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만주를 지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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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지음·한겨레출판·1만2000원

박노자 지음·한겨레출판·1만2000원

<거꾸로 보는 고대사>는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가 처음으로 써낸 고대사 책이다. 그를 동시대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논객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소 뜻밖의 책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애초 그의 학문적 본령은 한반도 고대사 연구다. 박 교수는 모스크바대학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글감의 시간적 배경이 고대사로 훌쩍 거슬러 올라가긴 했지만, 민족과 국가에 대한 한국인들의 통념적 인식을 뒤집는 그의 비판의식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박 교수는 고대사와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한국사 서술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근현대사를 서술할 때는 ‘민족의 수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고대사 서술에서는 ‘민족의 위대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파생하는 효과는 무엇인가. 한국처럼 군사화 정도가 높은 국가에서 “고대의 군사적영웅담은 현재의 군사주의를 은근히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고 “(우리 민족의 피해를 강조하는) 근현대사는 팽창을 도모하려는 ‘우리들’의 모든 행위를 무조건 정당화한다.”

민족주의적 한국사 서술에서 고대사는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는가. 먼저, 고조선과 고구려는 만주를 지배한 강성한 제국이었나. 단재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만주가 “우리 민족의 발상지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가 김부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것도 만주를 지배했던 발해의 역사가 <삼국사기>에서 빠져 있다는 이유였다. 박 교수는 고조선이 랴오둥 지역 전체에 세력을 뻗쳤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고조선이 설령 만주 일부 지역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간접적 지배에 그쳤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고구려의 만주 지배 또한 과장된 것이기는 마찬가지다.

신라는 민족의 배신자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남한과 북한의 시각이 거의 일치한다. 북한은 1956년판 <조선통사>에서 ‘통일’이라고 하지 않고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한 백제와 고구려의 정복”이라고 기술했다.

남한에서도 1980년대 이후 좌파민족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신라의 외세 끌어들이기와 만주 영토 상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일반화됐다. 박 교수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어 있지 않았던 1500년 전 상황에 오늘날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삼국)은 각각 지배층 사이의 신화나 제사 체계는 물론 언어라든가 행정 체계 등이 서로 달랐던 데다 누적된 적대감까지 가미돼 동족이 아닌 경쟁세력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반도 고대사에 대한 이같은 대립적 관점 대신 고대사 서술에 “고대 한반도의 세계성과 다양성”을 끌어들이고자 한다. 그리하여 고구려의 군사적 위대함보다는 고구려가 종족적·문화적으로 얼마나 다양했는지를 말하고, 일본 또한 ‘왜침’의 주역이나 ‘문화 전파’의 대상이 아닌 중요한 교류 파트너로 인식한다. 요컨대 탈민족· 탈국가적 고대사 서술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서문에서 이를 통해 “군사주의적 국가주의적 역사 서술에 식상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 언젠가 ‘역사적 상상력의 반란’을 불러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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