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연중기획] 마산 3·15의거 드라마 나온다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

4·19혁명의 결정적 도화선 ‘그날’의 생생한 함성 담아

일제 강점기 때 민중은 그를 ‘아라이’ 형사라고 불렀다. 고문과 강압수사로 악명이 높았다. 고등계 형사 아라이는 광복 뒤 제 이름 ‘박종표’를 되찾았다. 반민특위의 기소로 재판정에 섰지만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살아남았다. 그러고는 마산경찰서 경비주임으로 복귀했다.

드라마 <누나의 3월> 가운데 3·15 마산 학생시위. | 마산MBC

1960년 3월 15일 마산시청 앞. 경찰은 “부정선거 다시 하라”고 구호를 외치는 시민과 학생 1만여 명을 향해 총탄과 최루탄을 쐈다. 8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비무장 군중을 향해 발사된 최루탄 한 발은 마산고 2학년 김주열의 눈에 박혔다. 이날 현장에서 발포를 명령한 사람이 바로 박종표다.

마산MBC서 2부작으로 제작 방영
마산 3·15의거와 김주열의 사망 소식은 4·19혁명의 불꽃을 터뜨린 결정적 도화선이었다. 그날의 생생한 함성과 인간 군상의 이야기가 마산 지역 PD들의 손에 의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마산MBC가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제작비 5억원을 투입한 <누나의 3월>(기획 김용근·제작 허성진·연출 전우석)다. <서울뚝배기> <옥이이모> <황금사과> 등 드라마를 집필한 김운경 작가가 대본을 썼다. 지역 방송사에서 제작한 드라마로는 드물게 손현주, 오지혜, 김애경 등 중량급 배우들이 출연했다. 배우들의 섭외에는 김 작가가 도움을 줬다.

<누나의 3월>에서 박종표와 허양미로 각각 출연한 배우 손현주, 김지현. | 마산MBC

극중에서 김주열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 김 작가는 “당시 고등학생인 김주열을 중심으로 극을 짜려니 그림이 잘 나오지 않았다. 기층 민중이 민주화의 뜻을 깨닫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더 나은 구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인터뷰 참조) 김 작가가 말한 ‘기층 민중’은 가상의 인물 허양미(김지현 분)다. 드라마는 실존인물 박종표(손현주 분)와 허양미라는 가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고등학생 동생 양철이 유일한 희망인 허양미는 다방 여종업원으로 일한다. 양철의 친구가 바로 김주열의 형 김광철이다. 양철은 3월 15일 시청 앞 시위 후 경찰서에 붙잡혀 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다. 양미는 동생을 구명하기 위해 경찰에게 애원하지만 박종표는 오히려 양철을 볼모로 삼아 양미에게 접근한다. 양미가 이 같은 소용돌이의 와중에 김주열의 어머니 권찬주 여사(오지혜 분)를 만나 각성하면서 드라마는 3·15를 넘어 4·19를 향해 직진한다.

60분짜리 2부작으로 제작된 <누나의 3월>은 3월 26일 오후 9시55분 마산에서 전파를 탄다. 기획을 맡은 김용근 PD는 “마산에서 3·15의거는 시민 모두의 관심사다. 시민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면서 “현재 본사와 전국 방송에 대해 협의 중이다”라고 밝혔다.

김운경 작가 전화 인터뷰
“민중이 어떻게 혁명에 참여했는냐에 초점”

<서울 뚝배기> <한지붕 세가족> <서울의 달> <옥이이모> <파랑새는 있다> <황금사과> 등 김운경 작가가 쓴 드라마들은 ‘한국 서민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라는 평을 받아 왔다. 투박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서민의 일상을 세밀한 사실성과 유장한 서사성을 결합해 그만큼 정감있게 담아내는 작가는 드물다. 김 작가는 인터뷰를 잘 하지 않고, 하더라도 직접 만나거나 사진을 찍는 일은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구상을 위해 지리산 자락에 머물고 있는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주인공 허양미는 어떤 인물인가.
“‘잊어’ 다방의 여종업원이다. 동생밖에 모르는 평범한 여자로, 3·15를 겪으면서 투사로 변모한다. 박종표에게 농락당하며 고통을 받다가 권찬주 여사를 만나 그분에게 감화돼 투사로 변모한다. 애초 김주열을 중심인물로 설정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 17살에 불과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가 힘들었다. 너무 어려서 그림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3·15의 뜻을 전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으로 허양미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다. 허양미를 통해 기층 민중이 어떻게 혁명의 격랑 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가에 초점을 맞췄다.”

박종표는 어떤 인물로 그려지나.
“박종표는 일제 때 악랄한 친일형사였다. 기록을 보면 광복되기 불과 두 달 전에도 독립운동하는 사람을 고문해 죽인 전력이 있다. 반민특위 조사 때도 아주 뻔뻔했다. 4·19 직후 국회진상조사단 앞에서는 경찰이 총을 공중으로만 쐈는데 사람들이 죽었다고 진술했다. 공중으로 쏜 총알이 군중이 던진 자갈에 맞아 튀면서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당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실제로 집행됐다는 기록은 없다. 그래서 박종표가 아직 살아 있다는 풍문이 있다. 극악한 인물이지만 극중에서는 최대한 인간적이고 코믹하게 그리려고 했다.”

집필에 필요한 취재는 어떻게 했나.
“김주열의 큰 누나와 작은 누나가 서울에 살고 있다. 두 사람에게 얘기를 많이 듣고, 남원의 생가도 방문했다. 역사적인 사실들은 마산MBC에서 쌓아 놓은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

잘 알려진 사실 이외에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도 나오나.
“마산시청 뒤에 큰 연못이 하나 있었다. 3·15 당시 넝마주이들이 그 연못 부근에 모여 살고 있었다고 한다. 김주열이 죽은 뒤 이 넝마주이들이 누군가 시체를 연못에 버리는 걸 봤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아들을 찾으러 온 권찬주 여사가 마산 시민들과 함께 마산시장을 찾아가 당장 연못의 물을 빼라고 했다. 시장은 처음엔 거부했다가 시민들이 나서서 ‘우리가 양동이로라도 물을 빼겠다’고 나오니까 물러섰다.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빼내는 동안 마산 시민들이 연못을 빙 둘러서서 현장을 지켰다고 한다. 결국 거기선 주열이의 주검을 찾지 못하고 4월 11일 부두에서 홍합을 캐던 할아버지가 발견했다. 마산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다.”

작가로서 3·15와 4·19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김주열이 죽은 것은 하나의 역사적 우연이다. 그러나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독재와 부정선거에 대한 민중의 응어리가 김주열의 죽음을 계기로 분출된 것이다. 결국 전국적인 저항으로 확대되면서 이승만이라는 거대한 힘이 무너졌다. 우리 민중의 저력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