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팟캐스트로 내 목소리 내기

자신만의 개인방송 제작 나선 사람들

“나꼼수 이후로 개인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들어와요.”
팟캐스트 방송(아이폰·아이팟을 통해 듣는 인터넷 방송) ‘토크온섹스’의 진행자 백상권 미디어웹 대표(40)의 말이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열풍과 함께 청취자에서 스스로 제작자로 나서는 시민들이 나타나고 있다.

팟캐스트는 2009년 11월 아이폰이 국내에 도입된 이후 아이폰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당시 국내 언론은 “다양한 형태의 팟캐스트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1인 방송국’ 시대를 예측한 것이다.

소리 파일 하나만으로 방송 가능

한국 팟캐스트 코미디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듣기 싫으면 관두시고’의 화면이다. 제작자 페르난도 김씨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했다. /페르난도 김 제공

2년이 지난 지금, 예상과 달리 팟캐스트는 주요 방송사, 언론사의 라디오 서비스가 확장된 공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꼼수다’를 제외한 인기 팟캐스트 방송의 대부분은 SBS, MBC, KBS, CBS, 오마이뉴스, 한겨레, 한국일보 등 주요 방송사와 언론사에서 만든 것이다. 새롭게 뜨는 방송의 상당수도 정치인들의 개인방송(‘유시민의 따뜻한 라디오’, ‘이해찬의 정석정치’ 등)이거나 교회의 설교방송이다.

반면 백 대표처럼 초창기부터 ‘진짜 개인방송’을 시도한 사람들도 있었다. 백 대표의 ‘토크온섹스’는 아이폰이 수입되기 이전인 2009년 5월에 시작됐다. 지금까지 91회가 방송된 ‘토크온섹스’는 많게는 회당 수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기도 한 인기 방송이다. 백 대표는 이 방송을 통해 성 경험 공유, 성교육에 관한 토론, 성인용품 활용법 등 기성 방송에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매회 풀어갔다.

기성 방송에선 있었을 법한 검열이 없는 것도 팟캐스트의 장점으로 꼽힌다. 백 대표는 방송에서 성 담론을 적나라하게 펴나가는 것에 대해 애플 측의 제재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에서 말하는 수위가 대단히 센 것은 맞다. 하지만 음란하거나 저질스러운 내용은 다루지 않고, 애플 측에서도 한 번도 문제제기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백 대표가 꼽은 팟캐스트의 또 하나의 장점은 ‘편리함’이다. 그는 “저도 직업이 있는만큼 방송에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이긴 어렵다. 하지만 팟캐스트에선 소리 파일 하나만 있으면 쉽게 방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팟캐스트 이전에도 인라이브, 아프리카TV 등 인터넷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을 만드는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휴대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즐기는 데는 제약이 많았다. 아프리카TV의 경우 동영상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팟캐스트에 비해 방송 준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한다는 점도 있다. 아프리카TV는 2008년 촛불집회 정국에서 한때 개인 방송국의 메카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별풍녀’(환급 가능한 별풍선을 벌기 위해 방송을 하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호칭)들의 난립으로 인한 선정성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팟캐스트의 간편함은 출퇴근 시간을 이용한 개인방송까지 가능케 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는 페르난도 김씨(41)는 현재 한국팟캐스트 코미디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1인방송 ‘듣기 싫으면 관두시고’를 진행하고 있다. 주 1회 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나면 그때그때 올리는 자유로운 방송이다. 기존 방송사, 언론사와 무관한 개인 방송이 부문 1위를 차지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9월 2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김씨는 “하루 6000명 정도 다운로드를 받는다”고 말했다. 팟캐스트 게시판에서 한 청취자는 “아는 형이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시는 것 같아 좋다”고 적기도 했다. 10~20분가량 진행되는 김씨의 방송은 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경험, 한글날과 성경에 대한 상식, 때로는 개인적인 잡담으로 채워져 있다. 김씨는 “직장 오가는 시간에 아이폰 녹음기능으로 녹음하면 되니 일에 부담도 적고 좋다”고 말했다.

‘김어준 총수 헌정방송’도 등장

위 _ ‘자유로운 성담론 채널’을 지향하는 ‘토크온섹스’ 채널 화면이 아이튠즈에 올라 있다. |아이튠즈 화면캡처 아래 _ 20~30대의 시각으로 사회와 삶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야채라디오’의 제작진, 출연진의 모습이다. |야채인간 홈페이지

김씨는 ‘나는 꼼수다’가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책도 쓰고 싶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직장일이 바빠 실행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꼼수’를 듣고 나서 자극이 되어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꼼수’의 팬인 만큼 10·26 서울시장 선거가 임박했을 때에는 정치와 관련된 소재를 방송하기도 했다.

앞으로 김씨는 직장에서의 경험 등을 토대로 교육에 관한 방송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외국에선 아이들이 8~ 9세부터 성인처럼 대해주고, 만 19세가 되면 완전한 성인이 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한국에선 계속 애 취급을 하다가 갑자기 20살이 되면 성인이 되라고 한다”며 “30~40대에 비해 20대의 능동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원인에는 청소년을 존중하지 않는 한국의 교육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어준 총수 헌정방송’도 등장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김민하(28), 김성국(31)씨가 진행하는 주 1회 방송 ‘야채라디오’다. 이들은 진지하기보다 유쾌한 분위기에서 20~30대의 시각으로 사회 현안 등을 나눈다. 사실 이들은 ‘나꼼수’보다 석 달 빠른 지난 1월 30일에 첫 방송을 했다. ‘김어준 총수 헌정방송’이란 표현은 방송 도중 ‘나꼼수’를 패러디하면서 나온 것이다.

방송의 주인공 양김씨는 인디밴드 ‘야채인간’의 멤버들이다. 20대 정치평론가이기도 한 김민하씨는 “처음에는 밴드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술자리에서 멤버들이 다 말을 잘해 이걸 그대로 방송하면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말했다.

방송은 김민하씨가 정치현안을 얘기하고, 김성국씨가 리조트 전화사기 사건 등 개인의 굴욕사를 읊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지인들이 손님으로 등장해 디씨인사이드에서 밤을 샜던 추억, 애인에게 실연당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본격 루저 방송’이라 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박정근씨가 출연해 경찰수사 뒷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김민하씨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거대한 신세계가 열렸다는 식의 과도한 해석은 사양했다. 그는 “기존 인터넷 방송에 비해 팟캐스트의 진입장벽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팟캐스트를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음성편집작업을 할 줄도 알아야 하고, 서버 유지비용도 어느 정도 감당해야 한다. 무료 업로드 서비스를 이용하면 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많은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