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권력으로 흥한 자, 외도로 망한다

미국 정가 끊이지 않는 ‘섹스 스캔들’…추문에 휩싸여 정치생명 끝장

권력욕과 성욕은 비례하는 것일까. 적어도 미국의 정치인들에만 대입해본다면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린다. 최근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힐 정도로 잘나가던 엘리엇 스피처(49) 미 뉴욕 주지사가 성매매 파문으로 사임했다. 스피처의 추락과 함께 미국 정치인들의 끊이지 않는 ‘섹스 스캔들’이 또다시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저승사자의 몰락
섹스 스캔들은 잘나가던 스피처를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뉴욕 주 검찰총장 출신으로 ‘월스트리트의 보안관’ ‘저승사자’로 불리던 스피처가 고급 매매춘 조직의 단골 고객으로 밝혀지며 결국 사임에 이른 것이다.

미 수사 당국의 사건 기록에 따르면 스피처는 실명 대신 ‘9번 고객(Client 9)’이라는 이름을 사용, 엠퍼러스 클럽의 알선책 루이스와 여섯 차례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 통화에서 매춘 여성의 교통비를 화대에 포함시킬지 등을 흥정했고 화대를 지불했는지, 매춘 여성을 어떻게 호텔방에 들어오게 할 것인지 논의했다. 만나게 될 여성의 생김새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달 13일 워싱턴에 있는 최고급 호텔에서 크리스틴이라는 콜걸과 밀회를 했다. 스피처는 크리스틴과 만나기 위해 화대로 4000달러 이상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횟수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스피처 주지사는 이전에도 매춘 조직을 지속적으로 이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스피처의 이중 생활은 지난해 국세청이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을 조사하는 통상적인 과정에서 꼬리가 잡혔다. 유령회사와 불투명한 돈거래를 한 사실을 포착한 국세청의 조사 후 돈뭉치가 엠퍼러스 클럽으로 흘러들어갔음이 드러난 것이다.

스피처의 스캔들이 더욱 충격을 준 것은 그가 ‘미스터 클린’으로 불릴 정도로 정의파였다는 점이다. 그는 주지사로 당선한 2006년까지 7년간 뉴욕 주의 검찰총장으로 일하며 금융범죄 퇴치로 명성을 날렸다. 또 당시 뉴욕의 고급 성매매 조직을 체포하는 등 성매매를 척결하는 데도 앞장섰다. 이 같은 활약으로 그는 미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개혁가’로 꼽히기도 했다.

지난 10일, 스캔들이 언론에 공개되자 스피처는 부인을 대동한 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등 신속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대중은 스피처의 위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그는 12일 자리에서 쫓겨났다.

스캔들 공화국
섹스 스캔들에 연루된 미 정치인은 과거에도 여럿 있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역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 르윈스키와 집무실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들통난 사건이다. 당시 클린턴은 이를 부인하다 거짓말임이 탄로나면서 탄핵 위기까지 몰렸다. 지난해 여름에는 일명 ‘DC 마담’ 스캔들이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었다.

여성 130여 명을 거느리고 매춘 행위를 알선한 혐의로 법정에 선 DC 마담, 즉 데보라 진 팰프리가 1만5000명에 이르는 고객 명단을 팔겠다고 나선 것이다. 팰프리는 13년간 워싱턴DC 일대에서 고객이 원하는 곳으로 여성들을 보내주는 에스코트 서비스 회사 ‘파멜라 앤드 어소시에이츠’를 운영하며 매춘을 알선한 혐의로 기소됐다.

중요한 것은 이 명단에 백악관과 국방부의 관리, 변호사, 학자, 군인 등 고위층 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던 것. 명단은 결국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부가 법정에서 공개되면서 랜들 토비아스 국무부 부장관이 사임했다.

비슷한 시기, 래리 크레이그 전 상원의원(아이다호)은 미니애폴리스의 공항 화장실에서 옆 자리 남성에게 구애하다 적발됐다. 하필 그 남성이 사복 경찰이었던 것. 그는 “자신은 게이가 아니며 잘못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공화당과 백악관의 압력에 결국 상원의원직에서 물러났다. 2006년에는 마크 폴리 하원의원(플로리다)이 의회 수습생인 미성년자에게 성적인 내용이 담긴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보내 파문을 일으켰다.

성추문은 전도유망한 대선주자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1988년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게리 하트 상원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요트에서 도나 라이스라는 모델 출신 비서를 무릎에 앉히고 시시덕거리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결국 정계를 떠나야 했다.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흑인 가정부와 혼외관계를 맺어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사생아를 낳은 바 있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인 존 F. 케네디 역시 마릴린 먼로와 친밀한 관계였다.

정치인과 섹스 스캔들
가족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정치인의 섹스 스캔들은 어떤 말로도 용서될 수 없는 죄악이다. 그 때문에 섹스 스캔들에 연루된 정치인은 대부분 직위에서 처참히 쫓겨나고 추락하는 길을 걸었다.

특히 공화당은 가족의 가치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이상이자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 이유로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당은 클린턴의 성추문 이후 가정을 거론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터부시했다. 하지만 최근 유력 대선주자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일리노이)은 부인 미셸을 내세워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미셸은 오바마의 라이벌인 힐러리를 노린 듯 “가정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백악관도 지킬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스 스캔들은 미 정치사에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정치인들이 섹스 스캔들과 밀접한 원인에 대해서는 생물학적 분석이 제기된다. 남성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강력한 욕심 가운데 권력욕을 차지하고 나면 성적 욕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 마치 원숭이 집단 내 수컷이 우두머리의 위치에 오르면 곧바로 성적 권력 획득이라는 욕망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만심과 오만이 정치인들의 섹스 스캔들을 부른다는 분석도 있다. 미 웨슬리대학의 로버트 럽 교수는 “화려하고 출중한 경력을 가진 정치인일수록 자신의 이중 생활을 감출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국제부┃박지희 기자 viole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