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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우물 안 개구리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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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이어 올 한·중FTA 협상 시작될 듯… 큰 파고 견뎌내야

한의사들이 한 한방치료 세미나에 참석해 경청하고 있는 모습.

한의사들이 한 한방치료 세미나에 참석해 경청하고 있는 모습.

지난해 12월과 1월에는 몇 차례에 걸쳐 유명 포탈사이트의 초기화면에 한의학 관련 뉴스가 실렸다. 바로 한·미FTA 협상 내용 중 하나인 한국 한의사(doctor, 의료인)와 미국 침구사(acupuncturist, 유사의료업자)의 상호 자격인정 문제 때문이었다.

양국의 자격의 차이가 워낙 커서 한국 측 협상단이 거부하겠다고 밝혔지만 FTA 협상의 성격상 의사, 치과의사 등 의료인의 상호자격인정이 합의된다면 한국 한의사와 미국 침구사, 또는 한국 한의사와 미국 의사 간의 상호자격인증이 이뤄질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한·중FTA도 올해 중에 시작될 예정이라 하니 한국 한의사시장을 둘러싼 대학교육시장과 국민건강의료보험의 재정이 이러한 충격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필자의 기억으로 한의학 관련 문제가 수차례에 걸쳐 언론사와 일간지를 장식한 사건은 1990년대 한약분쟁 이후 처음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의사들과 다국적 기업인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및 9만여 명의 한국 내 양의사들이 만들어내는 의학 관련 뉴스를 모든 일간지와 언론매체에서 1년 365일 쉴새없이 쏟아내는 요즘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한의학 관련 뉴스가 일간지와 언론사의 주요 뉴스로 떠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고, 이는 암암리에 국민들로 하여금 아프면 당연히 양방 병의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도 했다.

중풍환자를 침으로 치료하고 있는 경희대 의료진.

중풍환자를 침으로 치료하고 있는 경희대 의료진.

동네 의원과 중소 병원들의 운영이 최근 2, 3년 사이에 한결같이 어려워졌다고들 한다. 이는 양방이나 한방이나 마찬가지이다. 국내 경기가 전반적으로 나빠졌기 때문이긴 하지만 보다 큰 이유는 교통이 편리해지고 의학정보가 쏟아지면서 사람들이 보다 크고 시설 좋은 병원을 찾게 되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또 의료의 상업화도 한 이유이다. 현행 의료법상 환자를 유인하고 알선하는 행위와 의료광고가 엄격히 규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광고가 이뤄져왔다. 의사들이 신문이나 잡지에 칼럼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지 광고를 하지 않는 병의원들은 점차 소비자의 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현재 의·치·한의사협회 모두가 반발하고 있는 의료법 개정안의 경우 의료기관의 급속한 영리화, 대형화를 유도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광고를 폭넓게 허용하고, 진료비 할인을 통해 환자들을 유인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수십만 원에 이르는 중고등학생 교복값에 톱스타를 동원한 광고비가 포함되어 거품이 심하다고 하는 것처럼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진료비의 가파른 상승을 초래할 것이다.

의료법 바뀌면 진료비 크게 오를 듯

양방 병원보다는 한 발 뒤쳐졌지만 한방 병원도 점차 대형화하는 추세이다. 이 같은 현상은 환자들에게 보다 쾌적한 진료 환경을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갖고 있지만 근본적인 의료서비스 수준은 소규모 의원과 비슷한 수준이면서 결국 진료비만 상승시킨다는 부정적 측면도 크다.

경희대학교가 지난해 서울 고덕동에 동서신의학병원을 지었고, 부산대학교는 한의학전문대학원을 유치하였다. 경희대는 지난 50여 년간 제3의학 창출이란 목표를 내걸고 한의과대학을 운영해왔으며 이 같은 목표는 동서신의학병원이란 이름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또 부산대의 한의학전문대학원은 국립대학교에 한의학 교육기관이 생기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한의대는 현재 11개 사립대학교에만 설치돼 있다.

한의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 속에 등장하긴 했지만 이들 기관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동서신의학병원은 경희대 의대 학생들이 수업거부 등으로 반대의사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는 가운데 학교본부 측에서 생각했던 협진체제가 쉽사리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 한?양방 교수진들의 협력도 유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서로 연구하고 공부해온 것이 달라서 의료사고가 났을 때 어느 쪽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상호 신뢰가 없다는 게 더욱 큰 문제이다.

경원대 한의대생들이 저소득층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경원대 한의대생들이 저소득층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한의학과 양의학 간의 이 같은 불신은 아직 학생을 뽑기도 전인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을 둘러싸고도 일어나고 있다. 의사협회에서 국립대학 내의 한의학교육기관 설치를 반대하였고, 설치결정이 난 이후에는 부산대 의대 교수들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하여야 한다거나, 한의학을 양의학에 흡수통합할 새로운 모델로 만들자는 등 선제공격을 가해왔고 또 한의계는 그에 또 일일이 맞대응해왔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한국의 한방 시장을 새로운 블루칩으로 여겨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정작 국내 한의계는 여기저기에 발목을 붙잡혀 대응할 시간조차 변변히 마련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 약사, 치과의사 등과 달리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국회의원 한 명 배출해내지 못한 한의계의 정치력으로는 불합리한 제도를 고치기는커녕 점점 더 상황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실상이다.

한의학계 내부 진정한 리더십 필요

현재 한의계가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의계 내부의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때의 리더십은 물리적이고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 철학적이고도 매우 학술적인 리더십이어야 한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아직 한의계 내부에는 한의계가 처한 위기상황을 기회로 바꿀 만한 리더십이 나오지 않고 있으며 어쩌면 한의계 전체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러한 리더십의 부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1950년대 모택동 주석이 중서의결합(中西醫結合)을 목표로 삼아 발전시켜 왔으나 1980년대 이후 이러한 결합의사들은 중?서 어느 쪽에도 능통하지 못한 채 답보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의 경우 의사들이 1차 진료를 포기하고 3차 진료만을 선호하는 가운데 스스로 위기상황을 초래한 반면, 보건지소와 기업체 부속 한의원에서 제공되는 한의사들의 1차진료 내용이 양방 쪽보다 만족도가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한의계는 분명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몇몇 지표는 위기와 함께 기회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식약청에서 실시한 한 연구보고서에는 질병치료를 위해 한약을 복용한다는 대답이 2005년도 조사에 비해 1.4배 정도 늘어났고, 87.5%는 한약의 효과에 만족한다고 응답하였으며, 83.6%가 향후 한약을 계속 복용하겠다고 하였다. 또 2000년 이후 국민건강보험의 급여를 받는 침과 뜸 등의 치료행위는 꾸준히 증가한 반면 약재의 수입량은 줄었다. 이는 보약에 의존하던 한의원 진료가 침과 뜸시술, 그리고 치료를 위한 한약 복용 쪽으로 점차 옮아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빠른 시간 내에 내부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잡아내는 한의계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강연석 민족의학신문 사무총장·국회한의진료실장 yeonkang@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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