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아시아인]베트남인 94% “우리 미래는 밝다”

수백년 외국 지배에도 ‘희망’ 잃지 않고 평균소득보다 훨씬 높은 ‘행복의 질’

1954년 프랑스를 물리친 디엔비엔푸전투의 유적지에 전시된 대표에서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다.

베트남의 현대사는 그 자체가 질곡의 역사다. 수백 년 중국의 지배와 100년 간의 프랑스 식민지, 5년 간 일본의 강점, 20년 간 미국과의 전쟁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겪은 나라이다. 수많은 사람이 식민지 생활과 전쟁과 이념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프랑스·일본의 제국주의 약탈과 학살, 미국의 명분 없는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다.

현재 베트남인들은 이들 나라들에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는가. 한국인인 나 역시 처음 베트남 땅을 디딜 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잘못도 크기 때문이다. 한국 군인은 여기저기서 양민을 학살했고 따이한 2세(Lai Dai Han)를 무책임하게 버려둔 채 베트남을 떠났다.

‘침략자’ 국민에게도 친절 베풀어

10년 전 처음 베트남을 찾았을 때 자못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드라마는 가장 인기 있는 TV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번역 팝송들, 거리를 질주하는 일본산 오토바이, 갖가지 한국 중고차들….

더욱 놀란 것은 한국인에 대한 무척 호의적인 이들의 태도이다. 필자가 2년 간 근무한 퀴논(Quy Nhon) 기술학교는 베트남 중부지방에 위치해 있으며, 베트남전 당시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곳이었다. 베트남전 당시 전투가 치열했던 안케(An Khe)에서 30㎞ 정도 떨어진 항구도시이다. 처음 이곳에 살면서 이들이 한국인을 증오하지는 않을까 많이 걱정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지인은 매우 호의적이고 친근했다. 베트남을 찾는 외국인 중 동양인으로는 일본, 서양인으로는 프랑스인이 가장 많다. ‘침략자’ 일본과 프랑스인이지만 베트남인들은 항상 웃으며 그들을 친절하게 맞이하고 있다. 베트남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침략자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친절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1990년대 주한베트남 대사를 지낸 응우엔 푸 빈 대사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 역사를 바라보는 베트남인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이 우리 민족에게 끼친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5년 간 강점하는 동안 200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일본 민족이 아니라 군국주의자들의 죄라고 봅니다. 군국주의자들은 오늘날 일본의 정치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또 미국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수백만 명이 죽었고 아직도 30만 명이 실종자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베트남에서 폭탄을 던지거나 포로가 됐던 미국 사람들도 지금은 아무 부담 없이 우리나라를 찾아옵니다. 우리의 지도자 호치민은 ‘다른 민족을 경시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 정책을 취하지 않음에 따라 아주 어려운 시기에 많은 나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국민들도 그같은 정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베트남에 대해 마음을 열자

베트남인은 과거의 역사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중요하게 여기는 역사관, 실리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적이나 현재 이들의 투자가 베트남 경제의 중심축임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2007년 초 베트남은 그렇게 열망하던 WTO를 150번째로 가입했다. 2000년 들어 매년 8%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며 오랜 전쟁과 가난으로 침체된 베트남 사회가 밝은 분이기로 변모하고 있다. 20%가 넘던 실업률도 이제는 6%대로 낮아졌다. 갤럽국제협회(GIA)의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베트남인의 94%가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아 4년 연속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즉 베트남이 전 세계에서 미래에 대해 가장 희망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베트남 거리에서 쉽게 마주치는 자전거 수리공들의 친근한 모습.

실제 베트남인들의 삶을 모습을 직접 본다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도시근로자의 평균소득이 400달러가 채 안 되는 나라에서 행복의 질이 높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인들은 베트남이 장차 선진국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을 기대하고 있다.

아이러리하게 10년 전 필자가 베트남에 살 때만 하더라도 “외국인이 살기 가장 힘든 나라”가 베트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오히려 한국이 외국인이 살기 가장 힘든 나라라고 한다. 외국인에 대한 폐쇄적인 문화와 외국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우월적이고 강압적인 소수 한국인의 모습에 서글플 때가 많다.

가해자의 나라에 대해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베트남. 미국과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를 거둔 나라. 현재의 상황이 결코 풍족하지 않지만 미래의 희망이 큰 나라. 한 번쯤은 이러한 베트남의 모습을 생각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베트남 노동자와 베트남 신부를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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