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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주문형 아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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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에 따라 달라… 관련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

착상 전 유전자 검사 진단 과정.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제공>

착상 전 유전자 검사 진단 과정.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제공>

한국에서 ‘주문형 아기(designer baby)’가 나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답은 ‘주문형 아기’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다. 앞서 예를 든 BBC에서 소개한 앞의 두 부부 사례처럼 유전적 질환이 있어 PGD 기술을 사용해서 자궁 착상 성공, 출산까지 한 경우를 포함한다면 이미 1996년에 달성했다.

하지만 최근 논란이 된 것처럼 ‘자녀의 성별이나 눈·머리카락 색깔을 미리 결정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한국에서는 부모의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정자가 유전적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만 PGD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유전적 결함의 종류도 생명윤리법에 63가지 희귀유전질환이 정해져 있다.

지희준 미즈메디 병원 불임의학연구소 소장은 “보건복지부 규정 자체가 불임이나 유전질환을 야기하는 경우를 모두 담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불임 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새로운 유전자가 발견되었을 경우 병원 내 심의위원회 등을 통해 기술 사용이 가능한 형태로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비만 유전자의 제거와 같은 성형이나 외모 등 미적 기준에 의해 유전자 검사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착상 전 유전자 진단 성 선택은 불법
가장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 성감별이나 성 선택이다. 출산 전 아이의 성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초음파 검사나 양수 검사·융모막 검사 등으로 성별을 확인할 수 있다. 초음파 검사는 아이의 성기 모양을 살펴 남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보통 5개월이 지나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행 의료법에서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것은 불법이다. 임신 기간과 상관없이 출산 전에 성별을 알려준 사실이 적발되었을 때는 면허가 취소되고 3년 이하 징역형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낙태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는 의료법 상 이 금지조항에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헌재 판정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사실상 낙태가 어려운 임신 28주(7개월) 이후에는 알려줘도 무방한 방향으로 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여전히 성 선택, 낙태는 불법이다.

문제는 PGD다. PGD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의 영문 약자다. 체외 수정된 배아(embryo) 중 가장 건강한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는 기술로, 원래는 체외수정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기술이다. PGD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배아의 세포분열은 2→4→8→16… 형태로 진행된다. 보통 이틀이나 사흘 정도 시간이 지나면 수정된 배아는 8세포기에 도달한다. 이때 배아에서 1~2개 세포를 떼어내 염색체의 이상 여부를 검사하는 것이다. PGD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배아가 많을수록 좋다. 사실 배아단계에서 성별은 이미 결정된다. 즉 이 세포단계에서 성별은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PGD 기술 수준과 관련해서 “거의 세계 정상급에 가깝다”는 데 관련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의견을 같이한다. 보건복지부에 배아생성의료기관으로 신고되어 있는 기관은 2009년 2월 현재 145개. 이중 독자적으로 PGD를 시술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최소 5개에서 10개 사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PGD 관련 국제학회에도 서울대, 차병원 등에서 매해 꾸준히 논문을 내고 있다.

구승엽 서울대 의대 교수는 “비유적으로 본다면 현대자동차나 삼성반도체를 생각하면 된다”고 말한다. 일부 시료 등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조작기술이나 ‘코어’에 해당하는 기술은 이미 정상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강남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원형재 교수는 “특히 한국 사람들이 ‘손 기술’이 좋은 편이어서 외국에서 높은 연봉을 주고 스카웃해 가기도 한다”라며 “한국에서 시험관 아기의 성공률이 높은 것도 그렇지만 실제 미국에서도 그쪽 분야는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동양인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 학자들이 국제학회에 제출한 PGD 관련 논문들.

국내 학자들이 국제학회에 제출한 PGD 관련 논문들.

PGD 기술도 물론 한계가 있다. 원 교수는 “장점이라면 유전되는 유전질환이 없는 아이를 낳게 해준다는 것이지만 수정된 배아에서 할구를 떼어내면서 착상률, 즉 임신 확률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PGD 기술을 통해 다양한 배아를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유전자가 모두 특정 유전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면 무용지물이다.

구승엽 교수는 “PGD는 진단을 위한 기술일 뿐 배아에 대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다른 형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분자생물학적 수준에서 유전자 질환과 관련한 유전자가 밝혀지더라도 진단할 수 있는 병의 영역이 넓어질 뿐, 예컨대 조상에 백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흑인 부부의 배아에서 알비노 증후군 같은 유전적 질환이 아닌 흰 피부의 아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주문형 아기’라는 개념은 아직 관련 학계에서 학술적 시민권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원 교수는 “만약 미혼 여성이 정자은행에서 제공받은 정자에서 남자의 눈·피부 색깔, 키나 학력 등의 ‘정보’를 선별해서 자신의 난자와 수정해 시험관 아기를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부부가 자신들의 정자와 난자를 가지고 그런 형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학계에 보고된 사례가 아직까지 없다”라고 덧붙였다.

스타인버그 주장 과장 가능성 커
스타인버그 박사의 주장에 대해 한국 전문가들은 대부분 ‘사기’이거나 ‘과장광고’로 보았다. 구 교수는 “결국 중요한 것은 ‘SCI’와 같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학술지에 등재된 논문이 있느냐는 것인데, 현재까지 그런 주장은 검증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인간이 아닌 동물에 대한 생식세포단계의 배아 유전자 조작은 여러 차례 실험되었다. 지금까지 가장 인간과 가까운 사례는 ANDi라는 이름이 붙은 붉은털 원숭이다. ANDi는 붉은털 원숭이 난자에 초록빛을 내는 해파리 유전자를 삽입해 탄생한 최초의 영장류다.

즉 ANDi의 모든 세포에는 이 해파리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지희준 소장은 “언젠가는 인간의 유전자 조작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나 벽이 너무 많다”라고 말한다. 동물 실험의 경우도 실험적인 의미로는 가능하지만 수명이 짧아진다든가 기형이 나타나는 등 실험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에 적용하는 일까지 내다보기는 너무 성급하다는 것.

논란에는 또 하나의 쟁점이 얽혀 있다. 바로 영리병원 문제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영리병원이 일반화한 데다, 스타인버그는 비록 의사지만 그가 소장으로 있는 LA불임연구소가 보이는 행태가 전형적인 영리병원의 모습이라는 것이 한국 의료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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