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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학은 ‘자긍심’이 경쟁력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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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의 체계적 육성정책 뒷받침… 유학생 유치 중국침술 세계로 전파

중국의 침술이 세계인들로부터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중국인들의 노력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중국의 한 병원에서 약제사들이 중국 전통약을 조제하고 있다. <경향신문>

중국의 침술이 세계인들로부터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중국인들의 노력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중국의 한 병원에서 약제사들이 중국 전통약을 조제하고 있다. <경향신문>

중국 침술’은 그동안 중국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과 노력, 여기에 임상 효과가 만들어 낸 ‘걸작품’이라는 게 의료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세계적인 부호와 명사들이 중국침술의 매력에 흠뻑 빠질 정도로 중국 침술은 이미 ‘세계적인 명품 의료술’이 되었다. 전통의술 하나가 국가경쟁력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중국 침술의 기여도는 매우 크다. 동·서양의학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우리의 의료현실에서 중국 침술의 명성은 부러움을 떠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중국침술의 세계적인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
톈진의약대 김군 교수(39)는 “중국 침술이 전 세계인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중국인의 (침술에 대한)자긍심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특히 정부가 후진양성에 큰 공을 들였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전통의학이 서양의학과 대등한 관계를 갖출 수 있던 것도 결국 정부차원의 전통문화 계승 노력과 지식인들의 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중국의술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자산”

실제로 중국 정부는 1956년 전통의학의 맥을 잇기 위해 전국 각지에 흩어져 명성을 날리고 있던 유명 중의사들을 불러모아 체계적인 후진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당시 중국 전역에서 내로라하는 명의들이 교수진으로 대거 동참했다.

중국 전통의학은 청나라말 불어닥친 서양의학 바람에 밀려 한때 주춤했지만 1956년 정부 주도로 5개 전통 중의학원(중의대학)을 설립하면서 중의학의 재발견이 이뤄진 것이다. 2년 후인 58년에는 전국 각 성에 한 곳씩 모두 26개의 중의학원이 설치되면서 중의학 교육의 체계적인 기초가 마련됐다.

중의학 교육 프로그램이 한창 마련될 당시 마오쩌뚱(毛澤東)은 “중의학은 위대한 보고이니 이를 발굴해 그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말을 항상 강조할 정도로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의료업계 관계자들은 “문화혁명기간 중 ‘인재를 낭비하고 폐습을 부활시킨다’라는 주장 때문에 한동안 전통의학이 냉대를 받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이 당시에도 중국인구의 약 80%가 생활하는 농촌에서는 이 전통의학에 의존했을 정도로 중의학의 맥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개혁개방 바람이 불면서 중국 지식인들은 “세계 제일의 위치에 있는 전통의학은 중국이 인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자산 중의 하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렇듯 중의학은 중국인들의 가슴 깊은 곳에 이미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심지어 1982년 개정된 헌법에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을 발전시킨다’는 조항이 있을 정도다.

‘중국침술’의 세계화에는 무엇보다 ‘유학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 정부는 개방개혁에 즈음해 일어와 영어 등이 가능한 학생을 따로 모아 중의학을 교육하는 한편 이들 중 일부를 미국 등지로 유학을 보냈다. 이들은 전 세계 유학지에서 서양의학을 배우는 한편 중국 전통의학의 우월성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또 반대로 미국·한국 등지에서 온 유학생을 대상으로 중국침술 등 중국 전통의학을 가르치며 우월성을 강조했다. 이들 유학생들은 졸업 후 각자의 나라에 돌아가 중국침술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일에 일조한다. 김군 교수는 “의사로 양성된 중국 출신 유학생들은 중국 침술 등을 통해 중국의술에 대한 독창성과 신비감을 전하게 된다”면서 “중국 침술도 결국 이들을 통해 세계에 퍼져 나갔다”고 설명했다.

유학제도를 통한 중국 전통의술 전파와 함께 해외봉사단 파견을 통한 중국 침술도 병행했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를 상대로 중국침술봉사단을 파견해 침술에 대한 이해력을 높였다. 침술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중국침술에 대해 호의를 가진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의 의료체계가 우리나라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침술봉사단 해외 파견 활동

우리나라 한의사와 유사한 중의사는 3가지 분야로 나눈다. 이들은 모두 의사로 통칭되며 중의사는 중의과 전공과 침구 전공, 중약(한약사) 전공으로 분류된다. 중의사는 우리의 한의사와 달리 전통의학과 함께 현대의학도 같이 배우고 현대장비를 이용한 수술도 진행한다. 교육기간은 5년이며 1년간 인턴생활을 마친 후 국가고시를 통해 정식으로 의사가 된다.

중의사를 관리하는 중국 정부 내 중의약관리국은 1986년 7월에 정식 설립되었다. 현재 전통 중의학 분야 종사자 인력은 모두 50만 명이고 1800개 중의 병원에 병상 16만 개가 설치되어 있다. 전국의 서양의학 병원의 95%가 중의과를 두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130만 명의 마을 초급의사는 간단한 중의요법과 약초, 그리고 질병방지를 위한 침술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중의과 및 중약대학 30개 대학이 설립되어 이들 전문 교육기관에서 대학원 석사·박사과정 학생을 배출하고 있다.



인터뷰 | 톈진중의약대학 김군 교수

“중국침술 탁월한 효과 세계인이 사랑”

[커버스토리]중의학은 ‘자긍심’이 경쟁력 원천

3년 전 중국에서 대전대학교 한의대에 교환교수로 온 김군 교수(중국 톈진중의약대학)는 “중국 침술이 세계적인 의술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식인들의 도움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선족 출신인 김 교수는 누구보다 한의학 발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 김 교수를 통해 중국 침술의 경쟁력을 들어봤다.

- 중국 침술이 세계적인 의술로 각광받고 있다.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국 침술의 탁월한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효과가 없는 의술은 세계인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실제로 중국 침술은 오랜 역사를 속에 체계화한 경험의학이며 이미 다양한 효능을 통해 검증을 받았다. 중국 침술이 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까닭이다”

- 중국 침술 발전에는 무엇보다 정부지원책이 컸다고 하는데.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침술에 대한 투자와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또 이를 표준화했고 전국의 각 지역에 교육기관을 대거 만들었다. 특히 지역별로 특성에 맞는 전문 분야를 집중육성했다. 예를 들어 천진중의약대학은 침술로 유명한 곳이다. 실제로 침술 분야에서 명의로 불리는 ‘원사’도 천진중의약대학 출신 한 명이 유일할 정도다.”

- 서양의학과 갈등도 있었을 텐데.

“예전에는 서양의학에 대한 배타적인 생각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동서양의학의 장점을 서로 극대화하면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의과대학의 커리큘럼도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함께 배우게 되어 있다. 동서양 간 편가르기보다 서로 보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배울 것은 서로 배운다.”

- 한의학과 중의학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는데.

“맞는 말이다. 중의학과 한의학의 근본 뿌리와 원리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만큼 한의학과 중의학은 가깝다. 앞으로 동양 의술에 대한 장점을 찾아내 이를 극대화 하는 데 앞장 설 생각이다.”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최근 대전대에서 ‘자혈요법(刺血療法)’이란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출신 중의사로서는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한국에서 일정이 마무리 되면 중국으로 돌아가 한의학에 대한 연구 결과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생각이다. 한의학도 세계적인 의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한국의 의술 교류에 가교 역할을 할 생각이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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