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스크린]부조리한 현실 웃지 못할 코미디

아우라픽처스

제목: 부러진 화살(Unbowed)

장르: 드라마, 코미디

감독: 정지영

출연: 안성기, 김지호, 박원상, 나영희

상영시간: 100분

개봉: 2012년 1월 19일

등급: 15세 관람가

대학입시 시험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된 김경호 교수(안성기 분). 그는 자신의 무고를 입증하기 위해 오랜 기간을 법정 투쟁하지만 뚜렷한 근거 없이 패하고 만다. 이에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고자 석궁을 들고 담당판사였던 박봉주(김응수 분)를 찾아간 김 교수. 하지만 단순히 협박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처음 의도와 달리 몸싸움이 벌어지고 우발적으로 화살이 발사된다.

주변인들의 개입으로 잠시 동안의 소동은 이내 정리되지만, 박 판사는 화살에 구멍이 뚫리고 피가 묻은 옷가지를 근거로 악의적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살인미수로 기소된 김 교수는 무죄를 주장하지만 고지식하고 대쪽 같은 그의 성격을 감당하지 못한 변호사들은 하나 둘 그의 변론을 포기하고, 결국 지방에서 별 볼일 없는 노동변호사로 연명하고 있던 박준 변호사(박원상 분)에게 김 교수를 변호할 기회가 찾아온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성격의 두 사람의 동행이 순탄할 리만은 없다.

2007년 1월 발생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사건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최근 한국영화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실화 사회 고발극’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주로 특정범죄를 중심에 놓고 사회적, 행정적 모순을 소극적으로 고발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사법부라는 절대 권력을 노골적인 표적으로 하고 있다는 대담함에서 이 영화는 차별성을 갖는다.

<부러진 화살>은 그리 화려한 문법이나 사건을 전면에 배치한 영화는 아니다. 또 가난한 독립영화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형 상업영화의 풍성한 규모와 형태를 자랑하는 작품도 아니다. 그래서 현란한 테크닉이나 화려한 볼거리에 집착하는 요즘 작품들의 추세로 본다면 꽤나 낡은 영화, 또 어정쩡한 영화로 보일 만도 하다. 하지만 자신이 이야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입가경의 분위기로 관객의 시선과 감각을 휘어잡는 놀라운 능력을 드러낸다.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 등의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정지영 감독은 장장 13년이라는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녹슬지 않은 감각과 중견감독다운 넉넉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교보다는 본질에 충실한 연출과 믿을 만한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는 이 영화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사건 자체를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또 실제 사건의 무게감을 충분히 되살리면서도 희극적 창작요소를 촘촘히 박아놓은 재치 있는 각본은 설득력 있는 전개와 함께 기대 이상의 오락적 재미까지 동반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정작 관객들을 작품 속에 몰입시키는 결정적 부분은 따로 있는데 바로 실제 사건을 최대한 반영해 재연된 법정공방의 내용이 그것이다.

치밀하게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무장해 뛰고 나는 현대 법정영화들에 단련된 관객들 눈으로 본다면 이 영화에서 펼쳐지는 재판장면 속의 엉성하고 억지스럽기 이를 데 없는 상황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실제 사건이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이다. 만약 온전한 허구였다면 너무 허술하다고 지적받아 마땅했을 재판과정과 공방에 허탈한 비웃음을 흘리다보면 문득 이것이 현실이라는 자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터치 스크린

만듦새나 재미, 담고 있는 내용 등 다방면에서 필히 대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 <부러진 화살>은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명명된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극명한 화두를 던지고 있으며, 또 다른 성찰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영화라는 형태를 통해 필히 알아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할 부끄러운 현대사의 편린을 면밀히 재연하고 기록해냈다는 점만으로도 작품의 의미는 충분하다.

최원균<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