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대한민국 부자, 권력까지 접수하다

‘강부자 내각’ 평균재산 39억… 참여정부는 10억
이명박 정부 들어 “부와 권력 경계 허물어졌다”

부(富)가 권력을 넘보기 시작했다. 서민층 기반을 표방한 민주화세력의 집권 10년 동안 부자는 권력의 핵심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 부와 권력은 양립할 수 없었으며, 어느 하나만 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관계였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첫 내각에 ‘부자내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부자도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동안 부는 조금씩 우리 사회에서 명예를 얻기 시작했다. 부자가 당당히 대우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더니 이제는 부와 권력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경북대 행정학과 김윤상 교수(토지정의시민연대 지도위원)는 “부와 권력의 경계가 허물어지려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우리나라 부자 평균재산은 27억
첫 내각 후보자(사퇴한 3명의 후보자 포함)의 평균 재산은 39억1377만 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353억8030만 원을 포함하면 평균은 훨씬 더 늘어난다. 여기에 한승수 총리의 재산을 포함하면 평균 56억 원이다. 한길리서치연구소가 2007년 조사한 결과(지역·성·연령별 할당 무작위 추출법으로 904명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25%P)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부자는 27억6000만 원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각 후보자의 평균 재산만 해도 이미 국민들이 심정적으로 인식하는 부자 수준 이상인 셈이다. 27억6000만 원보다 많은 재산을 가진 내각 후보자는 15명 중 9명이다. 절반이 넘는다. 통계청이 2006년 전국 9300개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 가구당 평균 2억8112만 원의 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에서 첫 내각 후보자의 평균 재산은 2007년 3월 30일 고위공직자 재산 신고 당시 참여정부의 내각 평균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당시 18개 부처 장관의 평균 재산은 10억3249만 원이다. 대통령과 총리의 재산까지 포함하면 9억9632만 원이다. 이명박 정부의 내각 후보자 평균 재산의 3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국민들이 부자로 생각하는 27억6000만 원 기준을 도입하면 18명 중 겨우 1명이 부자에 해당한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부의 권력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표현을 붙여도 크게 과장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행정부의 내각 인선이 끝나고 나면 4월 총선을 통해 입법부의 얼굴이 바뀐다. 지난해 12월 대선 결과를 보더라도 중산층 이상을 확고한 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 확보가 예상된다. 이 대통령이 표방한 ‘경제 우선’에 발맞춰 성공한 인물들이 대거 배지를 달 가능성이 높다. 부를 가진 사람들이 입법부에 많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7000명의 고위직 인사를 임명할 수 있다. 여기에는 대법관·헌법재판관·중앙선거관리위원 등 헌법기관 고위직과 검찰 간부 등도 포함된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능력 우선’이라는 미명하에 부자들이 대거 권력의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자들이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고위 공직자 자리의 과반을 차지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에도 부는 어쩌면 이미 권력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가장 최근의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라고 할 수 있는 지난해 3월 30일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를 살펴보더라도 부자의 심정적 기준인 27억 원대를 넘어서는 고위 공직자가 많다. 국회의원의 재산 신고에서 상위 20위는 45억 원을 넘어선다. 국회의원의 1인당 평균 재산은 51억2100만 원이다. 정몽준 의원을 제외하면 평균 17억 원에 이른다.

입법·사법·행정부 공개 대상자 1052명 중 49.8%인 524명은 서울 강남·서초·송파·양천구 목동 등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에 본인 또는 배우자 등의 명의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 법원 고위 공직자 중에서도 상위 10위의 재산은 33억 원을 넘어섰으며, 헌법재판관(당시 재산신고 기간 기준)은 27억 원 이상이 전체 9명 중 4명이었다. 검찰 고위 간부에서는 상위 5위까지가 27억 원대 이상 부자에 속했다. 고위 공직자의 재산 신고액 중 부동산은 공시지가 기준이다. 실거래가로 계산하면 실제 재산은 이 신고액보다 50% 더 많다고 추정할 수 있다.

“돈, 명예, 권력 중 돈을 가장 중요시”
부자학 강의로 유명한 서울여대 경영학과 한동철 교수(부자학연구학회 회장)가 설문조사한 것에 따르면, 25억 원 이상을 부자로 보면 5%가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남상호 연구위원의 가계자산 분석 논문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상위 1%의 계층이 순자산의 16.7%를 갖고 있으며, 상위 5%는 39.8%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5%의 부자가 권력을 잡은 후 95%의 나머지 사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시대는 부와 권력의 상관관계를 문제삼을 수 있다.

토지정의 시민연대 회원들이 2월 26일 부동산투기의혹 장관 내정자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한동철 교수는 “부를 쟁취하려는 사람들은 권력 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 낫고, 명예를 찾는 사람은 부를 찾지 않는 것이 좋다”면서 “부자들이 권력을 갖는 것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성공한 사람이 대부분 부자인데 이들이 한 분야에서 성공하면 다른 분야에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한길리서치연구소 홍형식 소장은 “우리 사회에서는 돈과 명예, 권력 중 돈이 가장 중요시되고 있다”면서 “돈을 벌면 명예과 권력이 따라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부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려면 당연히 부정적 시각이 형성되게 마련”이라면서 “그것은 부자들이 정당한 부를 축적하지 못함으로써 면죄부를 받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참여연대 행정감시팀 장정욱 간사는 “한 명이 정당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돈과 명예를 가졌다고 해서 권력을 가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서 “하지만 부자들로 내각이 채워지는 것은 이해충돌 가능성 때문에 정책이 왜곡되므로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고 지적했다. 장 간사는 “정부를 대표하는 국무위원들을 특정한 지역·소득계층·직업으로 채우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부자들의 권력 소유를 문제삼는 것에 대해 ‘배아픔병’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두 가지 다 소유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경북대 김윤상 교수는 “부당한 재산 축적을 비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부를 놓고 배가 아픈 증상은 배 아픈 사람이 고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부자들의 권력 진입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윤상 교수는 “재산 때문에 과거 1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인사들이 대거 정계에 진출하게 된 것”이라면서 “중산층 이상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한나라당이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을 고르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부자학 전문가인 한 교수는 “이명박 정부 자체가 성공한 사람을 내각에 세웠다”며 “성공한 사람이 대부분 부자”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부자가 내각에 임명되는 것을 문제삼기는 힘들다”며 “다만 돈을 벌었다는 과정이 투명하냐는 점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수 진영에서는 부 자체를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보수 이론가인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부가 많다는 것은 오랫동안 성실하고 근면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면서 “부를 부정시하면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부가 존경받는 사회로 가야 한다는 것이 김 원장의 주장이다. 다만 부가 권력에 진입하려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내각에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문제삼는 대신, 부의 형성 과정을 따질 때 가혹하리만큼 공직자 기준을 들이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한 부의 취득 여부가 문제”
토지정의시민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김윤상 교수의 시각 역시 보수 진영의 부에 대한 시각과 비슷하다. 정당한 부의 취득 여부가 고위 공직자로 갈 수 있는지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당한 부의 취득 여부에 대해서 김 교수의 시각은 단호하다. 김 교수는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대부분 부동산이며 아무리 변명하더라도 이는 투자가 아닌 투기”라고 단정지었다.

부동산 투기는 법을 위반한 위법 투기와 법을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투기로 나눌 수 있다. 김광동 원장은 “고위 공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불법은 물론 안 되며, 편법적인 투기 역시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윤상 교수는 “부동산 부자들이 모두 다 위법은 아니나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법뿐 아니라 도덕에서도 떳떳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지는 생산 대상이 아니며, 노력하지 않고 소득을 얻게 하는 것이니만큼 법 문제와 도덕적 문제를 따질 것이 아니라, 법과 도덕이 일치하도록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부자내각 파문’은 부의 권력 진출뿐 아니라 부자들의 자기 인식 자체에도 큰 결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줬다. 홍형식 소장은 “부의 축적 과정도 문제지만 재산이 많고 적음을 떠나 해명 과정에서 ‘돈이 많은 것이 뭐 어때서’라는 표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동철 교수 역시 “이번 부자내각 파문에서 (해명의) 말을 너무 심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부에 대한 비판은 부동산뿐 아니라 병역, 자녀들의 해외 유학·국적, 논문 등 네 가지 조건에서도 드러난다. 이번 내각 인사에서도 네 가지 조건의 문제점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홍형식 소장은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 의식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서 “부를 사회적인 환원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녀의 유학 같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를 가진 사람들의 권력 진출에 대해 대안으로 부동산백지신탁제도가 언급되고 있다. 이는 고위 공직자가 임명될 때 토지를 신탁한 후 퇴직 후 매입 당시 지가와 그 이자만 환불하는 제도다. 김 교수는 “고위 공직자가 토지를 신탁한다면 도덕적 부채를 탕감해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철 교수는 “재산이 많다면 1년치 월급을 미리 기부한다든지,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서양처럼 부의 축적 과정도 깨끗할 뿐만 아니라 부가 존경받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