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새희망노동연대, 새로운 노동운동?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민주노총·한국노총 밖에서 제3세력 결집 성공할까

“노동운동 패러다임이 바뀌나.” 3월 초에 언론들은 일제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밖에서 새로운 제3세력의 출현을 관망하는 기사를 실었다. 새희망노동연대(이하 희망연대)다. 3월 4일 전국 40여 개 노조위원장과 간부들이 충북 수안보 서울시공무원수련원에서 ‘출범’한 단체다. 언론들은 이어 “크고 작은 노조들의 가입이 잇따르고 있다”라며 이 단체의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이날 출범한 희망연대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노동운동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정책노조·공익노조 지향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위한 사회공헌활동 등을 활동 기조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5월 1일 노동절에는 “전국적 규모의 집중집회 대신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펼칠 것”이라고도 밝혔다.

충북 수안보에서 열린 새희망노동연대의 워크숍 겸 발대식에 참여한 인사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충북 수안보에서 열린 새희망노동연대의 워크숍 겸 발대식에 참여한 인사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그러나 이 단체에 대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희망연대는 사회책임과 상생을 새로운 노동운동의 방향으로 제시한다. 단체의 공동위원장은 오종쇄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위원장, 정연수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위원장, 임승룡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김재도 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 위원장 등이다. 위원장들의 성향과 별도로 조합은 한국노총·민주노총의 양대 노총에 소속돼 있는 곳도 있고, 아무런 상급단체도 없는 ‘독립노조’도 있다. 출범 뒤 기존 상급단체를 탈퇴하겠다는 흐름은 아직 감지되지 않는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은 지난해 말 민주노총 탈퇴를 안건으로 대의원투표를 했지만 부결됐다. 희망연대에 대한 주목은 최근 노조들의 잇달은 민주노총 탈퇴 러시 때문으로 보인다. 과연 희망연대는 노동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태풍의 눈’이 될까.

김준용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은 “(희망연대가 추구하는 노선이) 제3노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양대 노총과 세 경쟁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맞게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노동자를 섬기고 새로운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친목회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 희망연대의 사무실은 없다. 김 위원은 “필요하다면 서울이나 울산 정도에 연락 거점을 만들 수도 있지만 일단은 복수노조나 노조전임자 임금문제 등에 대해 ‘노동운동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기 때문에 3월 4일 발대식도 ‘선언문’ 같은 것을 채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 현안에 대한 워크숍 형태로 진행됐다.

노동운동, 상생 목표로 다시 태어나야
반면에 조동희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정책실장은 “당장 제3노총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 발짝 앞서 나간 것이지만 지향점은 그것이라고 해도 틀린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선 노동운동이 이렇게 외면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있다. 당장 조직을 만들고 ‘맹비’(조직분담금)를 내는 것은 아니더라도 내년 7월 1일부터 복수노조가 시작된다면 판도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즉 복수노조가 허용된다면 단위사업장에서 기존의 노동운동에 문제의식을 느낀 노동자들이 제3의 성격을 지닌 노동조합을 결성해 하나로 모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다.

희망연대 추진 주체들은 지난 노동운동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1997년께를 기점으로 노동운동의 성격이 달라졌다는데 인식을 함께한다. 다음은 조 실장의 말. “1987년 민주노조운동이 시작될 당시는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정권의 정당성이 없던 상태에서 노동운동은 민주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당시는 국민들에게서 노동운동이 일정 정도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IMF를 기점으로 경영과 자본은 빠르게 변모해 온 반면에 노동운동은 시대에 맞춰 변하지 못했다.” 오히려 노동운동은 정체됐을 뿐만 아니라 계파 대립 등이 극심해지면서 정치·이념 지향으로 몰려갔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부 대공장 중심의 큰 노조일수록 기득권 지키기 노동운동으로 변질되면서 외면받았고, 이미 내부 혁신은 불가능한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난 평택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큰 싸움이 있은 뒤 과연 누가 책임지려고 했는지 되묻고 싶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정파싸움에 몰두하고, 비정규직 등 문제에서 자기 기득권에서는 한 발짝도 물러서려 하지 않은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이미 바닥이지 않은가.”

공교롭게도 이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와 인식은 지난 1월 말에 출간된 한 도서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참여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김대환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와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전 노동연구원 원장), 윤기설 한국경제신문 노동전문기자의 대담을 묶은 <노동운동, 상생인가 공멸인가>(위즈덤 하우스)라는 제목의 책이다. 단순히 오비이락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새희망노동연대 측에서는 1997년 이후 노동운동이 정치적·이념지향적으로 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지난 2005년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당시 지도부 찬반으로 갈려 몸싸움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김정근 기자

새희망노동연대 측에서는 1997년 이후 노동운동이 정치적·이념지향적으로 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지난 2005년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당시 지도부 찬반으로 갈려 몸싸움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김정근 기자

희망연대의 출범을 두고 노동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노사상생문화포럼’에 주목했다. 희망연대를 구성하는 면면이 이 포럼에 참가한 노동계 인사들과 겹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노동운동, 상생…>의 저자들 역시 모두 이 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직간부 ㄱ씨는 “사실 이들의 관계는 노사상생문화포럼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에 한국노총을 어떻게 ‘민주화’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때부터 ‘제3노총’ 또는 ‘대안노총’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었다. 그 세력이 지금의 면면과 거의 똑같다는 것이다. 2006년께에도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그때도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지식인-노동운동가 회합이 있어 왔다”고 부언했다. 말하자면 벌써 10여 년의 역사를 갖는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희망연대 측도 지식인 그룹과의 관계를 부인하지 않았다. 김준용 위원은 “전문가 지식인층에도 우리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지만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이나 최영기 전 원장이 기존 노동운동 비판이라는 ‘총대’를 메고 나섰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들이 ‘위장된 뉴라이트가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노사상생문화포럼에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관계하고 있으며, 신 의원은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라는 것이다.

포럼에 참여한 노동계 인사와 지식인 그룹을 연결시키는 고리는 김문수 경기지사라는 주장도 나온다. 희망포럼 측 노동계 인사들은 민주노조운동의 초창기부터 참여했다. 전노협 사무차장을 지낸 김준용 위원은 구로동맹파업 당시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구로동맹파업은 김문수 경기지사가 노동운동을 할 당시 깊숙이 개입한 서노련이 지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영기 전 원장이 현재 적을 두고 있는 경기개발연구원 역시 김문수 경기지사와 관련이 있다.

오종쇄 현중위원장이나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1987년 민주노조운동의 태동기부터 노조 활동을 해 왔다. 1990년대 중반에 김문수 지사가 노동운동을 그만두고 정치권으로 나가는 데에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영향이 크다. 안 교수는 뉴라이트의 이념을 정립한 인사로 알려져 있다.

그럴 듯한 음모론이지만 당사자들은 부인한다. 김준용 위원은 “당시 서노련에는 김 지사뿐만 아니라 심상정 현 진보신당 대표나 유시민 국민참여당 경기지사 후보도 있었다”면서 “초창기 노동운동을 경험한 인사치고 그런 식으로 연결짓는다면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어디 있겠냐”고 반문했다. 신지호 의원과 관련해 그는 “단지 축사를 했을 뿐 포럼의 조직과 딱히 관계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최 전 원장은 “김 지사와는 지난 선거 때도 간여한 바 없다. 단지 대학 선후배 사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학계의 한 인사는 “최 전 원장이 노동연구원을 나올 당시 처신을 두고 내부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뉴라이트와 연결되는 행보를 보인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최 전 원장은 “지난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너무 잘 나가는 바람에 과거의 성공에 취해 개혁 시점을 놓친 것이 안타깝다”면서 “상생으로 번역될 수 있는 파트너십은 미국이나 일본노동운동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주제”라고 말했다.

희망연대는 ‘위장된 뉴라이트’?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최영기 전 노동연구원 원장 등의 대담집 <노동운동, 상생인가 공멸인가>의 표지. 희망연대는 이 책의 노동현실 인식을 전폭적으로 수용한다.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최영기 전 노동연구원 원장 등의 대담집 <노동운동, 상생인가 공멸인가>의 표지. 희망연대는 이 책의 노동현실 인식을 전폭적으로 수용한다.

그러나 ‘희망연대’ 인사들이 정치와 거리를 두지는 않았다. 2007년 대선 당시 오종쇄 위원장, 정연수 위원장 등 희망연대 주도 인사들은 대선 사흘 전인 12월 16일 이명박 대통령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민주노총 전·현직 노조활동가 747명 지지선언’을 내세운 당시의 캐치프레이즈도 ‘새로운 노동운동’이었다.

민주노총 등 기존의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현재까지 희망연대를 향후 노동운동의 좌표에서 주요 변수로 보고 있지 않다. 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은 “그들이 민주노총을 정치지향적이고 이념적이라고 비판했는데 그 사람들이 강조하는 현장 조합원 복지나 노사협조주의 역시 정치지향적이고 이념적이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는 “주의깊게 보지는 않았지만 민주노총 탈퇴 배후에 공안기관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하는 것과 비슷한 어떤 게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노총 등의 활동에서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 교수는 “여기에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기본 틀이 기업별 체제라든가 법과 제도 같은 구조적 문제도 있고, 노동운동의 주체 문제도 있다”라면서 “그렇다고 또 다른 ‘제3노총’이 나타난다고 그런 법·제도적 한계나 주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정치 집단이 친이·친박으로 분화되는 것처럼 노동계도 과거 노무현 캠프로 갈라지거나 뉴라이트신노동연합처럼 우파로 경도되는 분화를 겪어 왔다”면서 “이런 시기가 지나면 희망연대와 같은 흐름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정리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