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박제된 채 박물관에 유물처럼 남아 있다. 4·19 혁명과 1987년 6월 항쟁은 근현대사 교과서에만 남았다. 각자의 생존에 골몰한 신자유주의 소용돌이 속에 혁명은 아득한 기억이 됐다. 저자인 육영수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혁명의 기억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고, 혁명이 배반당하지 않도록 역사의 기억투쟁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저자가 근현대사의 ‘원조 혁명’으로 프랑스 혁명을 재점검하는 이유다.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프랑스 혁명의 문화사> 육영수 지음·돌베개·1만7000원
프랑스 혁명은 작년 말 국내에 개봉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역사적 사건이다. 저자는 “혁명에 대한 사학사적 시시비비는 우리에게 과거는 숭배하거나 미워해야 할 무덤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지는 그 무엇’이라는 시사를 던져준다”며 “프랑스 혁명에 대한 추억의 껍데기는 가고 저항의 알맹이는 오롯이 나의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첫째는 사회변혁의 어려움과 우연성 혹은 역설적 모순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25년의 짧은 기간 동안 위로는 급격한 정치체제의 변화를 추동했고, 아래로는 일상문화의 혁명을 이끌어냈다.
또 하나의 지점은 프랑스 혁명이 역사적 인물의 공과와 영욕에 관한 신중한 재평가를 요청한다는 점이다. 혁명 무대에서 명멸해 간 수많은 영웅과 혹은 기회주의자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저자는 묻는다.
이 책은 기존의 지배적인 관점이었던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 수정주의적 관점으로 프랑스 혁명을 바라본다. 혁명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와는 달리 수정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본 프랑스 혁명에는 부정적인 유산들이 많이 있다.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바라본 프랑스 혁명에서는 가부장적인 그늘들이 발견된다. 서양의 다른 나라 여성들보다 더 선구적으로 여권 쟁취를 위해 싸웠던 프랑스 여성들에게 가장 낮게 참정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프랑스 혁명이 낳은 역설이다.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 또한 프랑스 혁명이 극복해내지 못한 한계다. 프랑스 혁명 기간에 발표·개정됐던 인권선언문들은 유색인종을 포함하지 않고 있었다.
혁명 기간 중 카리브해 프랑스 식민지에서 발생했던 아이티 혁명의 사례는 프랑스 혁명이 유색인종을 배반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