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엽의 눈]박근혜의 미래정치

누구라도 어두운 과거보다는 밝은 미래에 솔깃해 한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뗄 수 없는 인과적 연관을 갖는다는 점에서 과거는 덮고 미래만을 그릴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 ‘과거’가 당대의 사람들이 집합적으로 경험한 역사일 경우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일 수 있다. 또 언제나 역사는 현재적으로 해석되게 마련이며, 바로 그렇게 현재화된 역사의 성찰 속에서 미래가 잉태된다는 사실이야말로 더욱 더 과거를 현재나 미래와 분리하기 어렵게 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과 미래관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헌법질서를 파괴한 명백한 군사쿠데타인 5·16을 개인사나 가족사에 치우친 주관적 입장에서 해석하는가 하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어두운 역사는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이를 들추는 것은 미래지향적 정치발전을 해치는 구태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박 후보는 후보 당선 후 5·16이나 유신문제에 대해 “과거로 가려면 한이 없다. 이제 미래로 가자”고 했다. 최근에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에 대해서도 “우리 정치권이 미래로 갔으면 좋겠다”면서 다시 ‘미래’를 강조했다. 후보 수락연설에서 강조된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의 논리에는 ‘과거’를 불러들이는 것은 ‘국민분열’과 ‘국민불행’을 가져온다는 편향이 짙게 배어 있다.

최근 장준하 선생 묘소 이장 과정에서 장 선생의 타살 의혹이 다시 제기되었고, 유족들은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유족 가운데 장준하 선생의 장남이 바로 장호권 선생이다. 장호권 선생과는 두어번 사석에서 함께 한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 이래 해외를 떠돌며 통한의 세월을 보낸 후 국내에 돌아온 지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점이었던 듯싶다. 장대한 기골에 형형한 눈빛이 사진과 글로만 보았던 장준하 선생을 떠올리게 했지만, 불행한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고난의 가족사를 말할 때는 얼핏 얼핏 그의 얼굴에 그늘이 비치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언론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 김희숙 여사는 서울 일원동의 낡은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15년째 살고 있다고 한다. 남편의 의문사, 감시와 통제, 가난과 씨름하는 것으로 모자라 뜻을 펴지 못하고 해외를 전전하는 자식들의 한까지 가슴으로 쓸어담아야 했던 모진 세월을 견딘 분이다. 장준하 선생의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덮고 싶은 과거일 수 있지만 이들 유족에게는 해체된 삶으로 지속되는 여전한 현재이다.

장준하 선생이 그 가족에게 현재이듯 박정희의 역사 또한 여전히 살아있는 현재일 수 있다. ‘국민’이라는 베일을 걷으면 역사적 경험에 뿌리를 둔 서로 다른 가슴을 가진 시민이라는 얼굴이 드러난다. 박 정권의 어두운 역사가 박근혜 후보에게는 덮고 싶은 과거일지 모르지만, 오늘을 사는 ‘역사적’ 시민에게는 상처로 남은 현재인 것이다. 국민통합을 외치려면 먼저 역사 속에서 상처 났던 가슴을 서로가 쓸어주는 진정어린 ‘역사적 화해’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채 무조건 어두운 과거를 덮자는 것은 뒤틀린 현실에 눈 감는 것이다. 과거를 묻어버린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의 미래는 국민기만의 구호일 수도 있다. 허공에 짓는 상상의 궁전인 것이다.

조대엽의 눈

역사를 현실로 불러 공공의 이슈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현재를 사는 이들의 몫이었다. 아버지 시절의 어두운 과거를 현실로 부른 것도 사실은 박근혜 후보 자신이다. 박 후보 본인이 공적 위치의 정점인 대통령직에 도전했기 때문에 덮고 싶은 역사는 다시 현재가 된 것이다. 아버지인 박정희 시대의 어두운 과거를 정말로 들추기 싫다면 박 후보는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저 흘러간 대중가요 속 ‘산장의 여인’으로 사는 게 이치에 맞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