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50)옷과 함께 시작한 인생, 옷과 함께 끝난다

나를 벗겨줘<br>까뜨린느 쥬베르·사라 스탠·이승우 옮김·은행나무·2008

나를 벗겨줘
까뜨린느 쥬베르·사라 스탠·이승우 옮김·은행나무·2008

우리는 날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어갈 때 옷을 벗는다. 옷 입기는 문명이 우리에게 훈육한 관습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옷 입는 것을 자연스러운 사회적 관습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옷은 이중적 표상으로 제 기능을 수행한다. 타자의 시선에 드러나는 제 신체를 감추고, 동시에 자기 안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낸다. 옷은 신체의 어떤 부분들을 가릴 뿐 아니라 내적·외적 보호막의 소임을 한다. 아울러 옷은 자기 안의 욕망과 그날의 기분, 자아도취, 기나긴 자아 형성과 관련한 갈등과 투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그런 점에서 “옷차림은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기쁨과 고통을 반영하는 스크린”이다. 이 책은 옷이란 무엇인가, 라는 도발적인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옷장에 걸린 옷과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같은 옷이 아니다. 옷장에 걸린 옷을 몸에 걸치고 밖으로 나설 때 그것은 완전히 다른 그 무엇이 된다. “옷차림을 바꿈으로써 기분도 전환되고, 짊어지고 가기에는 너무 무거웠던 자아도 벗어던질 수 있을 듯한 환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옷은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을 떠나갔던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잠재적 자기 투영의 놀이라고 하겠다.” ‘나를 벗겨줘’를 쓴 두 정신의학 전문의들은 옷을 ‘자신을 떠나갔던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잠재적 자기 투영의 놀이’라고 규정한다. 과연 옷은 우리의 자아를 드러내며, 슬픔과 즐거움을 함께 하는 그 무엇이다.

문명사회에서 갓 태어난 아기들은 배내옷을 입는다. 이렇듯 옷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옷은 누군가 말했듯 후천적으로 부여받은 우리의 피부다. 결혼식에 갈 때는 화사하고 점잖은 옷차림을 하고,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 갈 때는 검정색 정장을 입는다. 육체의 매력과 삶의 좋은 기억을 하나씩 떠나보내기 시작한 노년기의 사람에게 옷은 “매일 한층 더 무너진 육체의 배반에 대항해 싸울 수 있도록 그 주체를 돕”는 수단이자 ‘시간과 기억상실’에 대한 저항이다. 죽은 뒤에는 죽은 자가 특별히 입는 옷을 입고 세상을 뜨는 게 사람이다. 옷과 함께 시작한 인생은 옷과 함께 끝난다. 우리의 옷 입는 관습은 우리 안에 숨은 것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옷으로 가린 것은 자연으로서의 몸이며, 몸에서 발현되는 본능과 욕망의 원초적인 모습들이다. 제 방에서 혼자 있을 때는 벌거벗고 있어도 괜찮지만 바깥(사회)으로 나올 때는 옷을 입어야 한다. 자연과 본능은 문명 세계 안에서는 숨기고 가려야 하는 그 무엇이다. 사람을 사회적 존재로 규정할 때, 그 본질은 옷을 입은 존재들이라는 뜻을 함축한다. 또한 옷은 사회적 동질성이나 사회적으로 용납한 미적 가치에 대한 승인 따위를 드러낸다.

속옷, 특히 팬티는 여성에게 옷차림의 시작이자 기본이다. 이것을 벗는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 여성이 미술관에서 검정 정장 아래 감춰져 있는 제 팬티를 남몰래 벗고 돌아다닌다. 여자는 ‘모든 (몸의) 감각(이)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이상한 흥분과 함께 마음이 심하게 동요하는 기분을 만끽한다. “이날 이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는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지루한 점심 약속, 너무도 심각한 모임, 길어지곤 하는 칵테일 파티 등에서 슬쩍 팬티를 벗고 나를 둘러싼 세상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 몰래 팬티를 벗어던진 여자가 누리는 심리적 해방감에는 성적 판타지도 얼마간은 섞여 있을 터다. 저자들은 팬티를 벗는 것은 관습의 금기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 그리고 부모들이 강조하는 세상의 예의범절과 규칙들을 넘어서는 것, 자아의 성장으로 나아간다는 것, 특히 ‘세상과 관계를 형성시켜온 모성애적 금지사항’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왜 특정 스타일의 옷을 찾고 다른 스타일의 옷은 배척하는 것일까? 왜 어떤 여자들은 ‘빨간색 뱀피 부츠’를 고집할까? 과연 그 부츠가 여성에게 근본적으로 결여된 남근을 대체하는 대용물일까? 저자들은 부츠가 ‘여체의 실루엣에 성적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슈퍼우먼’이나 거세에서 벗어나려는 남근 숭배의 여성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 어떤 사람은 검정 색상의 옷을 고집할까? 어떤 남성이 검정 색상의 옷만 고집한다면 그는 주위 시선에서 벗어나 ‘일종의 피난처’를 구하는 것이며, 타인들과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동시에 불가사의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궁금증 유발’하는 효과를 자아내려는 것이다. 검정 옷은 죽음의 예식에 잘 어울리는 옷이며, 사제들의 옷이다. 검정 옷은 ‘육체의 수위를 조절하고’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 몸을 감싸고, 육체의 외설스러운 면을 숨’길 때, 그리고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 생겨난 텅 빈 마음을 가리고 숨기기에 적당한 옷이다. 검정 색상의 옷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떤 사물이나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생성된 어두움을 의미하며, 그 무언가 또는 누군가에게서 분리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검은 옷차림은 부재를 나타내는 상징물인 것이다.”

사람들은 옷차림이 저마다 독특한 심미적 취향이나 개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사회적 관습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 서로 모방하거나 그 모방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옷 입기에 투영되는 욕망은 문신이나 피어싱을 하는 욕망은 닮아 있다. 제 몸에 문신과 피어싱을 하는 것은 몸 위에 유일무이한 자아를 새겨넣으려는 무의식적인 의도를 반영하며, 대체되지 않는 제 몸 안에서 자기동일성을 강화한다. 문신과 피어싱은 사춘기나 청년기에 이른 사람들이 주로 하는데, 이때의 자기동일성의 추구란 엄밀하게 보자면 자기가 닮고자 하는 강하거나 매력적인 인물과 동일시하려는 무의식적인 몸짓이다. 옷들은 금기와 위반들 사이를 진자운동 하면서 유행을 만들어 퍼뜨리고 다시 사그라든다. 옷의 유행은 출현과 소멸 사이에서 반복·순환한다. 인류의 복장사(服裝史)는 최초의 인류가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은 뒤 낙원에서 추방되자마자 나뭇잎으로 제 몸을 가린 데서 시작한다. 몸은 수치스러운 것, 가려야 마땅한 그 무엇이라는 인식이 옷이라는 필요를 만든 것이다. 그 뒤로 옷은 수많은 금기와 위반 사이의 이항대립을 하며 끝없이 진화해온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옷은 나날이 노쇠해가며 낡아가는 육체의 피난처이고 욕망의 승화다. 그들은 날마다 구원받고 자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새로운 옷을 사들이는 데 많은 돈을 쓴다. 늘 새 옷을 찾는 사람들은 곧 자기를 만족시키는 새로운 자아와 분신을 찾으려는 욕망에 들린 사람들이다. “옷 구매자는 흔히 여성들인데, 그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안심시켜줄 그 순간을 끊임없이 찾는다.” 그들에게 옷은 체면, 예절, 신분의 상징물이며, 더 깊은 욕망의 차원에서는 새로운 자아의 표지고, 실존의 층위에서는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들에겐 옷을 잘 차려 입는 사람이 곧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또 다른 부류의 사람에게 옷은 자유의 제약이며 불편한 구속이다.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장소에서 옷을 벗는다. 아마 사회적 관습이나 법의 강제가 없다면 그들은 알몸으로 살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옷에 돈을 쓰는 사람을 겉치레에 치중하면서 정작 제 내면을 돌볼 줄 모르는 속물이라고 경멸한다.

독서일기

이렇듯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기피의 대상이기도 하는 옷은 무엇인가?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나 쉽게 지나쳐서 오히려 잘 모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옷이다. ‘나를 벗겨줘’는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천 조각과 관련한 취향 저 너머의 내적 감정과 숨은 욕망을 보여준다. 옷에 얽힌 19가지 예화를 소개하고 이를 정신분석 전문의답게 접근해서 옷의 실체를 해명해내려는 뜻 있는 시도다. 특히 옷에 가린 여성 심리의 내밀한 부분을 엿볼 수 있다는 건 이 책이 가진 커다란 장점이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