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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침술, 세계화 향한 도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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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요법 개발보다 보약판매 집중… 세계시장 진출 걸림돌

국가적 차원에서의 한의 침구학의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제공>

국가적 차원에서의 한의 침구학의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제공>

한국의 침구학과 중국의 침구학 모두 다양한 침구치료기술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치료기술을 비교하면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침구학은 오수혈(五輸穴)을 이용한 오행침법(五行鍼法)을 특징으로 하여 발전돼 왔다.

침구치료는 경락에 침을 놓아 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인체에는 대표적으로 12개의 경락이 전신을 순행하고 있고 그 경락의 흐름 위에는 표준 경혈점이 361개 있는데 오수혈(五輸穴)은 주슬관절, 즉 팔꿈치와 무릎 아래에 있는 경혈점이다. 각 경락마다 5개의 경혈점이 있어서 오수혈이라고 한다. 마치 물이 지하에서 샘솟아서 작은 시냇물, 강물이 되어 흘러가 옥토를 살찌우듯 오수혈에 흐르는 기의 흐름이 인체 오장육부로 퍼져 기운을 공급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원리다.

어디가 아플 때 어떤 혈자리, 어떤 병에는 어떤 혈자리 하는 식으로 침 처방을 정리하지 않고도 환자의 상태와 병증의 양상에 따라 치료방법을 맞춤형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침법이다.

임상연구 도입된 지 5~6년에 불과

우리나라는 아플 때 손끝과 발끝의 혈자리를 따는 민간요법이 널리 퍼져있다. 경락의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여 과부하가 걸려있거나 꽉 막혀있는 상황에서 특별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즉 급체, 고혈압, 실신 등의 응급상황 때 경혈점을 예리한 침으로 자입(刺入)하여 사혈을 시킴으로써 병세를 호전시키는 것이 한국의 전통침이다.

한국의 침구치료기술은 다양한 질환에서 그 치료 효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에는 고혈압과 고혈압 전단계의 환자에게서 침치료가 혈압강하효과를 보인다는 임상연구 보고가 있었다. 한국의 침법인 격팔상생역침, 황구침법, 평침화침, 곡운침법 등 임상에서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침치료 기술을 고혈압 환자에 적용하여 임상연구를 실시한 결과다.

고혈압뿐만 아니라 임상에서는 다양한 난치성 질환에 대한 침구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임상적 효과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임상 연구를 통해 침치료의 효능을 검증해내고 이를 축적해 기술화?학문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침구경락 연구거점 기반구축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최선미 의료기술부장은 침구학의 표준화와 치료기전 규명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좋은 침구치료법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도 이를 잘 다듬어 표준화시키지 않으면 쓸모가 없으며, 임상효능 검증과 치료기전 규명 등을 통해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는 일이 따라와야 한다. 동시에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한의학의 경락도와 장부도. 침구치료는 경락의 기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한의학의 경락도와 장부도. 침구치료는 경락의 기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동 사업과 관련해 작년말 12건의 연구 성과가 발표됐다. 수치상으로는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임상과 학문 양쪽 모두 활용도가 높은 결과물이 나왔다는 게 연구원 측이 내놓은 중간평가다. 하지만 연구원도 실험대상이 됐던 환자들 모두가 침의 효과를 인정하며 만족감을 표시했지만 치료기전 규명과 데이터 확보에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 침구학계의 공통 과제는 ‘치료 효과에 대한 근거 자료를 축적하는 일’이다. 문제는 이 같은 과제가 한두 연구소의 노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한의학연구원 측은 “한의원 단위의 대규모 관찰연구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욱 다양한 기관과 한의원에서 많은 한의사와 연구원들이 참여한 속에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석대 한의대 장인구 교수는 “한의계에 임상 연구가 도입된 것은 5~6년에 불과하고 일부 연구자들이 실제 임상연구에 뛰어든 것은 고작 2~3년밖에 되지 않았다. 늦긴 했지만 지금부터는 연구자들이 임상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생겼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연구 결과를 축적해 나갈 때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 교수는 말한다.

침구경락 기반구축 사업에 기대

한의사들이 수익상의 이유로 침 등 치료요법의 개발보다 보약 판매에 집중하고 있는 현실도 자주 지적되는 문제 중의 하나다. 한의 개업의들의 이 같은 태도가 침 연구의 데이터 축적을 어렵게 하고 한국 침구학을 세계화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전대 홍권의 교수는 “지방의 일부 한의원들이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침술은 여전히 한의계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중요한 진료 방법 중의 하나”라며 그 같은 시각을 반박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만큼 침술이 임상에서 활발하게 적용되는 국가가 없다는 것이다. 한의사의 한방진료 중 침구시술이 99%를 차지하고 침구시술을 수반하지 않는 단순한 한약투여는 1%에 불과한 실정이라는 게 한의계의 주장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내놓은 자료에서도 침구시술은 한방진료 부문 전체에서 건수로는 99%, 청구금액으로는 44%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침구시술이 진료과정에서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과연 그에 걸맞는 연구가 수반하고 있느냐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학회에서 연간 수천 편의 임상논문이 발표되고 그중 20~30편은 해외 유수 저널에 실리고 있다는 사정도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물론 의사와 한의사는 그 수부터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한의학 관련해 활동하고 있는 상당수의 학회들이 임상 연구와 발표에 무관심한 채 친목회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 전통 침구학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이미 세계화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 침구학의 존재이다. 중국 침구학의 영향을 받은 미국도 이미 20여 년 전부터 매우 정치한 수준의 이론적 연구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침구학이 역으로 국내에 수입될 날이 멀지 않다는 얘기다.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침구경락 연구거점 기반구축사업’은 그나마 한국 침구학의 세계화를 향한 첫 번째 ‘작은 시도’로 인정받고 있다. 이 사업을 계기로 한의계가 진정한 노력을 계속할 경우 한국 침구학의 표준화, 과학화, 세계화 과정은 그 험난한 여정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기홍 객원기자 glutt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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