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스크린]인간의 본성 드러낸 ‘스탠퍼드 감옥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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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는 어디선가 칼럼에서 제복과 계급장을 유치한 취향이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우리는 체험적으로 안다. 제복의 위상을. 멀쩡한 남자도 예비군복만 입혀 놓으면 ‘개’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한 대학이 감옥 실험을 한다. 지원자들을 간수와 죄수로 나누고 24시간 그들의 행동을 2주간 관찰하는 실험이다. 실험을 주관한 교수는 모의감옥 곳곳에 설치한 CCTV로 지원자들의 다양한 행동유형을 관찰할 예정이다. 실험 참여 대가는 1만4000 달러. 꽤 큰 돈이다. 트래비스(애드리언 브로디 분)는 시위현장에서 만난 여인과 여행을 떠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실험에 참여한다. 실업자인 배리스(포레스트 휘태커 분)가 참여한 목적은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트래비스는 죄수, 배리스는 간수가 됐다.

영화는 독일에서 2001년도에 만들어진 같은 제목의 영화를 다시 만든 것이다. 독일판 <엑스페리먼트>에서 실험을 주관한 교수는 때때로 개입해 죄수나 간수의 심정을 인터뷰하는 반면, 9년 뒤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이 영화에서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대신 실험을 중단할 상황이 오면 “빨간불을 넣겠다”고 말한다. 빨간 불은 큰 압박수단이다. 만약 2주를 채우지 못하고 실험이 실패하면 참가자들은 돈을 못 받는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실험은 밀그램의 전기고문 실험과 함께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 즉 보통의 평범한 사람의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잔학성을 드러내 보여준 실험으로 유명하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함’이다. 1971년 8월, 스탠퍼드 대학의 필립 짐바르도 교수 주도로 행해진 이 실험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죄수 학대로 이어졌다. 인터넷에 올려진 실험 기록에 따르면 이틀 만에 죄수 역을 맡은 참가자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간수들은 교수와 조교들의 감시를 벗어나 소화기를 뿌려 죄수들에게 복수했다. 몇몇 간수들은 죄수들에게 맨손으로 양변기를 치우게 하는 등 가혹행위를 벌였다. 결국 실험은 6일 만에 중단되었다.

2010년판 <엑스페리먼트>는 독일판의 설정을 그대로 따왔다. 간수와 죄수는 리더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간수들은 자신들에게 공공연하게 저항하는 77번(트래비스라는 이름 대신 죄수들은 번호로 불리는 것이 주어진 룰이다)을 혼내줄 계획을 세우는데, 배리스는 “대학시절 배웠다”며 “가장 효과적으로 혼을 내는 것이 공개적인 모욕 주기”라고 다른 간수들을 일깨운다.

물론 독일판과 다른 것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2010년판에 연구자들의 반응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죄수들을 제압하는 일장연설을 한 뒤, 배리스가 자신의 성기가 발기한 것을 깨닫는 것은 권력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리메이크판은 원작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궁금하다. 도대체 9년 뒤 이 영화는 왜 리메이크 되었을까.

영화에서는 거론하지 않았지만 유력한 답이 하나 있다. 아부그레이브다. 2004년,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아부그레이브 감옥 사진들에 전 세계는 경악했다. 모슬렘 신자들은 벌거벗은 채로 인간 탑을 쌓는다든지, 두건이 씌워진 채로 오줌을 맞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평범한 남녀 군인이었던 간수들이 고안해낸 고문 방법이었다.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바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다. 1971년 그 실험을 했던 짐바르도 교수도 무릎을 쳤다. 그는 학대를 고안했던 ‘평범한 간수’들의 변호전문가단에 나섰다. 2007년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루시퍼 효과’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원작은 한국에서 꽤 성공했다. 그렇다면 리메이크작은? 영화수입사는 영화감독인 폴 쉐어링의 TV시리즈물이 한국에서 꽤 성공했다는 사실에 기대를 건 것 같다. 영화의 포스터에도 <프리즌 브레이크>의 폴 쉐어링 감독 작품이라는 것을 강조해 놓았다. 그는 이 유명 TV시리즈에서 각본 및 프로듀서를 맡았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성공이 자동으로 장편영화의 흥행 보증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한 두 명의 노련한 배우를 주인공으로 모아놓았지만, 영화는 놀랄 정도로 엉망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단조로운 각본과 연출이다. 물론 평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참고로 미국에서 이 영화는 극장 개봉 없이 바로 DVD로 직행했다.

제목: 엑스페리먼트(The Experiment)

장르: 충격 실험 스릴러

감독: 폴 쉐어링

주연: 애드리언 브로디, 포레스트 휘태커

개봉: 2010년 8월 11일

터치 스크린

등급: 15세이상 관람가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