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이야기]뇌를 통한 홍익의 가르침

한국인의 뇌 속에 잠든 중심가치 ‘홍익인간’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뇌는 외부 정보를 받아들인다. 백지의 순수한 상태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형태의 정보가 곧 한 사람의 생을 만들어가는 바탕이 됨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학습과 기억을 통한 정보의 축적, 행동을 결정짓는 정보의 선택도 뇌에서 이뤄진다. 우리의 뇌에 어떠한 정보가 입력되어 있는지, 어떠한 정보를 자신의 중심가치로 잡고 있는지가 그 사람의 행동양식을 결정하게 된다.

정보의 물결이 넘쳐나고 세차게 흐를수록 그 중심가치는 더더욱 중요하다. 뿌리가 굳건하지 않으면 그 세찬 물살에 휩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모른 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어느 곳에 서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중국에서 불어온 바람이 세차다. 미풍이라 여기던 어리석은 믿음은 더 크나큰 돌풍으로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 사이의 바람도 심상치 않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동북아에 새로이 불어 닥치는 이 거대한 물결 앞에서도 여전히 이 땅의 중심가치는 외면된 채 이미 지나간 이데올로기로 얼룩져 있다는 것이다. 하나가 되지 못하면 이 거대한 파도를 넘어서기가 너무나 힘들다.

이제는 우리의 뇌 속에 오랜 시간 잠들어 있는 선조의 메시지를 다시금 일깨워야 할 때다. 전통적 가치와 외래의 사상과 종교가 어우러질 수 있는 것, 편협한 우리만의 가치가 아닌 더 큰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인 철학과 정신이 우리에게 있다. 단지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1949년 12월 31일 공포된 대한민국 교육기본법에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이라는 교육이념이 실려 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중국이 송두리째 앗아가고자 하는 고조선의 개국이념이자 건국이념이다. ‘사람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된다’는 천지인(天地人) 정신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의 철학은 단순한 통치이념이나 지배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선조들이 공동체와 국가, 그리고 개인의 삶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염원과 이상이었으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대답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의 법령이 대부분 서구의 법에 기초했지만, 교육이념 만큼은 우리 고유의 철학인 ‘홍익인간’으로 채택한 것은 참으로 두 손 모아 감사해야 할 일이다. 홍익인간이 교육이념으로 채택된 배경을 당시 ‘문교개관’에서는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건국이념이기는 하나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란 뜻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정신과 부합되는 이념이다.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정신의 정수이며, 일면 기독교의 박애정신, 유교의 仁, 그리고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전 인류의 이상이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다.

‘홍익인간’이란 ‘홍익’이라는 활동을 통해서 사람을 인식하고, 세계를 이화(理化)하는 활동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을 일컫는다. 우리 선조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삶의 가치와 존재의 이유는 바로 ‘홍익’이며, 이는 지금처럼 중심철학이 없어 혼란스러운 시대에 한국인의 뇌가 가져야 할 중심가치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웅대한 시작이 그곳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요, 인류 모두가 공유할 평화의 중심가치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몸의 중심이 바르지 못하면 몸이 허우적거리듯, 우리의 정신에도 중심철학이 있어야 한다. 인류 모두가 공유할 평화철학을 가졌던 단군과 홍익인간의 중심가치가 뇌 속에 바로 자리해야만 혼란스러운 이 시대 속에서 가야할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 가져올 뇌의 가치

우리의 뇌 속에는 이와 같은 평화공존의 정보가 면면히 이어져 전해온다. 모든 문제의 답은 인간의 마음, 곧 뇌에 달려 있다. 전쟁을, 아름다운 세계관을, 인생관을 갖게 하는 것도 뇌다. 평화의 뇌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라는 조상의 가르침은 그래서 더욱 빛이 난다.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가 되어 노니는 상생과 조화를 낳는 사회가 우리가 꿈꾸어야 할 미래의 모습이며, 이것을 되찾자는 운동이 지난 25년간 이어온 국학운동이다.

우리의 선조는 21세기 인류의 마지막 미개척지라 불리는 ‘뇌’에 대해서도 그 옛날에 이미 그 의미를 꿰뚫어보았다. 한민족의 고대경전 중 하나인 ‘삼일신고(三一神誥)’에는 ‘自性求子降在爾腦’(저마다 본성을 찾아보라. 너희 뇌 속에 내려와 있다)라는 글귀가 있다.

뇌 안에 우리의 건강이 있고 뇌 속에 인류의 평화가 깃들어 있다. 자신의 뇌를 알고 잘 활용하며, 그 안에 담긴 평화에 따라 행동할 때 미래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나아가, 자기 뇌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고, 뇌의 본질인 평화를 추구하는 이가 점점 더 많아지면 인류의 미래는 그만큼 밝아질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민족 건국이념이자 인류사적인 자산인 ‘弘益人間’의 정신을 ‘뇌’를 통해 이 지구촌에 꽃피우는 것이다.

열정과 도전의 정신으로 생을 살아온 사람은 한 개인의 성장을 위해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자신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자신을 믿고 인정하는 것이 성장의 시작이다. 자기불신 속에서는 결코 창조가 일어나지 않는다. 한 민족의 성장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근원과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민족은 민족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 없다. 더욱이 민족구성원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야만 이룰 수 있는 꿈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뇌이야기

우리는 국가와 민족에 국한하지 않은 범인류적인 평화공존의 철학이 우리에게 있음을 축복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의 뇌는 뚜렷한 비전과 굳은 신념이 있을 때 움직인다.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꿈은 뇌에 잠재하는 기능을 깨어나게 하고 삶을 활기차게 만들며, 뇌의 무한한 창조성에 불을 지핀다.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을 가져올 선조들의 위대한 가르침을 우리의 뇌 속에 중심가치로 되새길 때, 우리나라에도 비로소 민족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다.

이승헌<한국뇌과학연구원 원장,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