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해부]국정원 개혁 ‘나몰라 패밀리’

여권 주춤하는 사이 퇴행적 ‘몸 불리기’… 핵심 쟁점 ‘수사권 폐지’ 물 건너가나

국정원은 올해 초 전 직원의 혁신 마인드를 제고하기 위해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위탁교육을 실시했다.

국가정보원이 최근 기존 조직을 개편했다. ‘분리·확대’가 핵심인데 이에 대해 참여정부가 내세운 조직 혁신에 역행하는 개편이란 지적이 나왔다.

국정원은 우선 국정원장 직속의 감찰실과 감사실을 감사국으로 통합했다. 국정원은 개편 이전 외부에서 ‘혁신 전문가’를 초빙해 ‘조직 진단’을 실시했다. 이 혁신 전문가는 감찰·감사실의 업무가 중복되는 게 많으니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업무 중복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그 결과 하나로 합쳐졌다.
둘을 하나로 줄인 것에 그쳤으면 별말 없었을 텐데 국정원은 줄이면서 늘리는 개편도 실시했다.

끼워넣기 승진, 간부 자리 늘리기

개편 이전 국정원은 1차장(해외담당), 2차장(국내), 3차장(북한) 밑에 각각 3국 체제를 두었다. 이중 ‘6국’으로 불리던 ‘대테러보안국’을 ‘대테러국’과 ‘보안국’으로 분리했다. 9국에서 10국 체제로 늘린 것이다. 감사실·감찰실을 감사국으로 통합하면서 국장 자리가 하나 줄자 대테러보안국을 분리, ‘국’을 하나 더 만든 셈이다.

‘국장’ 자리 수로 보면 ‘제로섬’이지만 개편의 이면을 들여보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선 이번 국정원 개편은 특히 참여 정부가 공언해온 국정원 개혁이 물 건너가는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힘과 의지를 잃은 여권, 국정원 내부의 거부감 등이 맞물려 국회 정보위에서 진행중이던 개혁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더 이상 동력을 찾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 와중에 국정원이 몸 불리기를 시도한 것이다. ‘퇴행적’ 개편이란 소리가 나온다.

국정원은 이런 지적에 대해 “대테러보안국 분리 등 조직 개편은 조직의 확대가 아니라 현 조직 규모 내에서 신 안보 위협 증가와 정보 환경 변화에 맞게 필요한 분야는 보강하고, 유사·중복 분야는 통합하는 등 기능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대테러보안국’을 대테러국과 보안국으로 분리했는데, 현재 방첩(防諜)과 테러방지라는 대테러보안국의 고유업무에 대한 수요가 별로 없는 상황에 조직을 분리한 것은 비대화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관련 법률인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권한 강화 논란 끝에 국회 정보위에 계류된 상태다. 때문에 ‘대테러보안국’의 분리는 여론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여권 관계자는 “감사국 통합으로 국장 자리가 줄어들게 되니까, 6국을 분리해 자리를 늘린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6월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 ‘북한 미사일 발사’ 와 관련한 보고를 하기 앞서 간부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국정원은 또 최근 1급 승진 인사에 계급 정년이 임박한 2급 간부 3~4명을 끼워넣은 뒤 곧바로 퇴직 대기발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옷 벗을 사람들을 1급으로 승진시킨 것은 앞으로 받게 될 연금을 감안한 것으로 세금낭비”라면서 “국정원 개혁이 철저하게 ‘조직 이기주의’ 정신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공보부대표는 “국정원 수사권 폐지를 주장하던 여당 정보위원들이 모두 교체된 상황에 개혁이 실현될지 우려스럽다. 여당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개혁 법안을 낸 노회찬 의원은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할 상황에 간부 자리나 늘리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국정원의 퇴행을 여권이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권은 당초 인권침해·권력남용·위헌소지가 있는 수사권을 폐지하고 정치활동 관여를 위한 정보수집을 금지하도록 하는 등 이른바 국정원 4대 개혁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개혁방안은 본격적인 논의단계에는 이르지도 못하고 있다.

조직 축소 불만 ‘X파일’로 폭발

열린우리당이 상임위를 배정하면서 국정원 개혁논의를 주도한 임종인·최재천 의원을 국회 정보위에서 뺀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과정에 우리당 지도부는 정보위원의 4년 임기보장이라는 규정을 무시했다. 정보위 내 ‘국정원 개혁소위원회’ 위원장인 임종인 의원은 개혁법안을 주도적으로 마련하는 등 논의를 끌어왔다.

여권은 임기말 국정원에 의한 문서·기밀유출 등을 우려, 가급적 국정원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국정원은) 제도적으로 크게 개혁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책위 관계자는 “국정원의 조직 확대 개편이 정부 동의없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국가정보원 전경.

이번 국정원의 몸 불리기를 다른 측면에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우선 ‘직원 다독이기’용이라는 것이다.

국정원은 참여정부에서 세 차례 조직을 개편했다. 2003년 5월에는 국내 정보 분야를 축소·재편했다. 2004년 4월에는 지원분야 인력을 줄이고, 현업부서의 인력을 늘렸다. 2004년 5월에는 고위직 인원을 줄이고 실무인력으로 바꿨다.

국민의 정부 때는 기초 시군구 ‘조정관’, 각 시도 ‘지부장·부지부장’이 없어졌다. 두 정권 아래서 국정원은 계속 몸을 줄여왔다. 문제는 스스로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여권의 다른 관계자는 “‘정치’와 ‘정권’이 개혁 아래 조직을 자꾸 축소시키자 내부에 불만이 커졌고 특히 ‘잘린 직원’들의 원성이 컸다”며 “그 불만과 원성이 메가톤급으로 터진 게 X파일 사건의 공운영이라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전 국가안전기획부 미림팀장 공운영씨는 2005년 도청테이프 파문 때 자술서에서 “언젠가는 또다시 도태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중요 내용은 은밀히 보관하기로 작심한 끝에 일부 내용을 밀반출해 임의 보관했다”고 말한 바 있다.
도태에 관한 두려움은 어느 기관 조직원도 마찬가지지만 ‘국정원’ 조직원에 비할 바 아니라고 한다. 특히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한데, 국정원 산하 기관이 없다는 점이 두려움을 더한다. 국가 기관 중 통일부도 산하 기관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몇몇 연구소라도 있어 국정원보다는 나은 편이다.

게다가 국정원 직원의 ‘몸값’도 예전 같지 않아, 특별히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 없다면 기업으로 가기도 힘든 형편이다. 이래저래 ‘퇴로’가 막힌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번 조직 개편과 인사에서 2급 간부 3~4명을 1급으로 승진시킨 뒤 바로 대기 발령한 것은 오갈 데 없는 직원에 대한 조직의 배려 차원”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개혁을 부르짖던 참여정부·여권이 이번 국정원 조직 개편·인사를 ‘방조(?)’한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퇴직 직원들의 ‘정보 유출’ 우려도 컸다. 공운영씨 사건뿐만 아니다. 국민의 정부 이후 ‘팽’ 당한 직원들의 정보 유출은 종종 있었다.

이 관계자는 “이전보다 국정원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아직은 국내 기관 중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영양가 있는 정보들이 모이는 곳”이라며 “노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은 고마 됐다’고 한 것은 정권 후반기의 각종 정보 유출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주최로 국정원 개혁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대통령 한마디에 여권 ‘올스톱’

참여정부가 이전 정권보다 권력 비리가 줄었다고 하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고, 국정원이 여전히 ‘털털 털’ 능력과 함께 털어 모아둔 ‘먼지’가 꽤 있을 거라는 설명이다. 이번 조직 개편·인사도 이 맥락에서 들여다보는 게 더 정확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번 국정원 조직 개편·인사를 신호탄으로 국정원 개혁은 완전히 물 건너 간 것일까?
먼저 국정원 개혁안을 살펴보자. 우리당 국정원 개혁소위가 올 상반기 낸 개혁안을 들여다보면 가장 큰 쟁점이 ‘수사권 폐지’였다. 국내와 해외 정보 업무의 경우, 둘을 분리해서 국내는 총리 직속, 해외는 대통령 직속으로 두자는 안을 내놓았다. 국내 보안 정보 수집과 배포와 관련해 여당은 ‘유지하되 국내 정치 정보 수집 금지를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 보안 업무 기획·조정과 관련해서는 ‘권한을 인정하되 타부서 정책 관여를 배제하는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대체로 국내 분야는 축소하고 해외 분야를 기능별로 재편, 강화하자는 취지의 안이다.

민노당은 아예 국정원의 국내 기능을 없애는 내용의 ‘해외정보처’ 개편안을 내놓았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현행을 유지하면서도 일부 조직을 개편하는 식의 안을 냈다.

시민·사회단체에 떼밀려 여당 등 정치권이 논의에 들어갔지만, 노 대통령의 ‘크게 개혁하지 않아도 된다’는 발언은 특히 여권에 알리는 ‘스톱’ 신호와도 같았다. 게다가 최재천·임종인 의원 등 국정원 개혁에 적극적이던 여당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최근 국회 원구성 과정에 다른 상임위로 자리를 옮겼다. 임의원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정보위 산하 국정원 개혁소위원장 자격을 잃지 않겠느냐”면서 “8월까지 개혁법안을 만들어놓기로 했는데…”라고 말했다. 그는 “정보위원을 떠나서도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 주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작년 연말 이후 당 내부에서 국정원 개혁논의가 답보상태에 있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개혁법안이 제출된 만큼 우리당도 당론을 모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 개혁에 아쉬움을 표하는 여당 의원들은 임·최 의원을 비롯해 몇 되지 않는다. 여당 의원 대부분은 노 대통령의 ‘시그널’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여권에서는 이번 정권이 아니면 국정원 개혁을 못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그만큼의 개혁 ‘당위’와 ‘의지’도 읽을 수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우선 “노 대통령은 국정원 문화를 바꿨다. 탈권위 탈정치 했지 않으냐.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대통령의 몫은 했다”면서 “나머지 제도적 개혁은 당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정원은 1962년 만들어져 40년 넘은 체제다.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이 정권 아래 못하면 못할 문제라 본다. 수사권 폐지 등 제도적 개혁을 꼭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부/김종목 기자 jaynew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