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대란’은 왜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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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권하는 사회<br />김순영 지음·후마니타스·1만3000원

대출 권하는 사회
김순영 지음·후마니타스·1만3000원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다음해인 1998년, 신용 불량자는 193만명이었다. 1997년과 비교해 50만명이 늘어났다. 기업과 가정이 구제금융의 직격탄을 맞은 직후였으므로, 어느 정도 불가피한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상한 것은 2000년 말까지만 해도 200만명을 넘지 않았던 신용 불량자가 2004년 4월 말에는 382만4000명이 됐다는 사실이다. 

이 기간은 경제성장률 기준으로는 한국 경제가 구제금융 여파에서 완전히 회복한 후다. 그럼에도 같은 기간 신용 불량자는 그 이전에 비해 무려 2배나 증가했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문제는 신용카드였다. 2003년 한 해 동안 늘어난 신용 불량자 108만명 가운데 84%가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해 신용 불량자가 됐다. 이들은 신용카드를 마구잡이로 발급받아 과소비와 사치로 탕진한 후 빚을 갚지 않은, ‘도덕적 해이’에 빠진 사람들이었을까. 책은 ‘카드 대란’을 초래한 원인은 신용카드 사용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당시 김대중 정부의 잘못된 신용카드 정책이었다고 말한다.

카드 대란은 IMF의 신자유주의 처방, 개혁보다는 경기회복에 열중했던 정권, 전통적인 경제관료 헤게모니, 이윤창출에 혈안이 됐던 대기업 계열 및 은행 계열 카드사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한국에서 금융자유화는 1992년 1월 국내 상장 주식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허용 이후 지속됐다. 이 흐름에 본격적인 물꼬를 터준 것은 IMF 구제금융이었다. IMF는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한국 정부에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재경원을 재경부로 축소하고, 금융 감독기관을 금감위-금감원 체제로 통합했으며,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했다.

문제는 급격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때문에 구조조정을 포기하고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부양을 선택했는데, 그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신용카드 활성화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를 철폐하고, 카드 시장 진입 요건을 완화하는 등 신용카드 부문의 규제를 크게 풀었다. 카드사들이 노숙인들에게까지 카드를 남발하고 높은 이자율로 사실상 고리대금업에 가까운 영업행태를 보였음에도 정부는 ‘시장자유’라는 명목으로 이를 묵인했다.

카드 대란의 배후에는 개혁을 내세웠으면서도 오히려 개혁 대상들과 손잡을 수밖에 없었던 민주정부의 딜레마가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성장주의를 기반으로 한 경제 관료와 재벌 기업”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이런 구조적 제약에 놓인 민주적 정치 엘리트가 경제 관료와 재벌이 중심이 된 성장 우선주의를 수용하면서 자신의 선호를 충족할 수 있는 정책으로 선택했던 것이 신용카드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400만명에 이르는 신용 불량자의 양산과 서민경제의 파탄이었다. 저자는 “절차적 민주화와 그로 인한 민주정부의 형성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내용과 질적 심화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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