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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원리는 병의 원인을 공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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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기른 원장님’의 일침철학 “한의사 의지가 침에 전달될 때 치료효과 높아져”

[커버스토리]“침 원리는 병의 원인을 공략하는 것”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호일침학회 김광호 원장은 한의사가 아니라 독립운동가 같은 모습이다. 그는 실제로 우리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독립운동하듯 전국은 물론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10여 년 전부터 자신의 이니셜을 딴 ‘KKH 취혈법’이란 독특한 침술을 개발하고 ‘동의보감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광호 원장은 그 동안은 ‘신묘한 침술을 가진 괴짜 의사’로만 여겼지만 요즘은 한국 한의학의 미래를 좌우하는 주요한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동의보감에 빠져 ‘침술 세계’ 재발견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요즘 세상, 보약만 팔아도 평화롭고 따뜻하게 살 수 있는데 400여 년 전의 헌(?) 책인 동의보감을 떠받들며 침술로 대한민국 의술의 국제화를 부르짖는 이유가 뭘까. 게다가 기상이변까지 가져올 만큼 환경 변화가 극심하고 아토피를 비롯 과거엔 듣도 보도 못한 질병도 많이 나타났고 평균 신장은 물론 체형과 체질도 달라졌는데 21세기의 환경에서 과연 침술로 모든 질병의 치료가 가능할까.

“굳이 과거와 비교할 것도 없이 현재 미국, 유럽인들과 우리나라 사람들만 비교해도 체질과 체형은 다릅니다. 하지만 제가 20여 개국 이상의 국민들을 치료해봤는데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감기약이 미국인에게는 듣고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효용이 없는 게 아닌 것처럼 근본원인을 찾아내면 치료방법도 같습니다. 과거와 환경은 다소 달라졌겠지만 인간의 감정을 좌우하는 사단칠정(四端七情)도 그대로이고, 우리 인체는 오장육부(五臟六腑)와 12경락을 바탕으로 병이 진행되기 때문에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내서 아픈 쪽의 반대쪽에 침을 놓고 약을 병행하면 대부분 낫더군요. 저는 ‘일침(一鍼) 이구(二灸) 삼약(三藥)’ 즉 침술이 첫째요, 뜸술이 두 번째, 한약이 세 번째 치료법이란 뜻의 한방 성구(聖句)에 동의합니다.”

김광호 원장이 이토록 침과 동의보감을 종교처럼 숭앙하는 이유는 자신의 체험 때문이다. 경희대 한의대 예과 2학년 시절에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간경화 말기환자인 지인이 복수가 가득 차서 그를 찾아왔다. 마지막 호소를 하는 그를 위해 동의보감을 뒤지다가 책에 나와 있는 그대로 처방을 했더니 복수가 빠지는 등 증세가 눈에 띄게 호전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가 되었지만 겉모습은 한의여도 속은 양의사인 어정쩡한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다가 본격적으로 동의보감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맹렬하게 파고들면서 침술의 세계와 효과를 재발견했다.

그는 무릎 관절이 아파 쪼그려 앉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퇴행성 관절염 환자의 엄지발가락 끝에 평범하게 생긴 침 한 대를 찌르는 것만으로 바로 걷거나 앉게 하는 침술을 구사하며 명의로 입소문이 났다. 화살을 쏠 때 10점짜리 과녁을 맞추듯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경혈(經穴)을 정확히 찾으면 한두 대의 침으로 통증 없이 치료효과를 순식간에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일침철학이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기감이 뛰어난 이들이 신묘한 한의사가 될 수 있을까, 혹은 오랜 임상경험을 갖춘 숙련의들이 더 나을까.

“기감도 중요하지만 경혈 자리를 제대로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점짜리 경혈 자리를 찾으려면 첫째는 손끝의 느낌. 흐르는 물이 고여 있는 곳, 기(氣)가 솟거나 빨아들이는 곳,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지만 실제 침을 놓으면 아프지 않은 곳을 가운데 손가락 손톱 아래 부위로 살며시 문지르며 찾아야 합니다. 침의 치료원리는 증치(症治)가 아닌 근치(根治), 즉 증상이 아닌 원인을 찾아 공략하는 것입니다. 퇴행성 관절염을 예로 들자면 퇴행성 관절질환은 뼈의 어긋남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죠. 하지만 이는 단지 증상일 뿐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뼈의 뒤틀림은 관절을 둘러싼 근육의 평형이 깨져 나타난 것이며, 근육의 불균형은 다시 오장육부 기혈(氣血)의 허실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정확한 경혈 자리를 찾아내 침을 놓으면 파킨슨씨병도 침과 약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한의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동의보감을 성경 읽듯 다시 한 자 한 자 독파하기 시작한 그는 황제내경, 침구대성과 같은 한방고전을 100회 이상 완독하면서 자연스럽게 물리를 터득하게 됐다고 한다. 그후 200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8차 국제동양의학 학술대회’ 등에서 100일 간 미국 한의사 280명을 대상으로 ‘호일침’ 요법에 대해 강의를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찾았다.

“당시 서양의학에 환멸을 느낀 미국인들이 대체의학에서 해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이 때문에 동양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죠. 침은 물론 뜸, 경락마사지 등에 대해 주요 매스컴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더군요. 그때 한국의 한의학도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 분원 개원, 일본엔 2곳 예정

학술대회가 끝난 후 귀국한 그는 미국시장 공략을 위한 ‘팀’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일단 2003년 대구에 처음으로 ‘호일침한의원’을 만들었다. 현재 서울에는 삼성·교대·목동, 부산에는 롯데호텔·연산동·해운대, 경상도에는 대구·포항·창원롯데·울산, 전남에는 광주·여수에 지점을 두고 있다. 200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분원을 열었다. 2007년 봄에는 일본 오사카와 히로시마에 동시에 두 개의 분원이 개원한다.

한의학의 메카로 알려진 중국에서도 그는 제 실력을 발휘했다. 지난 10월 ‘텐진 국제중의학 학술대회’에 참석해 강연을 했을 때 세계 42개국에서 온 의학자 200여 명이 갈채를 보냈고 텐진중의대 총장의 요청으로 중의사, 교수, 대학원생 등 500여 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환자에게 침술 시연도 하면서 그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그의 침을 맞은 고관이 효과를 보자 이스베스차지 등 유력지에 소개되었고 발레단 단원들이 그에게 침을 맞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 유방암 증세가 있는 여자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는데 한 번 시술로 차도를 보이자 “완치될 때까지 러시아에 머물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환자가 하필 러시아 마피아 두목의 아내여서 거절하는 데도 몹시 힘들었단다. 중의사들조차 인정해주고 전 세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침술이 정작 한국에서는 여전히 푸대접을 받고 있어서 김광호 원장은 속이 상한다고 했다.

“아직도 침을 맞거나 한약을 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한의학을 제대로 모르는 이들은 뜸은 보하고 침은 사한다는 식의 어쭙잖은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 양의 4명 중 1명이 침을 놓고 미국 군의관 진급심사시에는 침을 놓을 줄 알면 가산점을 줄 만큼 세계적으로 침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바로 잡아지겠지만 우리 한의사들부터 침은 물론 한의학을 제대로 공부해야 합니다.”

김광호 원장은 침만 공부해서는 좋은 한의사가 될 수 없다고 한다. 한의학, 사상, 그리고 인생의 공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환자를 확실히 치료하겠다는 마음이 침에 전달될 때 치료효과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과거엔 침 놓는 법 등 기술 위주의 침을 지도했지만 이젠 마음의 폭을 넓히라고 제자들에게 강조한다. 김 원장에게 침은 학문이며 인생이고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이면서 동시에 신앙이기도 하다.

“신앙인들이 불교과 기독교 교리를 확신을 갖고 무조건 믿으면 신앙심도 커지고 기도의 힘도 느끼지요. 하지만 ‘예수가 진짜 있었는지 증거를 내놔라’ 하는 것처럼 침도 즉각적 효과를 과학적 데이터로 내놔라 등의 요구만 하면 침을 놓는 실력은 물론 치료효과도 적습니다. 동의보감에 기초한 호일침 요법으로 너무 많은 환자들이 낫는 것을 보았기에 저는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어요.”

몇 년마다 산속으로 들어가 공부

침으로 만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다. 김 원장과 호일침학회의 실력이 소문나면서 그만큼 중병을 앓는 환자가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몇 년에 한 번씩 한의원 문을 닫고 6개월 가량 산 속에서 책을 보기도 했다. 특히 동의보감을 주로 분석한다. 우리 한의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철저히 우리 것을 분석해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긴 수염도 4년 전 대구 서당에서 공부에 몰두하다 면도할 시간이 없어 기르게 된 것. 마침 그 무렵에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그걸 본 시청자들이 ‘수염 기른 원장님’을 찾아서 할 수 없이 기르게 되었단다. 김 원장의 수염 기른 모습이 멋있어 보였는지 호일침학회 사무총장은 물론 일분 침구사회 회장과 수석간부 역시 수염을 길러 ‘호일침학회에서 성공하려면 수염을 길러야 한다’는 새로운 징크스를 만들어냈다.

그 근사한 모습으로 품위 있게(?) 보약만 팔아도 편히 살 텐데 왜 회원들과 밤잠도 안 자고 공부를 하며 마치 개척이나 하듯 외국에 가서 한방병원을 열려고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사람은 부나 명예만이 아니라 ‘꿈’이 있어야 합니다. 수백 억 재산을 갖고 병원 특실에서 돈을 펑펑 쓰며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많죠. 어떤 부자 중병환자의 경우 가족들이 ‘어차피 곧 죽을 텐데 돈이 많이 들어가는 치료를 굳이 하기 싫다’며 집으로 데려가는 모습도 봤습니다. 제가 한 달에 1억을 번다면 처음 몇 달은 행복할지 몰라도 다시 1억5000만 원을 벌어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꿈을 갖고 실현해가는 과정이지요. 저는 우리 침술과 한의학이 태권도처럼 전 세계에 퍼져 나가고 종주국이 되어서 성지순례하듯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아오게 하는 것이 꿈입니다. 장충체육관이나 잠실운동장에 각 나라에서 참가한 외국인들이 자기 나라 국기나 깃발을 들고 ‘호일침학회 세계학술대회’에 참가해 한국 한의학과 침술에 존경심을 표현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지난해 일본에 의료봉사활동을 갔을 때 통역을 맡았던 재일교포가 ‘일본인이 한국 사람에 대해 정말 마음깊이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면서 ‘한국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눈물을 글썽일 때 김광호 원장은 그의 꿈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알았단다. 꿈이 있어서, 그 꿈을 자신과 동료들의 손으로 이뤄낼 날이 가까워서 김광호 원장은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마냥 행복하단다.

<유인경 편집위원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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