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겨울나기 힘든 사람들

빈곤계층 추위로 인한 고통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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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저소득가정 아동, 낙상·기관지 질환 등 심각한 건강 문제 노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계층을 가리지 않고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계층별로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정도를 살펴보면 잘 사는 사람들일수록 일상생활 속에서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자가용 승용차를 보유하고 이용하는 비율을 포함해 전기·가스·수도 등 에너지 사용량이 더 많기 때문이다. 반면 저소득층은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을 체감하는 정도가 더 높다. 특히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 아동의 경우 혹한·혹서 등 이상기후로 인해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겪을 가능성도 높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한 연탄 제조업체에서 수송상인들이 가정에 배달할 연탄을 차량에 옮겨싣고 있다. 난방용으로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줄고 있지만 저소득층 가구일수록 연탄에 대한 의존도가 높게 나타난다. | 정지윤 기자

서울 금천구에 있는 한 연탄 제조업체에서 수송상인들이 가정에 배달할 연탄을 차량에 옮겨싣고 있다. 난방용으로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줄고 있지만 저소득층 가구일수록 연탄에 대한 의존도가 높게 나타난다. | 정지윤 기자

적정 실내온도 유지 힘든 빈곤가구
기후변화가 불러온 한파의 피해는 저소득층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연이어 내린 눈에 한파가 겹쳐 도로의 빙판이 녹는 속도가 느려지자 퀵서비스 기사들은 당장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퀵서비스 일을 하고 있는 황성주씨(46)는 “큰 도로는 눈이 쌓일 틈도 없어 오히려 괜찮은데 눈이 녹지 않은 좁은 도로에서 보행자와 차량을 피해가며 오토바이를 몰 때는 온몸이 긴장돼 추위도 못 느낀다”고 말했다.

겨울철 노년층의 뇌혈관계 질환과 낙상이 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2월 노년층 사망 원인 중 암을 제외하고 계절성 질환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낙상을 입을 확률도 자가용을 이용해 외출할 수 있는 계층에 비해 대중교통 탑승장소까지 걸어가야 하는 저소득층 노인이 더 높다.

기후변화에 저소득층이 집중적으로 해를 입는 것은 개인의 건강과 안전뿐만 아니라 대규모 재해 위험에 노출되는 데서도 드러났다. 박태주 부산대 교수는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된 지역과 저소득층 거주지역 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본 결과 자연재해 빈발지역이 저소득층 밀집 거주지역에 걸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저소득층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전반적인 역량도 떨어졌다. 박 교수는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기후변화에 대한 노출 정도와 민감도는 높은 반면 적응 역량은 낮다. 이러한 경향은 같은 소득수준 집단 안에서도 특히 독거노인이나 한부모·조손가정 등 사회경제적 취약가구, 반지하나 옥탑방에 사는 주거 취약가구, 비정규직·실업자 등 고용 취약가구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녹색성장위원회는 난방·취사·조명 등 에너지 구입을 위해 쓰이는 비용이 전체 가구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에너지 저소득층으로 정의했다.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10%는 에너지 비용으로 전체 수입의 14%를 지출하는 반면 소득수준 상위 10%는 수입의 3%만 에너지 지출로 나갔다. 에너지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가구수는 전국에 약 130만 가구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계층별 인구통계를 보면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대부분이 이 에너지 저소득층에 포함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연령별로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비율이 가장 높다. 기후변화가 건강문제 외에 장기적으로는 사회경제적 지위까지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더해 각종 기후 재해로 인한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저소득층 위한 탄소세 도입 등 거론
저소득층이 겪는 기후변화의 원인은 기업의 생산활동 중 배출하는 온실가스 문제가 가장 크지만, 고소득층의 에너지 소비행태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김진아 연구원은 “영국에서 발표된 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수준 상위 10% 집단이 하위 10%에 비해 온실가스를 2배 이상 내뿜고 특히 자동차를 운행하면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3배 이상 배출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2011년 기준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 수준으로 1인당 연간 배출량은 12.6톤에 달했다. 이 수치에는 산업·교통 및 수송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가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계층별 차이를 살펴보면 서울의 에너지 저소득층 가구가 월 평균 191.2㎏을 배출하는 데 비해 전국 일반가구의 월 평균 배출량은 412.3㎏이나 돼 2배가 넘는 차이를 보였다.

저소득층이 겨울을 나기 위한 정부 대책으로는 광열비 직접지원, 주택 에너지효율 개선사업, 신재생에너지 보급 등을 들 수 있다. 최저생계비의 5% 내외로 지원되는 광열비는 전체 수입 중 10% 이상이 광열비 등 에너지 비용으로 지출되는 점을 고려할 때 특히 겨울의 혹한에 대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도시가스나 전기, 연탄 공급업자를 통한 간접적인 지원도 있지만 도시가스나 지역난방은 저소득층 가구의 보급률이 현저히 낮은 상황이라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 높은 가격에 비해 열효율이 낮은 에너지원을 경제적인 에너지원으로 교체하고 주택 단열재와 방풍재 시공을 지원하는 주택 에너지효율 개선사업의 경우 적은 비용으로 온실가스 감축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탄소세 도입과 유류세의 지정세목 조정 등 세제개편도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저소득층 지원대책으로 거론된다. 저소득층이 주로 사용하는 등유 및 프로판가스에 대한 세금 비중이 고소득층에 비해 높은 현실을 고려한 등유 특별소비세 인하 등이 좋은 예다. 김승래 한림대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책적 방안에 대해 “현행 유류세 중 지정된 목적에만 사용할 수 있는 세목을 온실가스 대책과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사용하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면서 “국내에서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높은 산업과 발전부문, 수송부문에서 거둔 환경세로 정부가 직접적인 재정지출 방식으로 취약계층을 지원할 경우 에너지 불평등 문제 해결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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