 몸 사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각 포털 사이트가 마련한 대선 관련 뉴스를 모은 화면.

2002년 대선의 승자를 가른 것은 ‘인터넷’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대선 역시 2002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인터넷과 네티즌들의 힘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지난 대선처럼 인터넷의 영향력은 미비하다. 차라리 인터넷과 네티즌이 조용하다고 할 정도다.

지난 대선에서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서프라이즈 등의 사이트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네이버, 다음, 야후 등 포털 사이트가 영향력을 물려받았다. 인터넷 마케팅 업체인 코리안클릭에서 나온 ‘10월 인터넷 서비스 동향 자료’를 살펴보면 포털 사이트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

대선 뉴스 메인 페이지서 못 봐
인터넷 이용자들이 10월 이용한 서비스별 총 체류시간 비중을 살펴보면 포털 사이트에서 보낸 시간이 전체의 56.5%에 이른다. 즉 인터넷 이용 시간의 절반 이상을 포털 사이트에서 보내는 것이다. 이에 반해 뉴스와 미디어 사이트에 머무는 비율은 3.4%에 머물고 있다. 뉴스를 보기 위해서 각 언론사 사이트를 들어가지 않고,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는 셈이다.

포털 사이트의 영향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네이버는 ‘인터넷의 공룡’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터넷의 흐름을 좌지우지하고 있을 정도. 대선을 앞두고 언론 관련 시민단체가 포털 사이트를 감시하는 것은 그들의 움직임과 정책의 흐름에 따라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도 감시의 눈을 의식하고 정치적인 비판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했다. 네이버를 필두로 다음, 야후 등 대부분 포털 사이트는 대선 관련 뉴스를 모은 페이지를 만들었다. 네이버의 경우 뉴스박스(메인화면에 포털 편집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뉴스를 올리는 곳)에는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D-20일’이라는 꼭지를 마련해 그것을 클릭해야 대선 뉴스를 볼 수 있다. 다음의 경우에는 ‘우리들의 선택 2007 대선’과 ‘대선 뉴스’라는 페이지를 따로 마련했다. 야후와 네이트 역시 대선 뉴스 페이지를 따로 마련했다.

그리고 네이버는 대선 뉴스에는 댓글을 달 수 없도록 하기도 했다(네이버는 대선의 공식 선거운동기간인 지난 11월 27일부터 대선뉴스에 대한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포털 사이트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몸을 사리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48개 진보단체가 모인 대선미디어연대의 도형래 팀장은 “대선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큰 의제가 되고 있지 않다”면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인터넷 실명제 조치와 포털 사이트의 몸사리기가 원인이다”라고 설명한다.

뉴스 댓글 금지와 댓글 실명제의 실시는 네티즌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대선에서는 논객이라고 불리던 네티즌들의 움직임이 거의 사라졌다. 도 팀장은 “댓글 삭제 요청이 지난 대선에서는 일정 기간에 1만여 건이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9월 말 현재까지 5만여 건이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선관위도 이런 조치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것을 알고 법 개정을 요청할 정도다”라고 말한다.

“군소후보 노출 적다” 비판받아

지난 10월 9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7대 대선, 신문과 인터넷 언론의 바람직한 선거보도' 세미나를 개최했다.

또한 네이버와 다음처럼 대선 뉴스를 메인 페이지의 뉴스박스에서 볼 수 없고, 해당 페이지에 들어가야 볼 수 있는 것도 대선에 대한 관심을 떨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이희완 부장은 “지난 총선에서는 모든 뉴스가 메인 페이지에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대선 뉴스를 통합페이지로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가 대표적이다”라고 설명한다. 또 이 부장은 “이런 움직임은 조선·중앙·동아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포털 사이트가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포털 사이트가 이번 대선에서 비판받는 또 하나 이유는 ‘정치적인 편향성’이다. 정동영 후보, 이명박 후보, 이회창 후보에 대한 뉴스는 많이 내보내고 있지만 군소 후보들의 뉴스는 많이 내보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네이버와 다음은 대선뉴스 페이지에 각 정당과 후보 페이지를 따로 마련하기도 했다.

비록 포털 사이트가 언론사가 제공한 콘텐츠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지만, 뉴스의 선택권과 편집권은 포털 사이트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포털 사이트는 “언론이 아니다”라고만 해명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이희완 부장은 “이제는 언론이 아니라고 발뺌만 할 것이 아니다”면서 “언론이라는 것을 자인하고 뉴스편집자들의 교육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의 입장은 시민단체와 전혀 다르다. 네이버의 김경달 수석정책담당은 “댓글을 막은 것은 연초부터 설문조사를 통해 나온 결과에 따른 것이다”면서 “댓글 때문에 일어나는 폐해가 많은 네티즌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우리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서 “만일 시민단체가 원하는 대로 의제 설정과 후보자 검증 등을 하려면 우리가 직접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네이버의 경우 하루에 1만2000여 건의 기사가 들어온다. 그중에서 메인 페이지의 뉴스박스에 올라가는 것은 100여 건이다. 김경달 수석정책담당은 “8000여 건의 기사는 중복된다. 그리고 메인에 올라가는 뉴스는 방송사와 신문사의 특종과 비중이 높은 것을 위주로 선택한다”면서 “그러면 100여 건의 메인 기사는 언론사가 중요하다고 내보내는 뉴스가 대부분 나오는 셈이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런 현실에서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편향적이라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밖에 안 된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입장은 “포털 사이트의 영향력을 잘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속담처럼 비판과 지적을 피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가 너무 몸을 사리면서 의견의 공론장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수후보만 있는 포털 사이트의 ‘뉴스박스’

민언련은 지난 10월 29일부터 11월 9일까지 주말을 제외한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2시간 단위로 네이버, 다음, 네이트, 야후의 메인 화면 뉴스박스를 모니터한 후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뉴스박스’에 채택된 기사는 의제 설정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졌다. ‘뉴스박스’에 게재된 시간이 길면 길수록 ‘가장 많이 읽은 기사’가 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경우 뉴스박스와 가장 많이 읽은 기사가 일치한 건수는 뉴스박스 기사 156건 중 24건(15.4%)였다. 그리고 다음은 74건 중 19건(25.7%), 네이트는 24건 중 8건(33.3%), 야후는 169건 중 28건(16.7%)였다.

또한 모니터링 기간 중 이회창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뉴스가 집중됐다고 발표했다. 메인 화면의 후보별 기사량을 분석한 결과 다음, 야후, 네이트의 경우 ‘이명박 후보’ 관련 보도는 98건(36.7%), 이회창 후보는 65건(24.3%), 이명박+이회창 후보는 26건(9.7%), 정동영 후보와 이명박+정동영 후보는 각각 11건(4.1%)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주요 이슈가 이회창 후보의 출마 선언, BBK 관련 뉴스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정동영·권영길·이인제·문국현 후보를 합친 기사량보다 월등히 많았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 편집이 형평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결과다. 또한 뉴스박스에 이명박·이회창 후보를 제외한 후보들의 기사는 대부분 가십에 가까웠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정책보도는 3사 포털 뉴스 모두 합쳐 7건(2.6%)에 불과했다. 과거 선거보도에서 문제로 지적된 것을 포털 사이트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자료제공 민주언론시민연합>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