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미 FTA 개인·법인에 직접 적용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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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법, 양자간무역협정 관련 첫 판단… “미국이 법률로 인정 않는 모순 바로 잡았다”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는 지난해 3월 파일공유 사이트인 하이디스크에 음악 저작물 2만1986개의 불법적인 전송을 막아달라는 요청을 했다. 저작권법 104조 1항에 따라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인 하이디스크가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었다. 하이디스크는 저작권단체연합회의 요청을 받은 뒤 기술적 조치를 취했다.

2011년 11월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통과를 선언하고 있다. | 경향신문

2011년 11월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통과를 선언하고 있다. | 경향신문

저작권단체연합회는 기술적 조치를 요청한 음악 저작물 가운데 50개를 선정했고 이행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불법적인 전송을 차단하지 못한 비율이 48%라고 판단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를 근거로 지난해 8월 하이디스크에 과태료 1060만원을 부과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은 기간이나 대상에 제한이 없는 일반적 성격의 기술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한·미 FTA는 면책요건을 충족한 서비스 제공자에겐 가장 부담이 적은 의무만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하이디스크는 “저작권법 104조 1항이 한·미 FTA, 한·EU FTA와 충돌해 무효다. 문화부가 무효인 저작권법에 근거해 과태료를 부과해선 안 된다”며 서울남부지법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양 당사국만 권리 의무의 주체”
하지만 남부지법은 하이디스크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부지법 허상진 판사는 “한·EU FTA, 한·미 FTA의 취지, 성격, 구조와 구체적인 문언, 분쟁해결절차 등에 비춰볼 때 이들 협정은 양 당사국 사이에 무역을 자유화하기 위한 협정으로서 양 당사국만 이들 협정에 따른 직접적인 권리·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 협정 어디에도 협정의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들이 곧바로 양 당사국의 개인에게 직접 적용된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개인이 FTA 조항을 원용해 국내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부지법의 결정은 한·EU FTA, 한·미 FTA 등 양자간 무역협정을 개인이나 법인에 직접 적용할 수는 없다는 첫 번째 판단이다. 이번 결정은 다자간 협정에 이어 FTA와 같은 양자간 협정도 한국 법원의 재판에 직접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2009년 대법원 판례과 같은 맥락이다.

대법원은 당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권리·의무관계를 설정하는 국제협정으로 이와 관련된 법적 분쟁은 WTO 분쟁해결기구에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WTO 회원국 정부의 반덤핑 부과처분이 WTO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인이 직접 국내 법원에 회원국 정부를 상대로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WTO 반덤핑 협정을 재판 규범으로 인정하던 기존의 하급심 판례 등과 다른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개인이나 법인이 조약을 원용해서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면 한·미 FTA, 한·EU FTA, WTO 협정 등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봐야 할까. 그렇진 않다. 헌법 6조 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약이 국내법 체계로 편입되는 문제와 조약의 직접효력 여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직접효력이란 조약의 국내 후속입법이 없더라도 개인이 해당 조약을 원용해서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FTA와 같은 조약이 국내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를 국내법 체계로 편입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하다. 한 가지 방식은 조약에 대한 별도의 이행법이 없어도 국내법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일원주의’라고 한다. 한국 정부가 취하는 방식이다. 다른 방식인 ‘이원주의’는 조약의 국내법적 수용을 위해 이행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일원주의라고 해서 조약이 직접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원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도 WTO 협정 등 조약의 직접효력을 부인하고 있다.

“국내 직접효력 불인정 근거 규정 필요“
대법원이 2005년 전라북도 의회가 제정한 학교급식조례가 WTO 협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무효라고 판결한 사례가 있긴 했다. WTO 협정은 국내 상품에 비해 수입 상품을 불리하게 대우해선 안 되는데, 이 조례는 수입 농산물을 국산 농산물에 비해 불리하게 대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개인이나 법인이 아닌 전북도교육청이 전북지역 농산물만 사용하도록 한 학교급식조례가 위법하다며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다는 특수성이 있다. 이른바 기관소송에 해당하는 것이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주진열 교수는 2009년 ‘한국 대법원의 WTO 협정 직접효력 부인’이라는 논문에서 “이 판결은 대법원이 추상적 규범통제(구체적인 소송 사건이 제기된 경우가 아님에도 법령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절차)의 성격을 가진 기관소송에 있어서만 예외적으로 WTO 협정의 직접 적용성을 인정한 것으로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일반소송 사건에 있어서도 WTO 협정의 직접효력을 인정한 것으로 확대해석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미국은 한·미 FTA, WTO 협정 등과 같은 무역협정의 직접효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미국은 한·미 FTA를 조약이 아닌 행정협정으로 처리했고, 이를 국내법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한·미 FTA 이행법’에 “미국의 법률에 일치하지 않는 협정 조항은 그 효력이 없고, 미국 연방정부 이외에는 누구도 소송에서 협정을 직접 원용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외교통상위원장인 송기호 변호사는 “남부지법의 결정은 한국 법원이 미국이 한·미 FTA를 법률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모순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미 FTA 이행법을 통해 협정의 국내 직접 적용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는 미국, 개인이나 법인이 법원에서 한·EU FTA를 직접 원용할 수 없도록 한 EU와 상호주의적인 원칙이 판례를 통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남부지법의 결정과 2009년 대법원 판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등 통상협정의 직접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좀 더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병철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전문위원은 지난해 10월 ‘국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조약의 국내법적 편입문제와 조약의 직접효력이 혼동되고 있는 한국의 경우 개인이나 법인이 국내 법령을 무효화하거나 또는 권리 주장을 하기 위해 한·미 FTA를 원용할 위험성이 커 보인다”며 “투자 부문의 간접수용 등과 같이 국내법 체계에서 미처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부문에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문 위원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한·미 FTA의 국내법적 직접효력의 불인정 문제를 명확히 규정하는 별도의 근거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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