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국제사회도 4대강사업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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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환경계획 한국녹색성장 보고서 정부 쪽으로 기운 까닭은

지난 8월 2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UNEP 한국 녹색성장위원회 기획단장’(맨 오른쪽)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8월 2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UNEP 한국 녹색성장위원회 기획단장’(맨 오른쪽)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엔기구에 있는 유엔환경계획(UNEP)도 4대강 사업을 기후변화에 대비하고 녹색성장 비전을 만족시키는 세계 최고의 모범사례로 발표하지 않았느냐.”

12월 2일 4대강 살리기 낙동강 지역 착공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다. 지난 11월 22일 광주에서도 이 대통령은 또 ‘UNEP’을 언급하면서 “4대강 살리기가 성공한다면 세계는 대한민국을 녹색성장의 선도국가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공신력 있는 국제환경기구도 인정한 4대강 사업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내 환경단체들의 비판과 우려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실제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어떨까. 지난 8월 2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한국을 방문한 아킴 슈타이너 UNEP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한국의 녹색성장이 다른 나라에 비해 체계적이고 잘 기획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이 세계 최초의 ‘녹색호랑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4대강 사업에 대해 묻자 그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적인 평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 사업은 ‘경제진흥 패키지’로 시행됐을 때 경제 발전의 촉매제 역할도 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원론적인 답변이지만 ‘4대강 사업’을 ‘친환경 녹색사업’의 범주로 생각한다는 견해다. 사실 이날 기자회견은 UNEP가 조사한 ‘한국의 녹색성장정책 중간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담수 자원의 부족은 한국의 큰 문제로 되어 왔으며,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서 앞으로 홍수와 가뭄의 빈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경우 (중략) 수자원 확보, 홍수 방지, 수질 향상, 수변지역 생태계 복원 등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안이다.”

시민단체 면담 “면피용이었다”

UNEP가 낸 한국 녹색성장 중간보고서 표지.

UNEP가 낸 한국 녹색성장 중간보고서 표지.

UNEP만이 아니다. 4대강 사업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세계야생동물기금협회(WWF), 옥스팜,그린피스 등 국제시민단체 대표들은 “‘저탄소녹색성장’ 비전과 관련한 이 대통령의 공약은 다른 나라의 지도자에게 경제 성장과 에너지 안보, 기후 보호라는 세 가지 목표가 어떻게 하면 훌륭하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모범사례”라고 말했다. 이런 사례만으로는 국제사회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UNEP 보고서의 서두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녹색성장 전략을 만들고 실행하는 부처·기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대표자들과 민간 부문의 자문을 거쳤다.” 보고서 작성자들은 민간단체로 환경운동연합과 생태지평연구소를 의견 교환과 자문한 기관으로 명시했다. 당사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만났다는 정도를 가지고 그렇게 명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 그 사람들은 이미 입장을 정하고 온 것 같았다.” 박진섭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의 말이다. ‘민간단체’와의 자리는 올해 7월 초 딱 한 차례 있었다.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이었다. 참석자는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 김종남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박진섭 생태지평연구소 부소장 등이었다. 환경연합에서 국제연대 활동을 전담해 온 마용운·김춘이 활동가가 배석했고, 정부 측 인사도 모니터링을 위해 참석한 것으로 모임 참석자들은 기억했다. 환경단체들은 당시 조계사 앞에서 ‘4대강 반대’ 농성을 하는 와중이었다. 박 부소장은 “국제기구에 있는 공무원으로부터 ‘한국에 조사하러 들어간 사람들이 정부 쪽 의견에 찬성할 가능성이 높으니 만나서 설득해 보면 좋겠다’는 언질을 듣고 참석했는데 결국 보고서는 그렇게 나왔다”고 덧붙였다.

김종남 환경연합 사무총장의 ‘인상’도 비슷했다. “이미 정부 쪽 이야기에 기울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녹색성장 정책의 일자리 창출에 대해 비판을 하자 ‘삽질하는 일자리도 일자리 아니냐’는 식의 반문을 했다.”
이날 ‘회동’ 후 참석자들은 한국 시민사회의 입장과 관련 근거자료를 40여 차례 메일로 문건을 작성한 두 담당자에게 보냈다. 환경연합 마용운 국장은 “당초 11월 말 발표 예정이던 중간보고서 수정 문건에서는 전반적인 기조가 변하지 않았지만 일방적으로 정부 입장 내용만 들어있던 4대강과 관련한 부분은 많이 빠졌다”고 밝혔다. 수정된 중간보고서 문건은 내부회람 중이어서 대외적으로 공표되지 않았다. 최종보고서는 내년쯤 공개될 예정이다. UNEP가 한국 정부 쪽 입장으로 기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철재 4대강사업저지대책위 정책국장은 “한국 정부의 녹색성장을 선전 도구로 활용하고 싶은 UNEP의 정치적 목적과 한국 정부의 성공적인 로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UNEP는 올해부터 “녹색경제 인프라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글로벌 그린 뉴딜정책을 제시하고 후속으로 각국의 녹색정책을 소개하는 보고서를 내고 있는데 한국의 ‘녹색성장 정책’이 첫 케이스가 되었다는 것. 안준관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은 “UNEP라는 조직의 성격 자체가 민관이 공동으로 하는 것이고, 각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끌어내야 하는 총장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정부 입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UNEP의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에 한국이 UNEP의 환경펀드에 공여한 금액은 고작 20만 달러로, 상위 20개 기여국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마 국장은 “한국 정부로부터 더 많은 재정적 지원을 기대하거나 약속받은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 가지 단서는 있다. 8월 20일 슈타이넘 총장과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UNEP가 주관하는 ‘환경을 위한 글로벌 기업 정상회의(B4E)’ 4회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에 대해 ‘개최 지원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행사는 매해 개막 행사로 지구환경대상 수상자 발표와 시상식을 한다. 지금까지 앨 고어,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 35명의 ‘글로벌 환경리더’가 이 상을 받았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문제가 있는 한국의 녹색성장 전략이 마치 모범 사례인 것처럼 전파돼 다른 나라들이 지표로 삼는다면 오히려 UNEP가 범지구적 지속 가능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

“국제기구 치적 홍보수단 활용”

이만의 환경부 장관(오른쪽)과 아킴 슈타이너 UNEP 사무총장이 ‘제4차 환경을 위한 글로벌 기업 정상회의(B4E)’한국 개최 지원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오른쪽)과 아킴 슈타이너 UNEP 사무총장이 ‘제4차 환경을 위한 글로벌 기업 정상회의(B4E)’한국 개최 지원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반대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대통령에게 ‘청원’하는 국제적인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서명운동엔 국내에도 번역된 <소리잃은 강>의 저자인 패트릭 매컬리도 참여했다. 매컬리는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댐반대 활동가다. 글로벌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은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정부의 4대강 복원사업 중지’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강을 보호하고 댐 건설을 반대하는 국제 단체인 ‘인터내셔널 리버(IR)’ 역시 한국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이명박 정부의 녹색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WWF·옥스팜·그린피스의 ‘서한’과 관련해 마 국장은 “실제 내용을 검토해 보면 핵심은 기후변화와 관련, 2005년 기준 20% 감축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녹색성장 등에 대한 지지표명은 비꼬는 표현으로 볼 수있다”고 주장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해 온 국내 환경단체로서는 어찌됐던 아직 역부족을 느끼고 있다. 김종남 환경연합 사무총장은 “녹색성장이나 4대강 사업이 국내 시민사회로부터 반발을 일으키자 이명박 정부는 쟁점을 잘 모르는 국제기구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치적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국제기구나 국제사회에 대한 비정부기구(NGO)의 홍보 필요성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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