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여신상’ 우표, 짝퉁이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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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스(whoops)”. 미 우정청(USPS)에서 발행한 ‘자유의 여신상’ 우표가 뉴욕의 진짜 동상이 아니라 라스베이거스의 복제상 사진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을 때, 미국 언론이 가장 많이 쓴 표현이다. 우리 말로 하면 ‘아이고’ ‘이크’ 같은 뜻.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하는 뉘앙스다.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오른쪽)과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앞에 있는 복제상, 그리고 이 복제상을 담은 우표.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오른쪽)과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앞에 있는 복제상, 그리고 이 복제상을 담은 우표.

자유의 여신상이 어떤 동상인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이 여신상은 뉴욕항 초입의 리버티(자유) 섬에 있다. 받침대를 포함한 높이가 92m에 이르는 거대한 조형물로 여신의 오른손에는 ‘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빛’을 상징하는 횃불이,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이라는 날짜가 새겨진 미국 독립선언서가 들려 있다. 그래서 세계인에게는 관광명소, 미국인에게는 자유와 이민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자유의 여신상이다.

반면 라스베이거스의 복제동상은 카지노 호텔 뉴욕뉴욕이 관광객을 유치할 목적으로 1997년 세운 것이다. 진짜 동상에 비해 크기는 절반밖에 안 되며 눈이 더 크고 강렬하며 속눈썹이 짙다. 제작된 지 14년밖에 안돼 얼굴이 깨끗하다.

하지만 사진만 보아서는 미국인들도 이 둘을 구별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우정청이 문제의 우표를 발행한 것은 지난해 12월 10일이고 짝퉁 소동이 벌어진 건 올 4월초다. 한 우표수집가가 우표전문지 린스에 제보했고, 린스가 관련 사실을 확인해 보도하자 뉴욕타임스가 4월 14일 인용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그 넉달 동안 미국인들은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언론의 지적이 나오자 USPS는 곧바로 실수를 인정했다. 게티 이미지스라는 사진전문업체로부터 제공받은 사진으로 우표를 제작했는데 사진 제목에 ‘자유의 여신상’이라고만 쓰여 있고 복제물이라는 언급이 없어 착오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표는 30억장이나 인쇄된 상태.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아마 속으로 수도 없이 “웁스” 하며 당혹해했을 USPS는 고심 끝에 정면대응 방식을 택했다. 발행된 우표를 수거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USPS의 로이 베츠 대변인은 “비록 사진이 잘못됐지만 우표 디자인 자체는 잘됐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오류우표가 나왔다는 뉴스는 우표수집가들을 기쁘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베츠 대변인의 말은 그러나 진실과 거리가 멀다. 우표수집가들이 오류우표를 좋아하는 것은 맞다. 오류 우표는 정상 우표에 비해 시장에서 비싼 값에 거래된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오류라는 사실이 드러나 수거 또는 폐기처분되어 남아있는 우표가 손으로 꼽을 만큼 적어야 한다. 우표의 가격은 오류 여부가 아니라 희소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우표가 30억장 돌아다닐 경우 수집가들이 특별히 탐을 낼 이유가 없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표 중 하나로 꼽히는 인버티드 제니를 보자. 이 우표는 1918년 미국 커디스사가 제작한 ‘제니’라는 애칭의 쌍날개 비행기 JN-4의 그림이 거꾸로 디자인돼 인쇄됐다. 미 우정당국은 발견 즉시 수거·폐기토록 처분했으나 우표 100장이 남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가치가 올라갔다.

반면 1962년 발행된 다그 함마슐트 유엔 사무총장 추모우표는 바탕색이 잘못된 오류가 있지만 지금도 값이 비싸지 않다. 오류가 발견되었음에도 수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때문이다. 이번 자유의 여신상 우표를 수집가들이 좋아하려면 이미 발행된 물량을 수거·폐기하는 조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우표의 가치가 아주 조금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희소성은 없지만 이번 사건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아 여느 우표보다 주목도가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자유의 여신상이 우표로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까지 5센트, 10센트 등 27차례 우표에 등장했다. 이번엔 액면가 44센트짜리의 영구우표(forever stamp)라는 게 다르다. 영구우표는 한 번 사두면 우표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추가요금을 내지 않고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우표다. 복제물 우표가 미국 우정사에 영구히 남게 된 것이다. 훗날 수집가들이 이 과정을 되새기면서 또 한번 “웁스” 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이종탁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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