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한의사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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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한의사가 한의사다워야지

요즈음 한의원에 가보셨습니까. 여기가 한방병원인지 양방병원인지 아리송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청진기를 걸친 한의사가 ‘원장 ○○○’라 새긴 흰가운을 입고, 엄숙한 표정으로 환자를 대하는 품새며, 사무적으로 임상에 임하는 태도가 양의사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검사실은 또 어떤가요. CT촬영기며 초음파 검사기, 혈압계 등 양방병원에서 볼 수있는 진단장비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나요.

한의학계에 불고 있는 양진한치(洋診韓治·서양의학으로 진단하고 한방으로 치료한다)를 폄훼할 생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21세기 과학적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의료기기를 양의학의 전유물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한의사가 서양의술의 편리함을 좇아 서양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의학 고유의 진단과 치료법을 점점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전통 한의학으로는 병을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없는 건가요. 한의학에는 맥진(脈診·맥박의 상태를 살피는 진찰법)과 ‘동의보감’이 전수하는 문진차트 등 병에 대한 여러 가지 변증(辨證)시스템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서양의학이 만들어낸 첨단의술로 찾아낼 수 없는 치명적 질환을 맥진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일부 한의사들의 주장은 그럼 사실이 아닌가요.

진단은 문명의 이기를 취해 그렇다 치더라도 한의사들의 병증에 따른 치료행위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침술로 심도있는 치료를 해주는 한의사를 잘 만날 수 없었다는 여러 사람의 호소를 듣습니다. 어느 한의사는 침술은 위험하고 돈이 안 된다고 귀띔을 하기도 합니다. 바로 효과가 나타나야 하는데 침술로는 자신이 없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동의보감’은 일침이구삼약(一鍼二灸三藥)을 한의학의 핵심의술로 전하고 있습니다. 즉 침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뜸이며, 세 번째가 약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즈음 한의사들은 대부분 침과 뜸은 건성이고, 탕제에만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한의원에서 비싼 보약을 지어 먹어본 사람들은 그래서 한의사들이 보약장사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모양입니다.

뉴스메이커가 이번호에서 40쪽에 이르는 심층기획으로 한의학의 위기를 다룬 것은 바로 이런 한의학계의 문제를 ‘변증’해보려는 시도입니다. 한의학이 그 본질인 치료의학으로 가지 않고 보약장사에 안주한다면 끝내는 주변부 의학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양방과 대등한 의학을 바라고 있다면 한의학이 하루 빨리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한의학적 철학으로 무장한 ‘한의사다운 한의사’를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한방이 ‘1차 의료’가 되어야 한다는 한의사들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으며 이념적으로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때 한의학이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효용성이 인정되면서 한의사의 의료행위를 의사가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를 반증하는 건 아닐까요. “모기를 일일이 때려잡는 것이 서양의학이라면 온도를 살살 조절해 한꺼번에 잡는 것”이 한의학이라는 어느 한의사의 말이 귓전에 맴돕니다.

<윤석원 편집장 ys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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