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호남향우회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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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뜬금없네요.” 지난 8월 말 한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을 본 누리꾼 품평이다. 아슬아슬하게 노출하고 있는 한 여인의 사진이다. 뜬금없다고 하는 것은 그녀가 입고 있는 원피스다. 오른쪽 하단, 글씨도 선명하게 한글이 적혀 있다. 신흥호남향우회. 그러니까 저 여성이 ‘신흥호남향우회’의 회원이라는 말?

이 게시물엔 그녀가 누구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 여성이다. 이름은 아가리에 히카리(あがりえひかり). 일본의 그라비아 모델, 즉 수영복이나 세미누드에 가까운 사진모델이다. 1989년생으로 일본 오이타현 출신이다. 신흥호남향우회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 거의 없다.

일본의 그라비아 모델 아가리에 히카리가 입은 원피스 사진. ‘신흥호남향우회’라는 한글 글씨가 뚜렷 하게 보인다. | slrclub

일본의 그라비아 모델 아가리에 히카리가 입은 원피스 사진. ‘신흥호남향우회’라는 한글 글씨가 뚜렷 하게 보인다. | slrclub

그런데 누리꾼 반응을 보면 ‘신흥호남향우회’는 유명한 단체다. 이미 2006년에 인터넷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그때의 주인공은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였다. 당시 보도를 보면 선글라스를 끼고 연두색과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옷 허리춤에 ‘신흥호남향우회’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당시 이 사진을 보도한 기사의 제목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신흥호남향우회 회원?”이었다. 사진과 관련해 누리꾼들로부터 나온 정설은 이것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입은 옷은 세계적 명품브랜드 ‘돌체&가바나’의 당시 자회사였던 D&G의 옷이다. 당시 D&G의 디자이너가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을 방문했다가 저 색깔의 천 조각을 주웠는데 그 천 조각에 적힌 글씨가 ‘신흥호남향우회’라는 것이다. 천 조각의 색배열, 그리고 뜻은 모르지만 한글의 이미지 조합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돌아가 만들어 내놓은 옷이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입은 옷이라는 것. 정말일까. 그리고 신흥호남향우회의 실체는?

신흥동을 검색해보면 약 10개의 동 이름이 뜬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압축해보면 인천 중구에 있는 신흥동과 부천으로 압축된다. 먼저 인천 신흥동. 주민센터에 문의해봤다. “글쎄요. 이곳은 워낙 토박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기자의 문의를 받은 동사무소 관계자가 수소문해봤지만, 신흥동에 호남향우회는 공식적으로는 없다고 했다. 가장 유력한 것은 부천의 신흥호남향우회다.

검색해보면 다음 카페에 올라온 ‘신흥호남향우회’의 각종 행사사진이 나온다. 이곳의 전 회장을 맡았던 김광종씨와 연락이 닿았다. 그의 첫 마디. “브리트니 스피어스요? 그 사람이 누군데요.” 김 전회장은 “단체복을 만든 적도 없고, 2002년 월드컵 때 향우회 차원에서 거리응원을 나간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돌체&가바나’ 브랜드 매니징을 맡고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널 김영 과장은 “돌체&가바나의 디자이너들은 2011년 한국에 처음 방문했으며, 2002년 월드컵 때는 방한하지 않았다”며 “사진 속 브리티니 스피어스가 입은 옷도 돌체&가바나나 D&G의 옷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정설처럼 알려진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흥호남향우회’는 어떻게 글로벌 패션업계에 퍼져나가게 되었을까. 여전히 해답은 미궁 속에 머물러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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