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정 중등조선역사>에서 확인된 초상화는 박제화한 이순신 대신 실체에 가까운 모습을 복원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황의돈의 <증정 중등조선역사> (1946·서울교육박물관 소장) 69쪽에 있는 이순신 장군 초상화.
그동안 사라졌던 이순신 장군 초상화의 실체가 확인됐다. 전남 고흥 녹동 쌍충사(雙忠祠)본이라는 초상화다. 이 초상화는 서울교육박물관이 소장한 <증정 중등조선역사>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초상화는 근·현대에 그려진 이순신 초상화와 달리 이순신의 막하 승병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초상화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상상 속의 이순신 모습이 아니라, 실제의 이순신 모습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1970년 9월 15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김동권 체신공보담당관의 기고문에 따르면, 황의돈이 저술한 <중등조선역사(국문판)>(삼중당·1946)에 쌍충사 보관 이순신의 초상화 사진이 수록돼 있었다고 한다. 김 담당관은 기고문에서 “(이순신의 초상화에 대해) 좌상(坐像)인데 그 좌고(坐高)가 그리 크지 않더라”는 황의돈의 말을 옮겨놓았다.
초상화 원본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소각했고, <중등조선역사>에 활용된 사진도 황의돈 선생에게서 빌려간 사람이 6·25전쟁으로 행방불명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또한 <중등조선역사>도 오래된 책이라서 찾아내기 어려워 학계에서는 그동안 초상화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 막하 승병이 그렸다고 전해져
이번에 확인된 <증정 중등조선역사>의 초상화는 인쇄상태가 선명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이순신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황의돈의 말처럼 초상화 사진을 새로 얻어 책에 넣었기 때문인지 황의돈이 1923년 저술한 <신편 조선역사>와 1927년 저술한 <중등조선역사> 속의 이순신 초상화와 확실히 다르다.
<신편조선역사>와 <중등조선역사> 속의 이순신 초상화는 1908년 장세기가 쓴 <대한역사> 107쪽의 초상화와 같다. <대한역사>의 초상화는 그린 사람과 출처를 알 수 없고, 구군복(具軍服)을 입은 무인 모습이다.
반면에 이번에 발견된 초상화는 출처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얼굴은 <대한역사> 속의 이순신 초상화와 달리 점잖은 문인처럼 보이고, 흉배가 있는 문관복을 입고 있다.
경향신문에 기록된 황의돈의 구술 전언과 달리 <증정 중등조선역사>의 초상화에는 고흥 쌍충사가 아니라 여수 충렬사(忠烈祠)로 출처가 기록되어 있다. 책에 기록된 출처인 충렬사는 여수에 없다. 여수에는 충민사(忠愍祠)가 있다. 황의돈이 충민사를 충렬사로 오해했거나, 아니면 경향신문 기고문처럼 고흥 녹동 쌍충사일 수 있다.
하지만 충민사·충렬사·쌍충사에는 조선시대에 이순신의 초상화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에 이순신의 초상화가 있었던 곳은 통영 착량묘(鑿梁廟)와 순천 신성리 신당(神堂), 여수 장군영당(將軍影堂)이다. 세 곳의 초상화 중 하나가 사진으로 남아 <증정 중등조선역사>에 실렸을 가능성이 높다.
(왼쪽부터) <증정 중등조선역사>의 표지. <증정 중등조선역사>의 표지. 황의돈, 신편조선역사, 이문당, 1923.
문인처럼 보이고 흉배 있는 문관복 입어
착량묘는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인 1599년 군사와 백성들이 이순신을 추모하고자 자발적으로 세운 이순신 사당의 시초이다. 이은상에 따르면 “왜적이 물러간 뒤에 해상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공의 충절에 감격하여 초가를 짓고 공의 초상을 모시고 제사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 그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순천 신당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10년 후에 세워졌다. 죽은 일본군 귀신과 도깨비불 등으로 고통당하던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은 한 승려가 마을사람들에게 이순신의 신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면 해결된다는 이야기로 인해 신당이 세워졌다. 이순신의 초상화를 그려 모셨는데, 1944년 일본인에 의해 사당과 화상이 모두 불태워졌다. 그 신당터에 1948년에 지은 사당이 오늘날의 순천 충무사다.
여수 장군영당은 현재 돌산대교 서쪽 입구인 여수시 남산동에 있었다. 순천 신당과 비슷한 성격의 여수지방 해신당이다. 장군영당 속의 이순신 초상화 기록은 조선 말기에 여수군수를 역임했던 오횡묵(吳宖默)이 남긴 <영당치제문>과 1927년 동아일보 여수 주재기자가 쓴 기사에 나온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영당에는 이순신을 주벽으로 최영, 이대원, 정운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43년 이순신 영정은 당시 여수경찰서 고등계 형사 김차봉이 가져가 행방불명되었고, 최영과 정운의 영정은 일제경찰이 태웠다고 한다.
이번에 발견된 황의돈의 <증정 중등조선역사>에서 여수 충렬사본이라고 한 초상화는 실제로는 순천 충무사 자리에 있던 신당본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신당과 화상이 1944년에 일본인에 의해 붙태워졌다는 황의돈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또한 이 초상화는 1932년 이상범 화백이 여수 등지에서 보았다는 문관복을 입은 초상화와도 비슷하다.
이제는 박제화한 이순신, 문인 같은 이순신의 얼굴 대신 진짜 무인 이순신의 모습을 복원해야 한다. 1973년 지정한 장우성 화백의 표준 영정도 교체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점에서 <증정 중등조선역사>에서 확인된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는 실체에 가까운 모습을 복원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왼쪽부터) 장세기, 대한역사, 1908년, 서울교육박물관 소장. 안중식, 1918년, <한산 충무>, 간송미술관. <동광> 제23호(1931년 7월)에 실린 최우석의 이순신 초상화.
일제 강점기 전후의 이순신 초상화 관련 기록으로는 언론 기사와 이광수와 이상범 등이 남긴 기록이 있다. 가장 이른 것은 장세기의 <대한역사>(1908년)에 나오는 초상화이나 그 출처 등을 알 수 없다. 또한 1914년의 <권업신문>에는 이순신 초상화를 판매한다는 광고가 나온다. 어떤 초상화였는지도, 그린 사람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식 화가가 그린 것으로는 1918년 심전 안중식의 <한산 충무>, 1929년 최우석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입선한 <충무공>, 이상범이 1932년에 그린 영정, 성재휴가 이상범의 초상화를 모델로 해서 1938년에 그린 영정이 있다.
(왼쪽부터) 이상범 화백이 그린 이순신 초상화.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1932·143.0×90.0cm) 장우성 화백이 그린 이순신 장군 정부 표준영정. 충남 아산 현충사에 소장돼 있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한산 충무>는 안중식의 작품으로 무엇을 근거로 그렸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가 1913년에 <아이들 보이>의 표지로 그린 그림 속의 구군복(具軍服)에 백마를 탄 장수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러나 <한산 충무> 속의 이순신 얼굴이 1932년 이상범이 그린 이순신 초상화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안중식이 그 당시까지 전해졌던 이순신의 초상화를 보고 그린 것일 수도 있다.
최우석은 이순신을 그리기 위해 한산도를 직접 방문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통영이나 한산도 등에 흩어져 있던 이순신의 초상화들을 보고 참조했을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그러나 최우석의 그림은 안중식, 이상범의 그림과는 다르고, <증정 중등조선역사> 속의 초상화와 비슷하다.
이상범은 1931년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이순신>을 연재할 때 삽화를 그렸고, 1932년에는 이순신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이순신 초상화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남겼다. 1931년 삽화의 경우는 이순신이 활동한 지역을 답사하거나 초상화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이광수에게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상상으로 그린 것이다.
동아일보 1931년 5월 22일자에 실린 이상범의 이순신 초상화.
그러나 1932년 현충사를 중건할 때 그린 초상화는 여수와 통영, 한산도 등지를 답사해 현지에 있던 초상화를 참고해 그린 것이다. “조선에 전하는 충무공의 영정은 여수와 한산도 두 곳에 있는 것뿐인데, 한산도 것은 모사진관의 제작으로서 참고할 거리도 못되고, 여수에 있는 것도 후인의 가필이 여러 번이어서 본래의 풍모를 볼 수 없을 뿐더러 문관복을 입은 것(동아일보·1932년 4월 5일)”이었다고 한다.
또한 5월 29일의 기사에 따르면 그는 통영에 출장해 충렬사와 한산도 제승당에 안치된 영정을 보고 이순신 초상화의 대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상범 자신의 다른 회고 기록에 따르면, “전국에 산재한 동아일보 지국에 연락, 대본(臺本)으로 삼을 만한 충무공의 영정을 물색했지만 불행히도 신통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한산도의 제승당에 있는 영정을 직접 답사, 소형(小型)의 수채화로 그려진 영정을 사본(寫本)해 오기도 하고 통영, 여수 등지를 다니면서 사당에 모신 충무공의 영정들을 몇 점 보고 오기도 했다”(동아일보·1965년 4월 8일)고 한다. 이상범의 1932년 초상화는 전래돼오던 다양한 초상화를 대본으로 새롭게 그린 것이다.
그 이후 김은호가 1952년, 장우성이 1953년, 정형모가 1977년에 각각 새롭게 그렸다. 김은호, 장우성, 정형모의 그림은 전래된 그림을 바탕으로 한 이상범과 달리 류성룡의 이순신 묘사에 근거해 상상해 그린 것이다.
이상범은 초상화를 그릴 때 1932년까지 전해진 한산도 제승당과 통영 충렬사, 여수 등지에 있었던 여러 형태의 초상화를 활용했다. 통영과 한산도의 초상화는 사진과 소형의 수채화였고, 여수의 초상화는 문관복을 입은 것이다.
동아대박물관 소장 이순신 초상화(견본채색, 22.0cm x 28.0cm).
그런데 이상범이 통영 혹은 한산도 제승당에서 보았다는, 사진이 아닌 소형의 수채화는 바로 통영 착량묘에 있던 초상화로 보인다. 착량묘의 이순신 초상화는 이순신 당대에 가장 가까운 초상화이고, 이순신의 모습에 가장 근접하다고 추정된다. 임진왜란 직후에 수군과 인근 백성들이 착량묘를 세우고 초상화를 그려 봉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범이 보았던 그 초상화는 그 후 시기와 원인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사라졌다. 이상범의 설명에 따라 추정해보면 착량묘의 초상화는 현재 동아대 박물관에 소장된 <충무공 이순신상>과 아주 비슷하다. 이상범은 소형이고 수채화 같은 초상화를 보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충무공 이순신상>도 가로 22㎝, 세로 28㎝로 작고, 사진이 아니라 그린 것이다. 또한 이상범은 착량묘의 초상화를 포함해 자신이 본 이순신의 초상화들에 대해 “불완전한 영정”(동아일보·1932년 4월 5일), “일반 현대인이 생각하는 명장의 타입을 가진 장군의 얼골로 보이지 않더군요. 만일 그 초상대로만 그린다면 지금 사람의 눈에야 명장군으로 보이겠어요?”(이상범·畵家가 美人을 말함· 이광수의 이순신전 삽화 제작경위, <삼천리>)라고 했다. 그 모습은 <충무공 이순신상>도 마찬가지다. 이상범이 말한 크기와 형태가 일치하는 초상화는 <충무공 이순신상>밖에 없다.
또한 전직 동아대 박물관 직원 이용현 선생의 전언에서도 착량묘의 초상화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동아대 박물관의 기록에는 <충무공 이순신상>을 동아대 정재환 초대 총장이 1958년 4월 16일에 구입했지만 판매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정 총장에게 구입 경위를 직접 들은 이용현 선생에 따르면 “(판매자가 찾아와서 그 초상화에 대해) 임진왜란 직후 이순신을 따라다녔던 어떤 승려가 그린 것이다. 그 이후 초상화가 낡아 몇 차례에 걸쳐 다시 그린 것이다. 이 초상화는 조선 말엽에 그려진 것이라고 해서 정 총장이 구입해 박물관에 소장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판매자가 전한 이순신 초상화를 그린 사람, 이순신을 따라 종군했던 승려의 이야기도 사실인 듯하다. <충무공 이순신상>은 이순신의 얼굴 모습을 남긴 고상안(1553~1623), 윤휴(1617∼1680), 홍우원(1605~1687)의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
고상안은 1594년 한산도에서 이순신을 직접 만난 뒤 이순신의 얼굴에 대해 “얼굴(容)이 풍만하지도 후덕(豊厚)하지도 못하고 관상(相)도 입술이 뒤집혀서 마음속으로 여기기를 ‘복장(福將)은 아니구나”라고 이순신의 모습을 표현했다. 윤휴는 “나의 선인(先人)께서 공의 딸을 외부(外婦)로 삼으셨으므로, 나는 그나마 공의 집사ㆍ하인 및 공을 섬긴 사람들을 만나서 공의 용모와 기호와 모습이 어떠한 사람이었나를 물어 알 수 있었다. 공은 큰 체구에 용맹이 뛰어나고 붉은 수염에 담기(膽氣)가 있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전형적인 무인의 모습이다. 홍우원은 “팔척 장신에 팔도 길어 힘도 세고 제비턱, 용의 수염, 범의 눈썹에 제후의 상이다”라고 했는데 무인의 모습이다.
이들이 말하는 이순신의 얼굴에 대한 평가를 종합해보면, 동아대 초상화와 흡사하다. 이순신의 막하에서 종군했다는 승려가 아니면 그렇게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흔히 알려진 이순신에 대한 묘사, 즉 이순신의 친구였던 류성룡이 <징비록>에 남긴 “사람됨은 말과 웃음이 적고 얼굴은 단아하여 마치 수양하며 근신하는 선비와 같았다”는 것은 혜문 스님이
실제 이순신은 고상안, 윤휴, 홍우원의 묘사와 같은 거친 무인의 모습이었고, 그 모습과 가장 유사한 것이 바로 동아대의 초상화인 것이다. 다만, 그 원본이 몇 차례에 걸쳐 모사되면서 전해졌기에 최초의 그림과 차이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영정 모사 방식이 원본을 그대로 베끼는 형태였다는 점에서 원형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또한 동아대 초상화와 이상범의 그림이 비슷하다는 점에서도 착량묘에 걸려 있던 초상화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상범이 초상화를 그릴 때 이순신의 여러 초상화를 베껴 자신이 그리는 이순신 초상화의 대본으로 활용했고, 특히 그는 “수염도 더 붙여놓고, 살도 찐 모습”으로 그렸다고 했다. 실제로 1932년의 초상화는 수염이 많고, 살집도 있다. 이상범이 활용한 전래의 초상화를 추정해보면 동아대 초상화가 이순신의 실제 모습에 근접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다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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