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통하는 한국문학]한국문학의 꿈★은 이루어진다

우리 소설과 시 세계문학에서 ‘자리매김’할 날 멀지 않아

지난 월드컵의 아린 기억과 함께 축구 이야기로 시작하자. 2005년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한국 축구·문학 역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독일 작가들과 한국 작가들의 축구 경기가 열린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장 안에 마련된 간이 구장에서 각 팀 6명이 뛰는 실내 경기였다. 독일 방송사의 제안으로 이뤄진 이 경기에 한국팀은 작가 김연수·김영하·성석제·최인석, 문학평론가 김동식, 출판평론가 표정훈 등 정예 멤버(?)가 포진했다. 우리 응원석에는 은희경, 신경숙, 공지영, 이혜경 등 여성 작가들이 자리를 잡았다.

당시 막 정식으로 창단한 독일 작가 축구단의 주장은 <존넨알레>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토마스 브루시히가 맡았다. 결과는 3대15. 한국의 패배였다. 이후 상승세를 탄 독일 작가 축구팀은 2006년 유럽 작가 선수권에서 준우승을 했고, 올해 봄 2010년 대회에서는 우승했다. 유럽 작가 선수권에서 우승한 독일 감독은(물론 작가다) 각국의 축구문화를 문학과 비교했다.

이탈리아 작가들은 경기 내내 말이 많았고, 영국 작가들은 몸을 앞세운 경기를 펼쳤으며, 경기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우루과이 선수들은 상대방 골문 앞에서 고독해 보이는 슛을 날린다고 한다. 세세한 문학적 장치와 문장 구조까지도 축구 경기에 그대로 전이된다고 했다. 과장 섞인 말이라고 치자. 독일 작가와의 친선 경기가 끝나고 여러 말이 오갔다. ‘어려서부터 유소년 축구로 단련되고, 연일 최고 수준의 경기를 관람하며, 축구를 나라의 운동으로 아는 이들과 어찌 겨룰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문학은 축구장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까.

당시의 패배를 문학으로 옮겨 놓으면 서양어 전통에 기대어 수천 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자신들의 장르로 문학을 하는 이들과 소수어인 한글을 바탕으로 ‘번역’이라는 매개를 거쳐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을 안고 세계 진출을 겨누는 한국 작가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해 한국문학은 경기장 밖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독일의 3대 출판사는 주어캄프(Suhrkamp), 데테파우(dtv), 피셔(Fischer)다. 이 가운데 주어캄프에서 고은 시인의 <조국의 별> 개정판과 <한국문학단편선>, 데테파우에서 <한국단편선집> <한국시선집>과 황석영 작가의 <한씨연대기>가 나왔다. 한국문학이 해외 주요 출판사와 한꺼번에 만난 경사였다.

그 이전까지 한국문학은 얼마나 해외에 소개됐을까. 1880년께부터 민담과 고대소설이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번역(안)이 된 것을 우리 문학 해외 소개의 기점으로 보면 그 역사는 이미 100년이 넘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등 순탄치 않은 역사 때문에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다가 실제 일정한 형식을 갖춘 것은 1980년대다. 우리 문학의 본격적인 해외 소개 역사는 채 20, 30년이 안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기에다 세계화의 진행 속에서 우리가 ‘같은 눈높이’에서 세계와 문학으로 소통하겠다, 할 수 있다는 자의식이 들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외에 소개된 한국문학 작품은 민간을 통해 소개된 부분의 통계가 완벽하게 파악되지 않아 다소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대략 3000건에 이른다. 2001년에 출범한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 지원은 올해 3월 말까지 29개 언어권의 479종이다. 많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 이웃으로 눈을 돌려 보면 번역을 나라 건설의 바탕으로 삼은 일본의 경우 1950년부터 2005년까지만 2만 종이 넘는 문학작품을 번역했고, 중국은 2005년부터 고전과 현대문학을 망라하는 ‘국가도서번역사업’을 벌여 1200종의 문학작품 번역에 나섰다.

독일에 축구에서 참패했지만 한국문학 해외소개에서 2005년은 새로운 원년으로 볼 수 있다. 독일 작가들과의 경기가 끝나고 한국 작가들은 공을 뒤로 한 채 작품을 들고 독일 독자들을 만나러 갔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으로 초청된 우리는 연인원 90여 명의 작가가 독일에서 문학 행사를 벌였다.

2010년 6월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열린 한국문학 행사에 참석한 작가들이 프랑스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하, 황석영, 최미경(번역가), 신경숙, 이승우씨.

도서전은 책과 작가를 둘러싼 행사다. 책은 문화이기도 하고 상품이기도 하다. 도서전은 둘이 만나는 곳이다. 둘 가운데 하나가 없으면 소개의 의미가 반감된다. 상품으로만 보이면 문화가 없어 빈약하고, 문화만 드러나고 상품 가치가 없으면 허전하다. 당시 한국문학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문화와 상품 두 가지 형식으로 세계와 만났다. 물론 이전에도 우리 작품은 책 형태로 해외에서 번역 출간됐지만 상품으로서의 한국문학은 미미했다. 한편 작가들이 해외 청중 앞에서 낭독회를 하면서 자신의 글쓰기가 단순히 국내 독자들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것도 2005년을 원년으로 삼는 이유다. 이제 작가들은 한국문학이 우리끼리의 소통을 넘어 세계인에게 말을 걸 수 있고, 그 말이 이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 김영하는 자신의 책을 뉴욕, 파리, 도쿄의 대형 서점에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자화자찬으로 자족감을 채운다고 갑자기 사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점잖게 세계와 통하기를 기다리는 것도 능사는 아니기에 자랑부터 하자.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고은 시인의 개막 연설로 시작됐다. 이튿날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라는 독일 유수의 신문 1면에 고은 시인의 시가 우리말과 독일어로 실렸다. 2008년에는 중남미 최대의 도서전인 과달라하라 도서전에서 황석영 작가가 개막 연설을 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등 중남미문학의 거장들이 선 자리다. 오정희 작가는 독일에서 작지만 소중한 상인 리버라투어상을 받았고, 이승우 작가는 프랑스 페미나상 후보에 올랐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는 스페인 공영방송에서 ‘이 주의 책’으로 선정 방영됐으며,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전 10권이 프랑스에서 완역 출간됐다.

현지 문학인들의 상찬도 이어진다. 2005년 고은, 황동규, 김지하의 시 낭독회에서 사회를 본 독일인은 자신이 최근 10년 동안 읽은 전 세계의 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시편이라고 했다. 이 상찬을 남긴 이는 독일 공영 텔레비전방송 문학 프로그램 사회자이자 독일의 정통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의 문예란 편집장으로, 독일 문단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비평가 이리스 라디슈다.

“한국 현대문학은 한국 사회만큼이나 다이내믹하다. 특히 최근 젊은 작가들이 다루는 소재는 프랑스에서는 보지 못한 참신한 것들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 하면 전쟁만 떠올리는 프랑스 독자들이 새로운 한국을 만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가 프랑스 최고 문예지 ‘NRF’ 한국문학 특집호에서 한 말이다. 각종 문학 행사를 통해 한국 작가가 해외 주요 신문의 문예란을 크게 장식하는 것도 이제는 드문 일이 아니다.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 문도’ 2007년 2월 10일자에 실린 고은 시인 특집 기사.

그렇게 이룬 한국문학 소개의 결과라고 해야 할까. 2006년 이후 공지영, 신경숙, 김영하, 조경란, 한강 등 작가들의 작품 판권이 국내 에이전시를 통해 해외 유수 출판사와 계약됐다. 이전에 해외 에이전시를 통해 작품이 수출된 윤흥길, 황석영, 이문열 작가의 뒤를 이어 본격적으로 상업 문학시장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제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에서 자기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 아니다. 자국 문학의 해외 소개에 있어 소수 언어를 사용하는 후발 주자라는 태생적 한계는 감수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우리가 나아갈 길도 그리 만만치 않다. 우리가 외국 작품을 들여와 번역해 시장에 내놓는 만큼 우리 작가의 판권이 해외에 팔리고 그것을 외국인 번역가가 번역해 시시때때로 해외 출판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아직 번역된 작품의 절대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번역해 낼 번역가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도 한국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세계문학에서 슈팅 스타처럼 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마음은 뿌듯할지 모르지만 착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더 많은 번역 지원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외국어 번역가를 양성해 대폭 늘리지 않으면 상황은 쉬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독 우리만 문학을 통해 세계와 만나려고 이런 저런 수단을 강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문학적으로 세계에 알려질 만큼 알려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도 자국 도서를 알리기 위해 공공재원을 통한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또 우리처럼 소수어인 히브리어·핀란드어·네덜란드어·덴마크어·터키어 등 번역을 매개로 소통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들, 우리의 이웃인 일본과 특히 2005년부터 매년 1200권을 번역하겠다고 나선 중국 등도 자기 문학의 해외 소개에서 우리보다 더하면 했지 덜하지 않다.

왜 그러는 걸까? 큰마음으로 생각해 보자. 문학은 인류의 기억이다. 자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것은 그것이 문화적 자존심과 우월감의 표출이라 하더라도 크게 보면 인류의 지적 유산을 함께 나누겠다는 선의의 표현이며, 형형색색의 다른 언어를 통해 세계와 인간을 서로 옮겨 더욱 넓어진 각자의 지평을 통해 인류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다시 만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하면 우리 문학의 해외 소개는 인류의 보고(寶庫)에 새로운 기억을 축적하는 일이 될 것이다.

다가올 월드컵을 기약하며 축구 이야기로 끝내자. 한국 작가들이 다시 경기장에 서는 날 한국 작가들은 ‘시야가 넓고 수비가 견실하며 개인기가 뛰어나고 골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참신한 슈팅을 날린다’는 평가가 나오고,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외국 작가와 감독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2014년 다음 월드컵 즈음에는….

<윤부한 _ 한국문학번역원 전략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