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된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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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은 ‘능동적 대중 동의’ 못 받았다

조희연 지음 | 후마니타스 | 2만원

[이주의 책]동원된 근대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측근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기까지 18년 동안 권좌에 머물렀다. 세대로는 거의 두 세대에 이르는 장기 집권이다. 

1950년대에 출생한 한국인의 경우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정신적 형성기의 거의 전 시기를 박정희라는 단 한 사람의 최고권력자와 그가 만들어 낸 통치체제를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 같은 한국 현대사 초유의 장기 집권이 남긴 후유증은 심대하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는 평가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극과 극을 이루면서 정권 붕괴 후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불꽃 튀는 ‘해석 경쟁’을 불러일으키는 인화성 강한 연료 구실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해석 경쟁 가운데 하나는 2004년 <대중독재론>의 출간 이후 벌어진 학계의 논쟁이다. 한양대 임지현 교수를 중심으로 제기된 대중독재론의 핵심은 박정희 정권이 공권력의 철권에 의존한 폭압적 정권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광범위한 동의를 바탕으로 유지된 정권이라는 것이다. ‘사악한 소수 독재 세력 대 선하고 핍박받는 대중’이라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진보 진영의 기존 인식에 충격을 가한 도발적 문제 제기였다.

당시 논쟁의 당사자이기도 했던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임 교수의 대중독재론에 일단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기존의 독재 연구 또는 파시즘 분석을 뛰어넘는 새로운 통찰력과 넓은 연구 지평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저자가 보기에 진보적 논의는 “다양한 새로운 연구들을 개방적으로 흡수하고 내포화하지 못해 ‘앙상’해진 측면이 있다.” <박정희와 개발독재 시대>(2007)를 잇는 조 교수의 박정희 정권 연구서 <동원된 근대>의 문제 의식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책이 겨냥하는 것은 정권의 폭압적 성격을 강조하는 진보적 관점에서 대중독재론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포괄하는 것이다. 이 같은 ‘진보적 재해석’을 위해 저자가 동원하는 수단은 박정희 정권을 ‘개발동원체제’로 규정한 후 그 체제가 헤게모니 형성과 헤게모니 균열이 모순적으로 공존한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헤게모니 형성 과정이 동시에 헤게모니가 균열되는 과정과 중첩돼 있었음을 논증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은 ‘근대화 추진’이라는 국민적·민족적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획득한 도덕적 선도성을 바탕으로 사회의 자원을 총동원하는 ‘개발동원체제’였다. 그러나 ‘동원된 근대화’는 근대화된 대중을 낳았고, 이렇게 탄생한 근대화된 대중은 자신을 낳은 체제와 불화하는 관계를 형성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대중의 동의는 결코 지속적이거나 능동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박정희 체제에는 정치적·경제적 성취와 위기가 공존했다. 개발동원체제는 근대화라는 목표를 성취하는 데는 효율적이었지만 그 강압성으로 인해 위기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국의 산업화가 촉진됐다는 보수적 시각과 박정희 체제가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저항에 의해 붕괴했다는 진보적 시각은 모두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저자는 진보든 보수든 박정희 정권에 대한 해석은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 “각자의 시각을 견지하면서 반대 시각이 제시하고 강조하는 역사적 사실들을 해석적으로 내재화하는 방향으로 풍부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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